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22일 낮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서명 강행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던 중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내 조부는 의병장이었다. 단 한 번도 조부님의 행적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2014년 6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구한말 ‘의병장’의 손자로 군 최고 지휘관이 돼 화제가 됐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누리꾼들로부터 ‘일본 군국주의의 선봉장’이 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 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는 23일 오전 국방부 청사에서 비공개로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문에 최종 서명했다.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졸속 합의에 이어 또 다른 ‘친일’ 외교를 기록했다는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주무부처 장관인 한 장관에 대한 책임론도 거세다. 특히 한 장관이 ‘의병장 손자’ 효과를 누려 왔다는 점에서 더 비판을 사고 있다.
한 장관의 조부인 한봉수 선생은 196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된 구한말 의병장이다. 한 의병장은 대한제국군으로 복무하던 1907년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충청 지역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며 일본군과 유격전을 벌여 전공을 세우는 등의 공로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참모차장, 참모총장, 합동참모부 의장을 역임하며 군인으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왔던 한 장관에게 ‘의병장 손자’라는 타이틀은 늘 따라붙는 후광이었다. 한 장관이 대장(4성 장군)으로 승진한 뒤 육군 참모총장이 됐던 2009년에는 “의병장의 손자가 육군 최고 지휘관이 됐다”는 언론의 찬사도 끊이지 않았다. 2010년 합참의장, 2014년 국방장관이 됐을 때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참군인’은 한민구 전 대장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며 ‘팬덤’이 형성될 정도로 한 장관의 가족 내력이 관심을 끌었다.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조부의 ‘친일 행적’ 논란이 불거지자 일부 언론과 학계, 팬층이 한 장관의 억울함을 풀겠다고 나서 큰 무리 없이 논란을 벗어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활동한 한봉수 의병장과 그의 손자인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육군 참모총장 시절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그러나 이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뒤 누리꾼들은 포털사이트 등에서 “20세기 의병장 손자가 21세기 일본 군국주의 선봉장이 됐다” “할아버지 보기 부끄럽지 않나” “한 장관을 ‘진정한 군인’이라고 평가했던 내가 한심하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09년 한 장관 참모총장 시절 육군본부 행정병으로서 그를 지근거리에서 봤던 안아무개(34)씨는 “한 장관이 군인 시절 팬을 자처하는 장병들이 많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던 것은 의병장 후손이라는 점이 컸다. 여론의 힘으로 ‘참군인’으로 존경받던 한 장관이 국민 여론을 등진 행보가 보기 안타깝다”고 말했다. 충청 시민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지난 15일 충북 청주시 상당공원 한봉수 의병장 동상 앞에서 한-일 군사정보협정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가 있었고, 지역 주민들 중에는 한 장관의 행보를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야 3당은 30일 국민적 합의 없이 협정을 체결한 책임을 물어 한 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유덕관 기자
yd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