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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눈·귀 없는 한국형 킬체인, 북 도발충동만 키운다

등록 2016-10-14 19:23수정 2016-10-14 20:01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실효성 의심되는 킬체인
킬체인은 미국 공군이 1991년 걸프전 이후 긴급 타격해야 할 시한성 표적을 항공기로 타격하기 위해 고안됐지만 한국은 타격예산 9조원의 80% 이상을 정확도 떨어지는 육군의 미사일 구입에 편중하고 있다. 사진은 킬체인의 핵심인 타우루스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한 전투기의 모습이다.  타우루스 시스템스사 제공
킬체인은 미국 공군이 1991년 걸프전 이후 긴급 타격해야 할 시한성 표적을 항공기로 타격하기 위해 고안됐지만 한국은 타격예산 9조원의 80% 이상을 정확도 떨어지는 육군의 미사일 구입에 편중하고 있다. 사진은 킬체인의 핵심인 타우루스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한 전투기의 모습이다. 타우루스 시스템스사 제공

미국의 클린턴 정부가 북한을 폭격하기로 결심하고 전쟁 준비를 서두르던 1994년 초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북한의 배급제가 거의 붕괴되고 전쟁이 임박한 위기 상황에서 당시 김일성 주석은 주요 군 지휘관들을 불러 모았다. 이 자리에서 김 주석이 군 장성들에게 “전쟁이 나면 이길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장성들은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주석이 재차 물었다. “만일 진다면 어떡하겠는가?”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벌떡 일어서 말했다. “주석님, 조선이 없으면 지구는 없습니다. 만일 진다면 지구를 폭파시켜버리겠습니다.”

이 회의가 끝나고 얼마 후 김정일은 황장엽에게 “내가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군사전략을 준비했으니 주석님께 잘 말씀드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김일성 주석과 미국의 특사로 온 카터 전 대통령의 회담으로 전쟁 위기는 평화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와중에 황장엽은 김정일이 핵과 미사일을 주축으로 한반도에서 속전속결의 전쟁을 수행하는 일명 ‘판갈이 전략’에 깊이 경도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전략은 제국주의자들에게 사면이 포위되어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북한이 최후의 순간에 자폭이라도 할 수 있다는 극단의 절박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김정일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하자 아버지처럼 외교전략가로 변신했지만, 여전히 포위되어 있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선대의 ‘포위 심성’(siege mentality)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이런 심성에서 나온 핵과 미사일에 대한 집착을 서구식 압박과 억제전략으로 더 포위한다는 것이 과연 통할까?

억제가 없는 북한 억제 전략

북한이 공세적인 군사행동을 취할 때마다 보수 정부에서 쏟아낸 군사 담론을 한번 살펴보자. 2010년에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겪고 이명박 정부는 ‘적극적 억제전략’, ‘맞춤형 억제전략’에 이어 ‘킬체인(Kill-Chain) 전략’을 내놨다. 연이은 북한의 핵실험을 겪은 박근혜 정부는 ‘능동적 억제전략’, ‘역비대칭 전략’, ‘제4의 전쟁 전략’, ‘4D(Detect, Disrupt, Destroy, Defense) 작전 개념’, 북한 지도부를 대량응징보복(KMPR)한다는 ‘3축 체제 개념’을 제시했다. 이런 전략들은 미국에 의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의존하더라도 자위권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북한을 응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이 도발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우리 국방부는 매번 새로운 군사전략을 내놓아야 하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다양하고 빈번하다. 이와 별도로 한·미 두 나라는 ‘작전계획 5015’를 필두로 하여 ‘확장억제전략’, ‘국지도발 공동계획’ 등 여러 군사대책을 준비해 놓은 상황이다.

미 공군 시한성 표적 제거작전서 유래
한국은 육군 미사일에 예산 90% 집중돼
GPS 없고 탄두 중량 제한돼 역부족
예산탓 2020년까지 배치 여부도 의문

북 극단의 절박성서 나온 핵전략
설익은 공격전략으론 막을 수 없어
킬체인에 북 핵 쓸 경우 대책 없어
구호성 작전보다 예방외교가 더 시급

그러나 이 많은 군사전략이 과연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지하도록 압박하는 효과가 있었는가, 또는 북한의 도발적 행동을 억제하였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미의 새로운 군사전략에 북한이 두려움을 갖고 군사행동을 자제하도록 하는 ‘억제’(deterrence)의 본질을 구현했다고 보기에는, 지금 북한의 더욱 고도화된 핵과 미사일 능력이 두드러진다. 유사시에 극단적 폭력으로 공멸을 각오하는 비장함으로 포위망을 돌파하려는 북한에 그다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내놓은 군사전략들은 억제에 근간을 두고 있지만 그 관건은 북한이 ‘믿어주느냐’에 있다. 전략이 존재하려면 그 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이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포위 심성을 관리해주는 외교력이 뒷받침되어야 이 군사전략들은 비로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섣부르게 검증되지 않은 군사전략을 쏟아내면서 북한에 더욱더 포위와 압박을 강화하는 정책을 구사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공세적 군사전략에 더욱 경도되도록 하는 것은 아닌지 면밀한 평가를 해볼 필요가 있다. ‘억제 전략’에 ‘억제’가 실종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언어유희로 전락할 공허한 전략들

국방부는 킬체인의 선제적 타격 개념을 이용해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겠다고 하지만, 그 계획을 검증해보면 아직 북한이 이를 두려워할 이유가 부족해 보인다. 킬체인에서 북한을 타격하는 타격자산 도입비 9조원 중 90%가 탄도·순항 미사일에 집중되어 있고, 다시 그중 90%가 육군의 미사일 자산에 편중되어 있다. 이 미사일들은 미국이 제공하는 군용 위성항법장치(GPS)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정확도가 떨어지고 탄두 중량이 제한되어 북한의 은폐된 표적이나 이동식 미사일발사대를 타격하기에 역부족이다.

원래 킬체인은 미국 공군이 1991년 걸프전 이후 긴급히 타격을 해야 하는 ‘시한성 표적’을 겨냥해 항공기에 의한 신속한 작전으로 구상된 개념이지만 한국군이 이를 수입한 결과 육군에 편중된 ‘육군 패권의 체인’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비록 그 실효성을 인정받는다 해도 전시작전권을 단독으로 행사할 수 없는 한국군에서 과연 이런 작전을 누가 지휘할 것인가의 문제도 대두된다. 2010년의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에 전투기 출동 여부를 두고 합참의장이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전화로 “쏴도 되느냐”고 질문하던 풍경을 떠올린다면 타격을 결심하고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준비를 과연 한국군이 할 수 있느냐는 점이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지난해 8월의 전방 목함지뢰 사건 당시 한국군이 공언한 ‘적 지휘부 궤멸’은 실행되지 않았고 유엔사령부가 전면에 나서서 북한과 협상을 주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여기서 여전히 한반도 위기관리의 주도권은 미군에 있다는 점이 또 한번 확인되었다.

킬체인은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이를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공격을 받은 북한이 나머지 핵미사일로 2차 타격(Second Strike)을 감행할 경우 과연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도 아리송하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관건은 북한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과 ‘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군은 현재 정찰위성을 한 기도 보유하지 못하고 북한에 대한 핵심정보의 태반을 미국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결국 한국군 독자적인 수준에서의 표적 획득과 타격 결심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아리송하다. 이 때문인지 국방부도 정찰위성 도입을 서두른다고 하고 있으나 그 사업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더 한심하다.

올해 착수된 정찰위성 도입 작업은 국내 독자 개발로 추진되는데 다중 데이터 전송과 고속 영상촬영과 같은 핵심 성능이 대부분 누락되어 있다. 무엇보다 방만하게 사업을 벌여 놓은 우리 국방부는 킬체인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현재 국방부는 총 360여개의 무기 도입 사업을 중기국방계획에 반영하고 있어 예산이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야전에서는 아직도 880여종의 무기체계가 가동되고 있어 그 유지관리에 매년 어려움이 가중되는 실정이다. 앞으로 도입될 무기를 포함해 1000종에 이르는 이 거대한 무기의 생태계는 40조원의 국방예산도 모자란다고 아우성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킬체인 구축은 2020년대 중반에야 가까스로 완성될 전망이지만 그마저도 현재의 부실한 계획과 구상에 비추어본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군은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의지와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전시작전권 전환을 위한 국방부의 노력은 현재 완전히 중지된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함께 북한의 지도부를 제거한다는 일명 참수작전, 또는 지휘부 대량응징보복 역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냉전의 절정기인 1980년대에 미군은 이와 유사하게 선제공격으로 소련의 지도부를 제거하는 비밀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검토 후 폐기되었다. 소련의 지도부를 제거할 경우 막후 흥정과 협상을 할 상대방이 사라져버리게 되고, 소련 최고지휘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진정한 적은 ‘혼란’ 그 자체

이 대목에서 전설적 군사전략가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전장의 안개’가 더욱 짙어지는 역효과가 초래되어 극심한 혼란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하자. 실제로 소련은 미국의 핵 선제공격으로 국가 지도부가 파멸될 경우 모든 대륙간탄도탄(ICBM)이 미국을 향해 자동으로 발사되는 ‘죽음의 손’ 체계를 준비하고 이를 공개한 바 있다. 이런 자폭 전략이 핵전쟁 위험을 고조시킨다고 판단한 미군은 참수전략이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지도자 제거 작전이 세계 여러 분쟁에서 성공한 사례도 거의 없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 개전 이후 사담 후세인을 검거하는 데는 8개월이 걸렸고, 아프간에서 빈 라덴을 사살하는 데는 9·11 테러가 발생하고 나서 8년이 걸렸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정보력으로 핵전쟁 직전의 김정은을 저격할 수 있을지는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여전히 숙제로 남을 것이다. 설령 그런 작전개념이 가능하다고 해도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자신이 제거될 수 있다고 생각한 북한 지도부가 제거되기 이전에 더 빨리 핵미사일 발사를 결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내몰릴 경우 한반도 위기관리는 더욱더 치명적으로 붕괴될 위험이 높아진다. 흥정과 거래로 예방할 수 있는 전쟁을 기어이 전쟁으로 몰고 가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의 위협에 대해 외교적인 노력이나 다른 수단을 강구하기보다는 오직 설익은 군사적 대응만을 남발하는 지금의 정부에는 국가 대전략이 실종되어 있다. 아무도 승자가 없는 핵 시대에 우리의 진정한 적은 전쟁 가능성 그 자체이며 이를 막아낼 수 없는 무능한 정부라 할 것이다. 외국의 군사전략을 무비판적으로 베끼고, 이를 한국형 전략이라고 주장하는 억지도 이제는 자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위기관리란 무엇일까? 바로 북한의 포위 심성을 관리하는 것, 그로 인해 전쟁의 충동이 극단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예방외교를 전개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국방부 일각에서는 10월10일 노동당 창건일에 북한이 도발적 행태를 보이지 않은 이유를 놓고 우리의 억제전략이 먹혀들었다는 자기중심적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섣부른 판단이다. 포위되어 있는 북한은 항상 우리의 예측을 뛰어넘는 전략적 행동을 감행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포위망을 돌파할 수 있는 정치·외교술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 북한이 행동을 자제하는 이면에는 사드 요격체계 한국 배치 결정 이후 북한의 5차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중국과 러시아의 비협조로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정황이 드러난다. 북한은 바로 지금의 국제정세가 미묘한 변수에 의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을 인상 깊게 바라보고 다음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포위의 질곡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출구의 빛줄기를 따라 서서히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 지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전략은 무엇이어야 할까? 북한이라는 국가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탈북을 권유하는 박근혜식 북한 흔들기가 미묘한 북한의 심성 변화를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이다. 이러한 때 여론의 압박에 내몰려 핵 추진 잠수함이든, 독자적 핵무장이든 무엇이건 주장하고 보는 일부 정치권의 행태 역시 한반도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핵심 문제는 북한의 포위 심성을 관리하는 것이다.

▶ 김종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할 말은 하는 군사전문가. 1993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과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방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별들의 암투를 지켜봤다. 권력과 군대가 독점하는 안보가 아닌 ‘진짜 안보’를 지향한다. 제20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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