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에서 야당은 2010년 이후 6년 만에 ‘북풍 없는 선거’라는 행운을 누렸다. 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5월27일 서울광장에서 보수단체가 마련한 ‘천안함 전사자 추모 북한응징 결의 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북풍 없는 총선
북풍 없는 총선
20대 국회의원 후보자 등록을 하루 앞둔 3월23일에 북한은 최고사령부 중대 성명에서 “1차 타격 대상이 청와대”라고 위협했다. 항상 있어왔던 협박성 발언이라고 생각할 만도 했지만 이튿날인 24일에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서도 비상상황에 각별히 유의해 달라”며 전군에 “경계태세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시중에 북한이 곧 남한에 테러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선거운동이 한창 달아오르던 3월31일부터 북한은 해주, 연안, 평강, 금강, 개성 등 5곳에서 남쪽을 향해 위성항법체계(GPS)를 교란하는 전파 공격을 개시했다. 이에 청와대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개최해 대비책을 강구하던 4월1일, 북한은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하는 또 한 번의 군사위협을 가했다. 곧이어 전국 도심의 주요 시설과 관공서에 북한의 테러 위협에 대비해 군경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며 실전과 같은 작전을 수행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선거 첫날 내려진 전군경계강화령
정부가 비상상황이라던 이 시기에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터진다. 7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한 수험생이 3월24일과 26일 두 차례 서울 정부청사에 잠입해 시험 성적을 조작했다. 정부가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나흘이나 지난 4월1일에 합격자 명단에서 이상을 발견한 인사혁신처가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비로소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험생 송 아무개씨가 청사를 제멋대로 드나들던 이때는 ‘테러 경계태세와 출입통제 강화’ 조치가 내려져 있었다. 송씨는 청사 내의 공무원 체력단련장에서 훔친 공무원 신분증 3장으로 청사를 들락거리면서 공무원의 컴퓨터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만에 하나라도 송씨가 폭발물이라도 설치했더라면 청사는 영락없이 테러에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 사건으로 정부의 테러 대비 태세의 허구성이 드러났다.
이상한 사건은 또 일어났다. 총선이 후반기로 접어든 4월7일에 중국의 한 북한식당에서 탈출한 종업원 13명이 국내에 입국한 사실이 이튿날인 8일에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이어 지난해 이미 국내에 와 있던 북한 정찰총국 출신 대좌의 입국 사실도 공개됐다. 정부 내 누군가에 의해 제공된 핵심 기밀정보가 특정 언론의 단독보도로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우리 정부의 대북 압박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더 이상한 해석까지 덧붙여졌다. 1월 북한 핵실험 이후 북한 붕괴까지 가정한 박근혜 정부의 극단화된 대북 압박정책을 합리화하는 소재로 북한식당 종업원의 입국 뉴스가 이용되는 논리적 맥락이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이 보도가 나올 무렵엔 중국 내 한 북한식당에서 일하던 종업원 2명의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었다. 아직도 한국으로 들어오려고 중국에 대기 중인 인원이 있다면 이 보도야말로 그들의 신변을 위험에 빠뜨리는 치명적인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정부가 언론 플레이를 했다면 심각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논란이 확산되던 무렵인 4월10일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서울 강동갑에서의 지원유세에서 “또다시 문재인이 통진당 종북 세력과 손잡아 연대했다”며 “19대 총선 때 더민주는 통진당과 연대해 한국 국회에 종북 세력 10명 이상을 잠입하게 만든 당”이라고 색깔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어진 경기도 고양갑에서의 지원유세에서도 김 대표의 같은 내용의 비난이 계속되자 후보의 유세장에서는 “문재인 빨갱이”라는 구호가 청중들로부터 터져 나오는 광경이 목격되었으나 그다지 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야권의 승리로 끝난 20대 총선에서 북한 문제는 언제든 정치판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다. 원체 공식 선거 시작 전부터 북한의 각종 위협과 공포가 거의 모든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하면서 이번 총선에서 다루어져야 할 민생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현 정부의 경제와 민생에 대한 실패는 상당 부분 북한 뉴스에 가려져 제대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집권 여당에서 준비한 민생과 복지 공약도 2012년의 대통령선거에 비해 대폭 후퇴해 있었다.
공천 파동에 휩싸인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 때 이미 제시했다가 집권 이후 파기했던 공약을 총선에서 재활용하는 궁색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교 무상교육, 영유아 보육예산 지원과 같은 공약이 바로 그러했다. 여기에다 시간당 최저임금 9000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하루 만에 이를 취소하는 해프닝은 새누리당 내부 시스템이 마비되었음을 보여주는 백미였다.
청년정책 역시 이미 시행 중인 국제인턴 확대 외에 쓸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민생과 복지에서 집권당의 취약성을 적절하게 은폐하면서 보수 성향의 표를 결집하려면 북한 문제로 관심을 돌려야 했다. 또다시 선거를 애국주의 운동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새누리당이 유리한 공간에서 야당을 상대해야 했다. 그 필요성이 가장 고조된 시기에 북한식당 종업원 탈북 문제가 터져 나왔다.
북한의 청와대 타격 위협과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발사
집단탈북 흘려 대서특필
어김없이 선거 흔들 시한폭탄
민생 문제 뒷전으로 밀려 북풍 소재 충분했는데도
선거 의제화 등극에 실패
여당 내부 분열과 역량 부족
사드 배치조차 금기어 자충수
내년 대선서 여전히 불안요소 어디론가 사라진 시한폭탄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집권당은 북한 문제를 선거의 판을 좌우할 의제로 등록하는 데 실패했다. 2012년 총선 당시의 강정마을 공사 강행 논란, 중국의 탈북자 북한 송환 논란, 그리고 그해 12월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영토 포기 논란은 선거의 핵심 의제로 등록되는 데 성공한 경우였다. 막상 이런 의제가 등록이 되면 정보기관과 언론, 보수단체에 의해 사회 여론의 네트워크상에서 확산이 이루어지고, 여기에 엄청난 사회적 자원이 동원된다. 그런데 이번 선거의 경우에는 충분한 소재가 있었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북한 문제가 의제화되지 않았다. 분명히 정부는 안보 논쟁을 유발시킬 만한 충분한 소재를 던져주었음에도 새누리당은 이상할 정도로 이를 의제화하지 못했다. 사실 총선에서 북풍을 조장하는 것은 그 성공 여부를 떠나 보수 여당이 자신에게 불리한 경제와 민생 의제를 대체하는 하나의 유력한 대안이다. 여기에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로 정체성이 형성된 보수 여당에는 안보 국면에서 북한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지 않는 이런 선거란 참으로 이해하기 곤란한 이상한 행태였다. 선거 당시 여당은 테러방지법에 대한 국민의 상당한 지지라는 자산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테러방지법에 미온적인 야당을 국가를 불안하게 만드는 세력으로 매도하면서 강도 높은 정치 공세를 구사할 기회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의 새누리당이었다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안보 담론을 기획하면서 선거 국면에서 실행할 수 있는 여당 내부의 역량이 준비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정부와 여당의 선거 전략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분열되면서 새누리당은 선거 참사로 내몰리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가장 황당한 대목은 애초 선거용으로 의심되었던 한반도 사드 배치 논란이 새누리당 자신에 의해 철회되었다는 점이다. 사드 배치 예정지가 사드 배치론자인 새누리당 지도부 의원의 지역구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막상 선거 국면에서 사드는 새누리당의 금기어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야당을 공격할 수 있는 새누리당의 유력한 무기 하나가 사라져버렸다. 여기에다가 총선 판세에 대한 판단 오류와 안이한 집단사고가 전략에 대한 무능력으로 연결되면서 새누리당호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 이번에 집권층의 혼란과 무능력이 선거 실패로 이어진 모습은 2010년 지방선거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해 6월 선거는 천안함 사건으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던 시기에 치러졌다. 5월의 국방부 민군합동조사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된 것으로 사건의 진상 발표를 서두른 이유는 임박한 지방선거였다. 5월15일에 인양된 북한의 어뢰 추진체 파편을 운송하고 분석하기에도 바쁜, 단 5일 만에 모든 판단을 완료하고 발표를 서두르는 비정상적인 행태가 바로 그러했다. 얼마나 서둘렀으면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발표장에 전시된 북한 어뢰의 설계도가 다른 엉뚱한 설계도였음이 6월에 밝혀지기도 했고,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이 160톤인지, 130톤인지 헷갈리다가 상반된 보도자료가 나가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서두른 흔적이 나타났다. 이처럼 일정의 촉박함 속에서 집권 세력 내부에서조차 대북 정책의 혼선이 초래됐다. 급조돼 5월24일 발표된 대북 조처 역시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 다수 포함되어 이후 정부에 대한 신뢰성을 극도로 저하시켰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5·24 조치의 핵심적인 내용이었으나 아예 실행조차 되지 않았고, 서해에서의 한·미 해상군사훈련 역시 미국이 거부해 그해 11월까지 실행되지 않다가 연평도 포격사건을 겪어야 했다. 여당이 안보 문제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내부의 혼란으로 비틀거리자 북풍을 도모했음에도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정부 내에서도 청와대와 국방부·합동참모본부(합참)·해군으로 이어지는 지휘계통이 전부 감정적 앙금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하나의 단일한 대오로 안보 국면을 관리하는 데 실패했다. 수시로 나타난 정부의 말 바꾸기와 실수를 국민들에게 노출시키다 보니, 선거 실패라는 혹독한 결과를 피하기 어려운 운명이었다. 2010년의 기억, 무너진 북풍 공작 2010년 이후 6년 만에 야당은 ‘북풍 없는 선거’라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보수정부 8년 동안 치러진 선거 중에 북풍이 없었던 두 선거에서만 야당은 승리했다. 반면 야당의 승리가 예견되던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야당 패배에는 어김없이 상당한 실력을 갖춘 기획그룹의 ‘북풍 공작’이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북풍 공작이 성공하는 선거에선 야당의 군사 문제에 대한 이해 부족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놓고 심판받겠다는 적극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우물쭈물하고 말을 얼버무리는 소극성으로 여당에 정치 공세를 허용하고 말았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 캠프는 이미 여당은 다 알고 있었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 내용과 그 뒤에 개최된 남북 국방장관회담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남북 정상 대화록의 작성 경위와 대화록의 소재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바람에 선거는 물론 그 이후에도 국가정보원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물경 10년의 집권을 경험한 야당치고도 믿을 수 없는 무능력이었다. 면밀한 정보관리와 사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선거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데 그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헷갈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안이하게 안보 문제를 취급한 대가였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내년 대통령선거까지 안보 영역에서 많은 숙제를 안고 가야 할 처지다. 한국은 이제 북한의 핵무장이라는 출구가 없는 외길 수순으로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극단적 대북 압박정책까지 지속되면 머지않은 시기에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불러오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대북 압박정책이 성공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더더욱 북한 체제를 흔드는 방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마주치면서 안보 분야에서 더더욱 험난한 도전과 불안이 예상된다. 세찬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깃대처럼 외롭게 흔들리는 대한민국호에서 이제 국가와 국민의 생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안보가 정치에 악용되는 걸 반복해온 우리 정치는 또다시 이를 권력 재편의 계기로 활용하려는 나쁜 습관을 그리 쉽게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김종대
▶ 김종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할 말은 하는 군사전문가. 1993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과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방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별들의 암투를 지켜봤다. 권력과 군대가 독점하는 안보가 아닌 ‘진짜 안보’를 지향한다. 제20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발사
집단탈북 흘려 대서특필
어김없이 선거 흔들 시한폭탄
민생 문제 뒷전으로 밀려 북풍 소재 충분했는데도
선거 의제화 등극에 실패
여당 내부 분열과 역량 부족
사드 배치조차 금기어 자충수
내년 대선서 여전히 불안요소 어디론가 사라진 시한폭탄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집권당은 북한 문제를 선거의 판을 좌우할 의제로 등록하는 데 실패했다. 2012년 총선 당시의 강정마을 공사 강행 논란, 중국의 탈북자 북한 송환 논란, 그리고 그해 12월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영토 포기 논란은 선거의 핵심 의제로 등록되는 데 성공한 경우였다. 막상 이런 의제가 등록이 되면 정보기관과 언론, 보수단체에 의해 사회 여론의 네트워크상에서 확산이 이루어지고, 여기에 엄청난 사회적 자원이 동원된다. 그런데 이번 선거의 경우에는 충분한 소재가 있었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북한 문제가 의제화되지 않았다. 분명히 정부는 안보 논쟁을 유발시킬 만한 충분한 소재를 던져주었음에도 새누리당은 이상할 정도로 이를 의제화하지 못했다. 사실 총선에서 북풍을 조장하는 것은 그 성공 여부를 떠나 보수 여당이 자신에게 불리한 경제와 민생 의제를 대체하는 하나의 유력한 대안이다. 여기에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로 정체성이 형성된 보수 여당에는 안보 국면에서 북한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지 않는 이런 선거란 참으로 이해하기 곤란한 이상한 행태였다. 선거 당시 여당은 테러방지법에 대한 국민의 상당한 지지라는 자산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테러방지법에 미온적인 야당을 국가를 불안하게 만드는 세력으로 매도하면서 강도 높은 정치 공세를 구사할 기회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의 새누리당이었다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안보 담론을 기획하면서 선거 국면에서 실행할 수 있는 여당 내부의 역량이 준비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정부와 여당의 선거 전략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분열되면서 새누리당은 선거 참사로 내몰리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가장 황당한 대목은 애초 선거용으로 의심되었던 한반도 사드 배치 논란이 새누리당 자신에 의해 철회되었다는 점이다. 사드 배치 예정지가 사드 배치론자인 새누리당 지도부 의원의 지역구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막상 선거 국면에서 사드는 새누리당의 금기어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야당을 공격할 수 있는 새누리당의 유력한 무기 하나가 사라져버렸다. 여기에다가 총선 판세에 대한 판단 오류와 안이한 집단사고가 전략에 대한 무능력으로 연결되면서 새누리당호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 이번에 집권층의 혼란과 무능력이 선거 실패로 이어진 모습은 2010년 지방선거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해 6월 선거는 천안함 사건으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던 시기에 치러졌다. 5월의 국방부 민군합동조사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된 것으로 사건의 진상 발표를 서두른 이유는 임박한 지방선거였다. 5월15일에 인양된 북한의 어뢰 추진체 파편을 운송하고 분석하기에도 바쁜, 단 5일 만에 모든 판단을 완료하고 발표를 서두르는 비정상적인 행태가 바로 그러했다. 얼마나 서둘렀으면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발표장에 전시된 북한 어뢰의 설계도가 다른 엉뚱한 설계도였음이 6월에 밝혀지기도 했고,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이 160톤인지, 130톤인지 헷갈리다가 상반된 보도자료가 나가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서두른 흔적이 나타났다. 이처럼 일정의 촉박함 속에서 집권 세력 내부에서조차 대북 정책의 혼선이 초래됐다. 급조돼 5월24일 발표된 대북 조처 역시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 다수 포함되어 이후 정부에 대한 신뢰성을 극도로 저하시켰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5·24 조치의 핵심적인 내용이었으나 아예 실행조차 되지 않았고, 서해에서의 한·미 해상군사훈련 역시 미국이 거부해 그해 11월까지 실행되지 않다가 연평도 포격사건을 겪어야 했다. 여당이 안보 문제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내부의 혼란으로 비틀거리자 북풍을 도모했음에도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정부 내에서도 청와대와 국방부·합동참모본부(합참)·해군으로 이어지는 지휘계통이 전부 감정적 앙금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하나의 단일한 대오로 안보 국면을 관리하는 데 실패했다. 수시로 나타난 정부의 말 바꾸기와 실수를 국민들에게 노출시키다 보니, 선거 실패라는 혹독한 결과를 피하기 어려운 운명이었다. 2010년의 기억, 무너진 북풍 공작 2010년 이후 6년 만에 야당은 ‘북풍 없는 선거’라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보수정부 8년 동안 치러진 선거 중에 북풍이 없었던 두 선거에서만 야당은 승리했다. 반면 야당의 승리가 예견되던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야당 패배에는 어김없이 상당한 실력을 갖춘 기획그룹의 ‘북풍 공작’이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북풍 공작이 성공하는 선거에선 야당의 군사 문제에 대한 이해 부족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놓고 심판받겠다는 적극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우물쭈물하고 말을 얼버무리는 소극성으로 여당에 정치 공세를 허용하고 말았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 캠프는 이미 여당은 다 알고 있었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 내용과 그 뒤에 개최된 남북 국방장관회담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남북 정상 대화록의 작성 경위와 대화록의 소재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바람에 선거는 물론 그 이후에도 국가정보원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물경 10년의 집권을 경험한 야당치고도 믿을 수 없는 무능력이었다. 면밀한 정보관리와 사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선거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데 그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헷갈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안이하게 안보 문제를 취급한 대가였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내년 대통령선거까지 안보 영역에서 많은 숙제를 안고 가야 할 처지다. 한국은 이제 북한의 핵무장이라는 출구가 없는 외길 수순으로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극단적 대북 압박정책까지 지속되면 머지않은 시기에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불러오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대북 압박정책이 성공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더더욱 북한 체제를 흔드는 방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마주치면서 안보 분야에서 더더욱 험난한 도전과 불안이 예상된다. 세찬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깃대처럼 외롭게 흔들리는 대한민국호에서 이제 국가와 국민의 생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안보가 정치에 악용되는 걸 반복해온 우리 정치는 또다시 이를 권력 재편의 계기로 활용하려는 나쁜 습관을 그리 쉽게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김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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