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국무위원, 군,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 인사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9차 중앙통합방위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북한 핵실험, 그 후
북한 핵실험, 그 후
1월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정부는 기묘한 혼란에 빠져 있다. 첫째, 북한 핵실험의 실상에 대한 인식이 혼란스럽다.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동북아 안보지형을 바꾸는 사건”이며 “북한 핵문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국방부는 7일 이번 핵실험이 “수소폭탄 실험은 아니”고 “수소폭탄 이전 단계인 증폭핵분열탄 실험이라도 실패한 것”이라며 평가절하했다. 국방부 말대로라면 박 대통령의 특별담화는 너무 오버한 셈이다. 이럴 때는 정부의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북한 핵 능력에 대한 합동평가를 통해 합의된 판단이 나와야 한다. 이는 현 위기 국면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절차임에도 이상할 정도로 정부 내에서 움직임이 없다.
사라진 북핵의 실상과 대책
둘째,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정부의 종합적인 목표나 대책이 없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 문제를 넘어 북한 문제 그 자체를 다루겠다”고 하고 있으나,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북한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면 북한의 정권을 교체하고 체제를 붕괴시켜 흡수통일을 하자는 이야기로도 해석될 수도 있으나 그 누구도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셋째, 핵실험 직후부터 청와대에 의한 설익은 대책이 남발되면서 외교·안보 정책 전반에 심각한 혼란이 초래되고 있다. 지난 8일 재개된 대북 확성기 방송은 국방부와 통일부의 신중론을 제압한 청와대의 전격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졌다. 그 이튿날 조간신문들은 확성기 방송이 “박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박 대통령이 22일 천명한 “6자회담 무용론”, “5자회담 개최” 역시 외교부 의견과 전혀 무관하게 박 대통령이 직접 논의를 주도하고 외교부는 뒤늦게 대통령 발언으로 인한 부작용을 수습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사드 요격미사일체계(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도 13일의 대통령 담화에서 최초로 “검토한다”는 입장이 개진되고 나서 국방부가 뒤늦게 이를 보완하는 모양새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 안에서조차 외교안보 라인이 박 대통령의 발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허둥댄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국가의 중요한 외교·안보 정책은 부처의 장관들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의견을 조율한 뒤에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회의를 열 틈도 없이 박 대통령이 미리 결정을 하고 뒤늦게 부처가 지침을 받는 양상이다. 박 대통령이 폭주하는 모습을 보이는 동안 정부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어떠한 종합대책이나 일관된 목표 제시도 없는 공황 상태에 내몰리게 된다. 여기서 박 대통령의 행태는 마치 중병에 걸린 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좋다는 건 무엇이든 먹고 보자는 것과 같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대북 경제제재의 열쇠를 쥔 “중국의 협조가 중요하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으면, 중국이 반발하는 사드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 검토 문제는 뒤로 미루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다. 외교가 전면에 나설 때는 군사는 뒤로 물러나 있다가 외교가 실패했을 때 나서도 늦지가 않다. 그러나 외교와 군사 조처가 혼재되어 동시에 쏟아져 나오면, 우선순위에서 혼란이 생기고 서로가 그 효과를 잠식하게 된다. 실제로 13일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 문제를 검토하겠다면서 중국의 책임론을 거론하자 이틀 만인 15일에 중국은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를 통해 “한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매몰차게 거절하는 태도를 취했다. 사드 배치 등을 앞세워 우리가 중국을 압박하는 태도를 취하려면 한·미 간에도 충분한 정책 조율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전략적 무시’라며 북한 핵실험에 오바마 대통령과 케리 국무장관이 신년 연설에서도 일절 북한을 거론하지 않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에 한국이 혼자서 중국을 압박하고 다그치는 상황은 누가 보아도 무모했다. 같은 시기에 미국은 북한 문제가 아니라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인공섬 건설 문제로 날카롭게 대립하던 터였다. 그 결과 되돌아온 것은 중국의 냉대였다.
확성기 재개, 5자회담 추진…
대통령이 터뜨린 폭죽에
정부 부처 따라잡기 바쁘고
미·중·일 외교 좌충우돌하다
주변국 냉대에 갇혀버렸다 연평해전 때는 ‘기계적 사고’
독도문제는 ‘소신없는 사고’
이젠 무모한 핵무장론까지 등장
외교·군사·정보 한 테이블 놓고
장기적 안목에서 정세 주도해야 이도 저도 아니고 소신도 없고 존 스타인브루너라는 학자의 ‘의사결정 이론’에 따르면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의 인식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번째는 기계적이고 일상적인 사고(grooved thinking)로, 기존 관료조직이 알아서 일처리를 할 것으로 믿고 자신이 챙겨야 할 업무를 하부에 위임해버리는 경우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의 제1연평해전과 2002년의 제2연평해전 당시 군이 잘 알아서 처리할 것으로 믿고 직접 위기관리에 개입하지 않은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현장에서 군의 조처는 물론이고 이후 사태 수습 과정까지 청와대가 빈틈없이 관리했어야 하는데, 제1연평해전 당시에는 남북 차관급 회담, 제2연평해전 당시에는 한일월드컵과 정상회담이라는 다른 요인과 엮여 위기관리에 전념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향후 김 대통령에 대한 숱한 정치적 비난으로 악용됐다. 두번째는 이도 저도 아닌 ‘소신 없는 사고’(uncommitted thinking)로,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그때그때 그럴듯한 의견에 따라 상반된 대책을 남발하는 일관성 없는 행동을 보이는 경우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한일군사협정을 체결하려고 시도하다가 역풍을 맞자 돌연 독도 문제를 들고나와 일본과 대립각을 세운 극심한 정책 변경이 바로 그러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한일군사협정 체결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건의에 따라 추진하다가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정무수석 의견에 따라 대일 강경노선으로 한달 만에 선회했다. 세번째가 가장 바람직한 ‘체계적인 사고’(theoretical thinking)로, 외교, 군사, 정보에 관한 종합적인 대책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가장 적합한 정책 수단을 찾아내 일관되게 목표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벌어진 1962년에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위기관리집행위원회(EXCOM)를 운영하면서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대안을 한 테이블에 다 올려놓도록 자유로운 토론을 유도하고, 그중 가장 합리적인 안을 선택하는 집단적 의사결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최근 북한 핵실험 정국은 대통령과 정부에 세번째 방식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중대한 위기였다. 우선 국제정세가 기존의 세 차례 핵실험 당시와는 판이했다. 과거 동아시아 정세는 한반도,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과 같은 분쟁의 열점 중 어느 한 곳이 위험해지면 그곳에 강대국이 몰려가고 나머지는 안정을 유지하는 양상이었다. 그런데 1월의 북한 핵실험을 전후한 동아시아 정세는 위 네 곳에서 한꺼번에 긴장이 고조되는 매우 특이한 양상이었다. 이미 남중국해에서는 중국의 인공섬 건설 문제로 미·중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대만에서는 새로운 정권이 출현하여 중국과의 긴장이 예고되자 중국은 즉각 동중국해에서 해상 실탄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향후 대만해협에서 새로운 긴장이 조성됨을 예고하는 매우 중요한 신호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다 한반도에서 북 핵실험으로 한·미·일의 군사적 결속이 강화되자, 중국은 이를 자신에 대한 견제로 인식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박근혜 정부는 동시다발적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동아시아 정세를 고려하여 대주변국 외교에 있어 세심한 검토와 함께 상황에 맞는 새로운 주변 외교의 방향과 원칙을 필요로 했다. 그러한 전략적 구상이 준비되기도 전인 1월7일에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10일에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전개, 13일에 사드 요격미사일체계의 한반도 배치 등의 군사 조처를 숨가쁘게 쏟아냈다. 이후 미국의 무관심, 일본의 지도국 행세, 중국의 냉대가 차례로 나타나면서 한국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고립되기 시작했다. 북한을 제재하기 위한 한·미·일 차관급 회담이 16일 도쿄에서 개최되자 미국과 일본은 남중국해 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을 압박하는 데 한국을 동참시키려 했지만, 이는 중국의 협력을 얻어 북한을 제재하려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크게 상반된 것이었다. 결국 한·미·일 군사적 공조가 북한을 제재하는 국제공조에 부정적 효과까지 초래하는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당황한 한국 정부는 미·일의 요구에 따라 개최되는 합참의장 회의에 선뜻 참여를 결정하지 못하고 중국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결국 북한 핵실험 이후 국제적으로 고립된 당사자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불편한 사실이 드러났다. 오히려 북한은 중국의 고강도 대북 제재 반대, 북한과 대화 추진 방침이라는 우군을 확보하는 양상이다. 하루 만에 꼬리 내린 5자회담론 외교적 입지가 심각하게 축소된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6자회담 무용론과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 개최를 들고나오자, 같은 날 중국 정부의 훙레이 대변인은 이마저도 “안 된다”며 6자회담 개최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자 이튿날인 23일부터 청와대와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서 전날의 박 대통령 발언은 “6자회담 무용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6자회담 틀 내에서 5자회담을 하자는 것”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누가 보더라도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눈치 외교였다. 여기서 박근혜 정부는 중국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며 대중국 외교에 대한 분명한 방향과 원칙을 세우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다시 26일에 한민구 국방장관이 방송에 나와 사드 요격미사일 배치로 재차 중국을 압박하자 중국은 <환구시보>를 통해 한국에 한·중 관계의 파국을 경고하는 극도로 악화된 상황이 나타났다. 이런 대중 외교에서의 일련의 상황은 중국에 대한 기대와 서운함이 교차하는 박근혜 정부가 수시로 대책을 남발하고 입장을 번복하는 소신없는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사드 요격미사일 체계는 작년에 애슐린 카터 미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하여 “사드는 현재 생산 중인 무기”라며 당장 한국에 배치할 사드 포대가 준비되지 않았음을 밝혀 논란이 종결된 사안이다. 미국에는 현재 5번째 사드 포대가 창설되었지만 요격미사일은 총 100기에 불과하다. 5개 포대의 발사대에는 예비물량을 제외하더라도 240기가 장착되어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140기 이상 부족한 실정이다. 지금 당장 사드 포대의 한반도 배치를 결정한다 하더라도 부지 조성, 포대의 완전한 무장, 비용 분담 등에 대한 제반 준비를 하려면 적어도 3년 이상이 소요된다. 당장 사드 포대 배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반도 배치를 거론하는 것은 당연히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레토릭(수사)이라는 의미가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문제는 이런 압박으로 과연 중국이 한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중국은 한국과 군사적 긴장까지 감수하며 거꾸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별도로 우리 사회의 보수언론과 여당이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주장하며 이를 미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공공연히 내세우는 새로운 흐름도 나타났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을 적극적인 관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핵무장으로 미국을 압박하자는 이러한 흐름은 한·미 동맹의 파탄과 한국의 국제적 고립을 각오해야 할 도박에 가깝다. 사드로 중국을 압박하고 핵무장으로 미국을 압박하자는 두 개의 대안이 동시에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접근법 자체가 자기중심적인 ‘희망적 사고’의 산물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 강대국 사이에서 아직은 중견국가로서 외교안보의 틀을 완성하지 못한 한국이 핵을 앞세워 세계 1, 2위의 강대국을 압박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한국의 완전한 국제적 고립의 위험을 감수하는 무모함을 보여준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초래된 한국 사회지도층의 공황 상태, 즉 리베카 솔닛이 말한 ‘엘리트 패닉’의 전형이다. 엘리트 패닉이란 국민은 냉철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는데 정작 나중에 책임 추궁을 두려워하는 국가지도층이 먼저 혼란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수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기간에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임을 진솔하게 국민에게 고백하고, 다음 대통령이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의 토대만이라도 구축하겠다는 나름의 목표 제시가 있어야 한다. 당장 해결될 북핵 문제가 아니라면 장기적 안목에서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수단을 종합하는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한반도 구상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아니고 설익은 대책이 계속 남발되면서 주변국 외교가 파탄으로 가는 지금의 상황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하나?
김종대
▶ 김종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할 말은 하는 군사전문가. 1993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과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방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별들의 암투를 지켜봤다. 권력과 군대가 독점하는 안보가 아닌 ‘진짜 안보’를 지향한다.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통령이 터뜨린 폭죽에
정부 부처 따라잡기 바쁘고
미·중·일 외교 좌충우돌하다
주변국 냉대에 갇혀버렸다 연평해전 때는 ‘기계적 사고’
독도문제는 ‘소신없는 사고’
이젠 무모한 핵무장론까지 등장
외교·군사·정보 한 테이블 놓고
장기적 안목에서 정세 주도해야 이도 저도 아니고 소신도 없고 존 스타인브루너라는 학자의 ‘의사결정 이론’에 따르면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의 인식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번째는 기계적이고 일상적인 사고(grooved thinking)로, 기존 관료조직이 알아서 일처리를 할 것으로 믿고 자신이 챙겨야 할 업무를 하부에 위임해버리는 경우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의 제1연평해전과 2002년의 제2연평해전 당시 군이 잘 알아서 처리할 것으로 믿고 직접 위기관리에 개입하지 않은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현장에서 군의 조처는 물론이고 이후 사태 수습 과정까지 청와대가 빈틈없이 관리했어야 하는데, 제1연평해전 당시에는 남북 차관급 회담, 제2연평해전 당시에는 한일월드컵과 정상회담이라는 다른 요인과 엮여 위기관리에 전념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향후 김 대통령에 대한 숱한 정치적 비난으로 악용됐다. 두번째는 이도 저도 아닌 ‘소신 없는 사고’(uncommitted thinking)로,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그때그때 그럴듯한 의견에 따라 상반된 대책을 남발하는 일관성 없는 행동을 보이는 경우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한일군사협정을 체결하려고 시도하다가 역풍을 맞자 돌연 독도 문제를 들고나와 일본과 대립각을 세운 극심한 정책 변경이 바로 그러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한일군사협정 체결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건의에 따라 추진하다가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정무수석 의견에 따라 대일 강경노선으로 한달 만에 선회했다. 세번째가 가장 바람직한 ‘체계적인 사고’(theoretical thinking)로, 외교, 군사, 정보에 관한 종합적인 대책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가장 적합한 정책 수단을 찾아내 일관되게 목표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벌어진 1962년에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위기관리집행위원회(EXCOM)를 운영하면서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대안을 한 테이블에 다 올려놓도록 자유로운 토론을 유도하고, 그중 가장 합리적인 안을 선택하는 집단적 의사결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최근 북한 핵실험 정국은 대통령과 정부에 세번째 방식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중대한 위기였다. 우선 국제정세가 기존의 세 차례 핵실험 당시와는 판이했다. 과거 동아시아 정세는 한반도,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과 같은 분쟁의 열점 중 어느 한 곳이 위험해지면 그곳에 강대국이 몰려가고 나머지는 안정을 유지하는 양상이었다. 그런데 1월의 북한 핵실험을 전후한 동아시아 정세는 위 네 곳에서 한꺼번에 긴장이 고조되는 매우 특이한 양상이었다. 이미 남중국해에서는 중국의 인공섬 건설 문제로 미·중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대만에서는 새로운 정권이 출현하여 중국과의 긴장이 예고되자 중국은 즉각 동중국해에서 해상 실탄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향후 대만해협에서 새로운 긴장이 조성됨을 예고하는 매우 중요한 신호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다 한반도에서 북 핵실험으로 한·미·일의 군사적 결속이 강화되자, 중국은 이를 자신에 대한 견제로 인식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박근혜 정부는 동시다발적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동아시아 정세를 고려하여 대주변국 외교에 있어 세심한 검토와 함께 상황에 맞는 새로운 주변 외교의 방향과 원칙을 필요로 했다. 그러한 전략적 구상이 준비되기도 전인 1월7일에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10일에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전개, 13일에 사드 요격미사일체계의 한반도 배치 등의 군사 조처를 숨가쁘게 쏟아냈다. 이후 미국의 무관심, 일본의 지도국 행세, 중국의 냉대가 차례로 나타나면서 한국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고립되기 시작했다. 북한을 제재하기 위한 한·미·일 차관급 회담이 16일 도쿄에서 개최되자 미국과 일본은 남중국해 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을 압박하는 데 한국을 동참시키려 했지만, 이는 중국의 협력을 얻어 북한을 제재하려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크게 상반된 것이었다. 결국 한·미·일 군사적 공조가 북한을 제재하는 국제공조에 부정적 효과까지 초래하는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당황한 한국 정부는 미·일의 요구에 따라 개최되는 합참의장 회의에 선뜻 참여를 결정하지 못하고 중국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결국 북한 핵실험 이후 국제적으로 고립된 당사자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불편한 사실이 드러났다. 오히려 북한은 중국의 고강도 대북 제재 반대, 북한과 대화 추진 방침이라는 우군을 확보하는 양상이다. 하루 만에 꼬리 내린 5자회담론 외교적 입지가 심각하게 축소된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6자회담 무용론과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 개최를 들고나오자, 같은 날 중국 정부의 훙레이 대변인은 이마저도 “안 된다”며 6자회담 개최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자 이튿날인 23일부터 청와대와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서 전날의 박 대통령 발언은 “6자회담 무용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6자회담 틀 내에서 5자회담을 하자는 것”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누가 보더라도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눈치 외교였다. 여기서 박근혜 정부는 중국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며 대중국 외교에 대한 분명한 방향과 원칙을 세우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다시 26일에 한민구 국방장관이 방송에 나와 사드 요격미사일 배치로 재차 중국을 압박하자 중국은 <환구시보>를 통해 한국에 한·중 관계의 파국을 경고하는 극도로 악화된 상황이 나타났다. 이런 대중 외교에서의 일련의 상황은 중국에 대한 기대와 서운함이 교차하는 박근혜 정부가 수시로 대책을 남발하고 입장을 번복하는 소신없는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사드 요격미사일 체계는 작년에 애슐린 카터 미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하여 “사드는 현재 생산 중인 무기”라며 당장 한국에 배치할 사드 포대가 준비되지 않았음을 밝혀 논란이 종결된 사안이다. 미국에는 현재 5번째 사드 포대가 창설되었지만 요격미사일은 총 100기에 불과하다. 5개 포대의 발사대에는 예비물량을 제외하더라도 240기가 장착되어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140기 이상 부족한 실정이다. 지금 당장 사드 포대의 한반도 배치를 결정한다 하더라도 부지 조성, 포대의 완전한 무장, 비용 분담 등에 대한 제반 준비를 하려면 적어도 3년 이상이 소요된다. 당장 사드 포대 배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반도 배치를 거론하는 것은 당연히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레토릭(수사)이라는 의미가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문제는 이런 압박으로 과연 중국이 한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중국은 한국과 군사적 긴장까지 감수하며 거꾸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별도로 우리 사회의 보수언론과 여당이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주장하며 이를 미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공공연히 내세우는 새로운 흐름도 나타났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을 적극적인 관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핵무장으로 미국을 압박하자는 이러한 흐름은 한·미 동맹의 파탄과 한국의 국제적 고립을 각오해야 할 도박에 가깝다. 사드로 중국을 압박하고 핵무장으로 미국을 압박하자는 두 개의 대안이 동시에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접근법 자체가 자기중심적인 ‘희망적 사고’의 산물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 강대국 사이에서 아직은 중견국가로서 외교안보의 틀을 완성하지 못한 한국이 핵을 앞세워 세계 1, 2위의 강대국을 압박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한국의 완전한 국제적 고립의 위험을 감수하는 무모함을 보여준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초래된 한국 사회지도층의 공황 상태, 즉 리베카 솔닛이 말한 ‘엘리트 패닉’의 전형이다. 엘리트 패닉이란 국민은 냉철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는데 정작 나중에 책임 추궁을 두려워하는 국가지도층이 먼저 혼란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수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기간에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임을 진솔하게 국민에게 고백하고, 다음 대통령이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의 토대만이라도 구축하겠다는 나름의 목표 제시가 있어야 한다. 당장 해결될 북핵 문제가 아니라면 장기적 안목에서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수단을 종합하는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한반도 구상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아니고 설익은 대책이 계속 남발되면서 주변국 외교가 파탄으로 가는 지금의 상황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하나?
김종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