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 오산공군기지 탄저균 사고를 조사하기 위한 한미합동실무단이 지난 8월6일 사고 현장인 오산기지 내 생물식별검사실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주한미군은 2009년부터 한국 정부에 통보하지 않고 15차례 사균화된 탄저균을 반입했다고 지난 17일 국방부가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서울, 미군의 ‘생물테러’
서울, 미군의 ‘생물테러’
지식엔진연구소에서 펴낸 <시사상식사전>에는 탄저균(Bacillus anthracis)에 대해 “호흡기를 통해서도 감염되기 때문에 생물학 무기로도 활용된다. 탄저균은 생물무기로 사용될 경우 그 위력이 수소폭탄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있다. 설탕 한 봉지만큼의 탄저균은 미국 전역을 파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자는 기초적인 생물학적 생산기술만 있어도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고 오랫동안 저장 가능하며 미사일이나 로켓, 대포, 비행기를 이용한 대량 살포가 가능하다. 또 탄저균은 노출이 됐을 때 무색, 무취, 무미의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기를 통한 공격이 있을 때 감시 및 추적을 피할 수 있다. 1980년대 들어 미국 조사단은 이라크가 8000리터의 탄저 포자를 생산한 것을 밝혀내게 되는데 이 양은 지구상의 인류를 모두 살상시킬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탄저균 포자가 퍼지면…
이 설명만 보면 탄저균은 핵무기보다 위력적인 재앙의 씨앗이다. 그러나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12월22일 참여연대에서 개최된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자연상태의 탄저균은 그처럼 위험하지 않다. 다만 그 독성을 증가시키는 인공적 배양을 통해서만 위험한 무기가 된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도 가축에게 탄저병이 발생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지만 그 피해는 미미했다. 자연상태로 사람에게 전염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백신 개발도 하지 않고 있다. 주로 수목을 통해 소나 양과 같은 가축에게 전염될 뿐이지 잡식이나 육식 동물은 감염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 감염되도록 인공적 변형을 가하게 되면 문제는 전혀 달라진다. 이때부터는 사람에 대해서 치명적인 탄저를 발생시키는 무서운 독성을 발휘하는 생물병기로 돌변한다. 탄저균의 포자에서 생성되는 독소가 혈액 내의 면역세포를 파괴하면서 급성쇼크가 일어나고 정도가 심해지면 사망에 이른다. 사망률도 일부 연구에 따르면 95%에 달해 치사율이 높다는 천연두의 30%보다 월등하게 높다. 인간이 그렇게 위험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1차대전부터 인류는 탄저균이 아주 효율적인 생물병기라는 점을 알아차리고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변종의 탄저균을 만드는 실험을 진행해왔다. 미국, 일본, 독일, 옛 소련, 영국은 2차대전 때부터 경쟁적으로 탄저균을 실험했다. 영국이 그뤼나드 섬에서 탄저균 폭탄을 투하한 실험이나 일본 731부대의 악명 높은 생체실험이 대표적이다. 현대에 올수록 탄저균이 더욱 생물무기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분말 형태로 운송과 보관이 편리하여 전쟁 아닌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테러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탄저균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 수천 종류에 이르는 다양한 항체와 백신 개발에 더욱더 매달리게 되었는데, 역설적으로 이것이 탄저균의 위험을 더 고조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1979년 옛 소련 시절, 스베르들롭스크에서 약 2천명의 주민들이 갑자기 초기 감기 증상과 유사한 고열과 기침 증상을 보이다 63명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초기 탄저병에 걸린 소에서 전염병이 발생한 것이라는 소련 당국의 설명과 달리 이후 조사 과정에서 인근의 탄저균 실험실에서 공기를 통해 탄저균 포자가 유포된 것으로 밝혀졌다. 2001년 9·11테러 직후에는 미 정부기관과 언론사에 5개의 탄저균 분말이 담긴 우편봉투가 배달되어 우편물을 취급하는 직원 등 5명이 숨졌다. 사건 초기에 알카에다가 테러의 배후라는 의심이 고조됐으나 편지에 사용된 탄저균은 ‘에임스’라는 이름의 변종으로 미군 전염병연구소(USAMRIID)가 보관한 탄저균과 유전적으로 같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연구소는 미 농무부로부터 ‘에임스’ 탄저균을 받아 보관하다가 영국, 캐나다와 같은 우방국의 5개 연구소에도 나누어주었던 것이다. 이렇듯 적대세력이 탄저균으로 공격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시작된 군 당국의 연구와 실험이 더 높은 위험을 초래하는 역설은 세균전에서 공격용과 방어용이라는 구분 자체를 무의미하게 한다.
지난 5월 오산기지 배달사고
탄저균 반입 처음이라던 미군
한-미 공동조사 결과 발표
“과거 15차례 더 반입됐다”
결론은 더 많은 탄저균 실험? 미군은 탄저균 네트워크 중심
용산기지 ‘106연구소’는
2013년에야 실험 환경 취득
북한 생물무기만 위험하고
우리 것은 안전하다는 건가? 전세계 탄저균 네트워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장인 하주희 변호사는 “예방적, 방어적 혹은 다른 평화적 목적으로 탄저균을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국제협약인 생물무기금지협약(WBC) 제1조에서도 “질병 예방, 보호 또는 기타 평화적 목적으로도 정당화되지 아니하는 미생물, 기타 세균 또는 독소”에 대하여는 “어떠한 경우에도 개발, 생산, 비축 또는 기타 방법으로 획득하거나 보유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적대세력에 의한 세균전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미군이 주도하는 생물학 연구는 테러세력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압도적으로 많은 세균을 보유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서 생물무기금지협약은 간단하게 무력화된다. 탄저균만 하더라도 그 다양한 유전자 변종을 만들고 실험을 하다 보면 더 새로운 항체와 백신 개발의 요구를 낳게 마련이다. 여기서 미 본토에서의 군 연구소만이 아니라 전세계 수십곳의 연구소에 새로운 변종의 탄저균을 신상품으로 출시하고, 그에 부합되는 새로운 대응 시스템 개발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여기서 유통되는 신종 유전자 변형 세균들은 자연상태로 존재하지 않는 인공적인 독성물질이다. 일단 이런 악마를 만들었으면 이에 대응하는 천사도 만들어야 한다는 내적 논리가 작동한다. 이것이 더 많은 연구와 실험, 더 많은 훈련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다. 정작 심각한 역설은 이러한 생물학 실험들이 실제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는 북한의 생물무기 보유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12월17일 장경수 국방부 정책기획관과 로버트 헤들룬드 주한미군사령부 기획참모부장은 주한미군 용산기지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은 탄저균, 페스트균 등 총 13종의 생물학 작용제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테러 또는 전면전에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추정’이라는 말의 뜻 그대로 북한의 생물무기 수준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면 더 많은 연구와 실험을 정당화하는 다음의 말은 당연한 귀결이다. “주한미군과 한국 정부 인원의 장비시험 및 훈련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생물학 작용제 검사용 샘플이 한국으로 반입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주한미군과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실험실 대응 네트워크(LRN)에 등록된 한국 질병관리본부의 실험실을 지원하기 위한 샘플 반입도 포함된다.” 이날 발표된 ‘주한미군 오산기지 탄저균 배달사고 관련 한미합동실무단 운영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2009년부터 올해 4월까지 모두 15차례에 걸쳐 사균화된 탄저균과 페스트균 검사용 표본을 국내 반입해 실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 오산에서 탄저균 반입사건이 난 직후 “단 한 차례 처음으로 반입한 것”이라는 주한미군 설명은 거짓이었던 셈이다. 이 중 오산기지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배달사고에 앞선 15차례의 실험은 용산기지 내 한 ‘간이병원’에서 이뤄졌으며, 그 수량, 반입 목적, 사후 처리에 대해서는 “규정에 따라 안전하게 이루어졌다”는 짤막한 설명 외에 그 내용이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경악할 만한 사실은 용산 내 한 병원시설의 정체다. 탄저균은 2009년부터 용산으로 반입됐는데 이를 실험한 용산기지 내 ‘106식품안전연구소’는 2013년 여름에야 생물안전등급(BSL) 2등급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조처가 이루어졌다. 비활성화된 탄저균은 2등급에 실험할 수 있다는 설명을 그대로 수용한다 하더라도 2013년 이전에는 일종의 무허가 불법시설에서 탄저균을 취급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에 대해 우희종 교수는 “간이 병원시설은 보건의료 분야의 어떤 법령과 제도와 학술서에도 없는 정체불명의 개념이다. 이러한 미군의 설명을 절대 수용해서는 안 된다”며 진상 규명의 목소리를 높인다.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 양근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안산6)에 따르면 이런 시설은 “음압장치가 없고, 이중출입문에 헤파필터(공기에서 미세한 입자를 제거하는 장치)를 통해 내부 공기를 밖으로 환기시키는 설비만 갖추고 있어 보건소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런 시설에서 과거에도 여러 차례 유사한 실험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연구·관리 독점이 더 위험 북한의 생물무기 위협에 대한 조기경보체계를 갖춘다는 미군의 ‘주피터 프로그램’의 선의의 목적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국 정부의 검역주권을 무시하고 주한미군이 독단적으로 이렇게 허술한 시스템으로 고위험 병원균을 관리해왔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생물무기가 그토록 무섭다고 하면서 그 못지않게 무서운 미군이 보유한 세균 샘플은 마치 안전이 저절로 보장되는 것처럼 묘사된다. 이와 관련된 한미합동실무단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첫째, 한미행정협정(SOFA)에 주한미군의 위험물질 반입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반입에 문제는 없다. 둘째, 우리나라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사균화된 세균 샘플에 대한 독성 여부를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용산과 오산에 반입된 샘플은 ‘고위험 병원체’에 해당되지 않는다. 셋째, 앞으로도 생물학 작용제 검사용 샘플은 지속적으로 한국에 반입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세균의 독성은 그 국적이 북한이냐 미군이냐를 가리지 않고 분자생물학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임상의 문제일 뿐이다. 불활성화되지 않는 살아 있을 수도 있는 탄저균이 민간 택배회사의 화물로 한국에 도착하여 ‘군사화물’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검역 절차 없이 주한미군에 반입됐다면 그 자체가 바로 생물테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위협적 행동이다. 미 정부도 이런 세균 유통 실태를 ‘중대한 실수’로 인정한 상황이다. 그런데 합동실무조사단이 이런 명백한 위험성에 대해 단지 협정이나 법률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정당화하는 것은 북한의 생물 테러 위협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행태라고 비난받을 만하지 않은가? 국민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우리 정부가 오산에서 탄저균 배달사건이 발생한 5월 말부터 미국에 어떠한 진상 규명, 사과, 재발 방지 요구를 적극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여론의 질타를 묵묵히 견디며 소극적인 조처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형식적인 조사와 간단한 사실 확인 외에 적극적인 진상 규명과 개선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5월30일에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사고 관련자에 대해 책임있는 조처를 취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사과를 자청해서 했다. 이 당시 우리 국방부 태도를 보면 ‘뭐 그런 문제를 갖고 사과까지 하시느냐’는 황송한 태도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런 태도의 이면에는 어차피 북한 위협에 노출된 마당에 한국이 미국의 생물무기 시험장이 되는 게 뭐 그리 큰 문제냐는 투의 굴절된 안보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우희종 교수에 따르면 만일 정말로 북한의 생물무기 위협에 대비한 “평화적 실험이 목적이었다면 서울대에 위치한 유엔 산하 국제백신연구소(IVI) 등을 거치거나 반입 등을 숨길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며 “어떤 실험을 했는지조차 밝히지 않는 상황에서 이는 한국이 생물무기 실험장이 됐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1만2000명이 숨지는 대형재난에서도 국제사회는 민간 과학자, 연구소의 협업으로 극복한 전례가 있다. 정말 북한의 탄저균이 무섭다면 주한미군이 연구를 독점하는 대응체계야말로 가장 위험하고 부실하다. 여기에는 한국의 연구소와 정부기관, 기업과 시민사회가 참여하고 협력하는 거버넌스가 고위험성 세균에 맞서는 가장 효율적인 대응력을 창출할 것이다. 올해 메르스 사태 역시 정부와 특정 재벌 계열의 병원이 사태를 독점하고 통제만 하려다가 벌어진 참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주한미군의 비밀시설에서 독점하는 세균전 대응체계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주권 바깥에 있는 또 하나의 위협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김종대
▶ 김종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할 말은 하는 군사전문가. 1993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과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방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별들의 암투를 지켜봤다. 권력과 군대가 독점하는 안보가 아닌 ‘진짜 안보’를 지향한다. 군사전문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으로,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탄저균 반입 처음이라던 미군
한-미 공동조사 결과 발표
“과거 15차례 더 반입됐다”
결론은 더 많은 탄저균 실험? 미군은 탄저균 네트워크 중심
용산기지 ‘106연구소’는
2013년에야 실험 환경 취득
북한 생물무기만 위험하고
우리 것은 안전하다는 건가? 전세계 탄저균 네트워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장인 하주희 변호사는 “예방적, 방어적 혹은 다른 평화적 목적으로 탄저균을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국제협약인 생물무기금지협약(WBC) 제1조에서도 “질병 예방, 보호 또는 기타 평화적 목적으로도 정당화되지 아니하는 미생물, 기타 세균 또는 독소”에 대하여는 “어떠한 경우에도 개발, 생산, 비축 또는 기타 방법으로 획득하거나 보유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적대세력에 의한 세균전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미군이 주도하는 생물학 연구는 테러세력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압도적으로 많은 세균을 보유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서 생물무기금지협약은 간단하게 무력화된다. 탄저균만 하더라도 그 다양한 유전자 변종을 만들고 실험을 하다 보면 더 새로운 항체와 백신 개발의 요구를 낳게 마련이다. 여기서 미 본토에서의 군 연구소만이 아니라 전세계 수십곳의 연구소에 새로운 변종의 탄저균을 신상품으로 출시하고, 그에 부합되는 새로운 대응 시스템 개발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여기서 유통되는 신종 유전자 변형 세균들은 자연상태로 존재하지 않는 인공적인 독성물질이다. 일단 이런 악마를 만들었으면 이에 대응하는 천사도 만들어야 한다는 내적 논리가 작동한다. 이것이 더 많은 연구와 실험, 더 많은 훈련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다. 정작 심각한 역설은 이러한 생물학 실험들이 실제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는 북한의 생물무기 보유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12월17일 장경수 국방부 정책기획관과 로버트 헤들룬드 주한미군사령부 기획참모부장은 주한미군 용산기지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은 탄저균, 페스트균 등 총 13종의 생물학 작용제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테러 또는 전면전에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추정’이라는 말의 뜻 그대로 북한의 생물무기 수준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면 더 많은 연구와 실험을 정당화하는 다음의 말은 당연한 귀결이다. “주한미군과 한국 정부 인원의 장비시험 및 훈련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생물학 작용제 검사용 샘플이 한국으로 반입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주한미군과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실험실 대응 네트워크(LRN)에 등록된 한국 질병관리본부의 실험실을 지원하기 위한 샘플 반입도 포함된다.” 이날 발표된 ‘주한미군 오산기지 탄저균 배달사고 관련 한미합동실무단 운영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2009년부터 올해 4월까지 모두 15차례에 걸쳐 사균화된 탄저균과 페스트균 검사용 표본을 국내 반입해 실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 오산에서 탄저균 반입사건이 난 직후 “단 한 차례 처음으로 반입한 것”이라는 주한미군 설명은 거짓이었던 셈이다. 이 중 오산기지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배달사고에 앞선 15차례의 실험은 용산기지 내 한 ‘간이병원’에서 이뤄졌으며, 그 수량, 반입 목적, 사후 처리에 대해서는 “규정에 따라 안전하게 이루어졌다”는 짤막한 설명 외에 그 내용이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경악할 만한 사실은 용산 내 한 병원시설의 정체다. 탄저균은 2009년부터 용산으로 반입됐는데 이를 실험한 용산기지 내 ‘106식품안전연구소’는 2013년 여름에야 생물안전등급(BSL) 2등급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조처가 이루어졌다. 비활성화된 탄저균은 2등급에 실험할 수 있다는 설명을 그대로 수용한다 하더라도 2013년 이전에는 일종의 무허가 불법시설에서 탄저균을 취급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에 대해 우희종 교수는 “간이 병원시설은 보건의료 분야의 어떤 법령과 제도와 학술서에도 없는 정체불명의 개념이다. 이러한 미군의 설명을 절대 수용해서는 안 된다”며 진상 규명의 목소리를 높인다.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 양근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안산6)에 따르면 이런 시설은 “음압장치가 없고, 이중출입문에 헤파필터(공기에서 미세한 입자를 제거하는 장치)를 통해 내부 공기를 밖으로 환기시키는 설비만 갖추고 있어 보건소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런 시설에서 과거에도 여러 차례 유사한 실험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연구·관리 독점이 더 위험 북한의 생물무기 위협에 대한 조기경보체계를 갖춘다는 미군의 ‘주피터 프로그램’의 선의의 목적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국 정부의 검역주권을 무시하고 주한미군이 독단적으로 이렇게 허술한 시스템으로 고위험 병원균을 관리해왔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생물무기가 그토록 무섭다고 하면서 그 못지않게 무서운 미군이 보유한 세균 샘플은 마치 안전이 저절로 보장되는 것처럼 묘사된다. 이와 관련된 한미합동실무단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첫째, 한미행정협정(SOFA)에 주한미군의 위험물질 반입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반입에 문제는 없다. 둘째, 우리나라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사균화된 세균 샘플에 대한 독성 여부를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용산과 오산에 반입된 샘플은 ‘고위험 병원체’에 해당되지 않는다. 셋째, 앞으로도 생물학 작용제 검사용 샘플은 지속적으로 한국에 반입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세균의 독성은 그 국적이 북한이냐 미군이냐를 가리지 않고 분자생물학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임상의 문제일 뿐이다. 불활성화되지 않는 살아 있을 수도 있는 탄저균이 민간 택배회사의 화물로 한국에 도착하여 ‘군사화물’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검역 절차 없이 주한미군에 반입됐다면 그 자체가 바로 생물테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위협적 행동이다. 미 정부도 이런 세균 유통 실태를 ‘중대한 실수’로 인정한 상황이다. 그런데 합동실무조사단이 이런 명백한 위험성에 대해 단지 협정이나 법률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정당화하는 것은 북한의 생물 테러 위협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행태라고 비난받을 만하지 않은가? 국민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우리 정부가 오산에서 탄저균 배달사건이 발생한 5월 말부터 미국에 어떠한 진상 규명, 사과, 재발 방지 요구를 적극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여론의 질타를 묵묵히 견디며 소극적인 조처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형식적인 조사와 간단한 사실 확인 외에 적극적인 진상 규명과 개선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5월30일에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사고 관련자에 대해 책임있는 조처를 취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사과를 자청해서 했다. 이 당시 우리 국방부 태도를 보면 ‘뭐 그런 문제를 갖고 사과까지 하시느냐’는 황송한 태도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런 태도의 이면에는 어차피 북한 위협에 노출된 마당에 한국이 미국의 생물무기 시험장이 되는 게 뭐 그리 큰 문제냐는 투의 굴절된 안보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우희종 교수에 따르면 만일 정말로 북한의 생물무기 위협에 대비한 “평화적 실험이 목적이었다면 서울대에 위치한 유엔 산하 국제백신연구소(IVI) 등을 거치거나 반입 등을 숨길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며 “어떤 실험을 했는지조차 밝히지 않는 상황에서 이는 한국이 생물무기 실험장이 됐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1만2000명이 숨지는 대형재난에서도 국제사회는 민간 과학자, 연구소의 협업으로 극복한 전례가 있다. 정말 북한의 탄저균이 무섭다면 주한미군이 연구를 독점하는 대응체계야말로 가장 위험하고 부실하다. 여기에는 한국의 연구소와 정부기관, 기업과 시민사회가 참여하고 협력하는 거버넌스가 고위험성 세균에 맞서는 가장 효율적인 대응력을 창출할 것이다. 올해 메르스 사태 역시 정부와 특정 재벌 계열의 병원이 사태를 독점하고 통제만 하려다가 벌어진 참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주한미군의 비밀시설에서 독점하는 세균전 대응체계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주권 바깥에 있는 또 하나의 위협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김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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