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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북, YS 서거에 침묵…김일성 조문파동 앙금탓?

등록 2015-11-23 19:28

DJ·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 달라
당시 정부서 김일성 조문 막아
<노동신문>등 북한 매체들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이틀째인 23일까지도 관련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2009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와는 다른 풍경이다. 북한 매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다음날인 2009년 8월19일 일제히 서거 소식을 보도했다.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은 애석하게 서거하였지만 민족의 화해와 통일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 남긴 공적은 민족과 함께 길이 전해지게 될 것”이라는 조전을 보냈다. 이후 김기남·김양건 노동당 비서 등 조문단 6명이 서울에 왔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도 다음날인 2009년 5월24일 <노동신문>등은 서거 소식을 보도했고, 25일 김 국방위원장 명의의 조전이 유가족에 전달됐다.

북한의 이런 상반된 반응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감정적 앙금 때문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 취임식에서 “어떤 동맹국도 민족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며 비전향 장기수 리인모씨를 북으로 송환할 만큼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강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북핵문제가 불거지자 “핵무기를 갖고 있는 상대와는 결코 악수할 수 없다”며 대북 강경 기조로 돌아섰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때는 ‘조문파동’으로 최악의 남북관계를 겪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북핵 위기를 겪으면서 전쟁 문턱까지 갔으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남-북 정상회담에 전격 합의하면서 남북관계의 물꼬를 돌려놓는 듯했다. 그러나 김 주석이 갑작스럽게 숨지면서 정상회담은 무산됐고, 이어 김일성 주석에 대한 조문 문제가 불거지자 김영삼 정부는 이를 이른바 ‘주사파 색출’의 계기로 삼는 등 대대적인 공안정국을 조성하면서 남북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게 된다.

김영삼 정부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김 주석의 사망에 애도를 표한 것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당시 북한은 이에 대해 “상식 이하의 불손하고 무례” “대범죄” 등의 표현을 동원해 맹렬히 비난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문민정부 끝자락인 98년 1월 “김영삼 정권은 가장 가증스러운 통일의 적”이라고 비난하며 남북관계가 ‘사상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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