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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로 장난하나…공군 창설 이래 ‘최대 위기’

등록 2015-10-02 19:19수정 2015-12-25 16:11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소재 록히드마틴 F-35 공장에서 갓 제작된 F-35A가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방위사업청과 공군은 지난해 9월 미국으로부터 기술이전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도 F-35A 40대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소재 록히드마틴 F-35 공장에서 갓 제작된 F-35A가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방위사업청과 공군은 지난해 9월 미국으로부터 기술이전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도 F-35A 40대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연합뉴스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 ‘KF-X’ 재앙의 막전막후
브루나이에서 열린 ‘제2차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에 참석 중인 김관진 국방장관이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과 만난 때는 2013년 8월28일이었다. 언론은 이날 회담에 대해 양국 국방장관이 전작권 전환 시기의 재연기 문제를 논의했으나 일부 이견을 보인 것으로 보도하였다. 그런데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30일에 귀국한 김 장관은 미리 각 군 참모총장과 이용대 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장을 소집해 놓았다. 일정을 앞당겨 총장들과 협의할 사항이 있고, 여기에 전력자원관리실장이 배석했다는 것은 분명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이하 방추위) 안건과 관련이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때는 미국 보잉사의 F-15SE가 차기 전투기(F-X) 사업의 가격 입찰에 단독으로 통과하여 유력 후보 기종으로 사실상 굳어져가는 시점이었다.

꿈에도 생각 못한 끔찍한 반전

김 장관이 척 헤이글 장관을 만나던 그날 역대 공군 총장 15명이 이에 반대하며 “선정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문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역대 총장들은 “8조3000억원으로 사업비를 제한하지 말고 10조원 이상으로 증액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거침없이 내놨다. 이에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에 소속된 예비역 장성들까지 가세하여 전방위적인 “F-15SE 흔들기”가 진행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왜 정부가 하는 일에 역대 공군 총장까지 나서서 비판하냐”고 역정을 냈다. 돈이 없는 박근혜 정부는 8조3000억원의 사업비를 초과하는 전투기에 대해서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배수진을 치고 사업을 추진해 왔기에 입찰 결과가 번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막상 9월이 되자 분위기는 더욱 이상해졌다. 8월에 미 국방장관이 직접 나서서 김 장관을 압박하고, 미 전직 국방장관 윌리엄 코언이 록히드마틴의 고문사 대표로서 전투기 판매에 개입하는 조짐이 보였다. 여기에 전직 미 국무부 차관보인 커트 캠벨까지 가세하면서 전투기 사업은 막바지에 이르러 안갯속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우선 김관진 장관 스스로가 무언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였다. 9월13일에 박 대통령은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 업무를 보고받으면서 배석한 김관진 장관에게 “(차기 전투기는) 국가안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하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돈줄만 쥐고 기종 결정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테니 김 장관이 알아서 결정만 하라는 뜻으로 비쳤다. 9월15일부터는 이용대 전력자원관리실장이 각 군 총장을 비롯하여 방추위 위원들과 접촉을 추진한 정황도 속속 노출되기 시작했다. 차기 전투기의 최종 기종 결정을 하루 앞둔 9월23일 저녁. 남산의 하얏트호텔 1층의 바에서는 미국의 보잉사 본사, 한국지사 관계자들 대여섯명 정도가 모여 술자리를 갖고 있었다. 다음날로 예정된 국방부 장관 주최의 방추위가 자사의 F-15SE로 기종 결정을 할 것이 확실시되었다. 지난 2년간의 전투기 경쟁에서 최종 승리자가 된 보잉은 이제 마지막 최종 선포식만을 남겨두고 서로의 노고를 평가하고 축하하였다. 이들은 바로 그다음 날에 일어날 끔찍한 반전에 대해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달콤한 와인의 향기에 취해갔다.

2013년 9월24일 차기전투기(F-X)사업 기종 결정을 위해 김관진(오른쪽) 국방장관 주재로 국방부에서 개최된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이날 F-15SE로의 기종 결정이 부결되면서 국방부 기자실은 발칵 뒤집혔다. 사진공동취재단
2013년 9월24일 차기전투기(F-X)사업 기종 결정을 위해 김관진(오른쪽) 국방장관 주재로 국방부에서 개최된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이날 F-15SE로의 기종 결정이 부결되면서 국방부 기자실은 발칵 뒤집혔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 이튿날인 24일 오후 2시에 열린 김관진 장관 주재의 방추위 회의에서 “절대 없다”던 일이 일어났다. 방추위 회의에서 벌어진 장면은 눈과 귀를 의심케 했다. 통상 방추위 의결은 복수안을 비교하여 표결로 결정하는 방식을 따른다. 예컨대 1안은 기종 결정, 2안은 연기, 3안은 부결과 같은 안을 놓고 최적의 안을 토론하고 다수결로 결정해야 한다. 방추위 회의는 김관진 장관을 의장으로 국방부 자원전력관리실장, 각 군 참모차장, 방사청장, 정당 추천 위원,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날 이용대 전력자원관리실장은 3안에 해당되는 부결안만 상정하고 여기에 위원들이 서명할 것이냐, 말 것이냐만을 선택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극히 일부 위원들이 사업이 지연되면 공군의 전력공백이 예상된다며 서명을 하지 않았다. 나머지 위원들은 마치 사전에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순순히 서명하고 일사천리로 부결 결정이 내려졌다. 단 두시간 만에 결정이 끝나고 4시30분에는 김민석 대변인이 기자실에서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F-15SE로 최종 결정을 예상하고 기사를 준비하고 있던 국방부 기자실은 발칵 뒤집혔다.

일부 위원들이 방사청이 건의한 F-15SE로의 기종 결정을 부결한 것은, 더 이상 결정이 늦춰질 경우 공군의 전투기사업이 지연되는 데 이어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KF-X)도 차질을 빚어 공군에 심각한 전력공백이 초래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만일 F-15SE 대신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도 않은 록히드마틴사의 F-35A가 선정될 경우 가격, 성능, 기술 이전 조건이 모두 불확실해진다. 부결 결정이 있고 난 뒤인 그해 12월에 국방부는 합동참모회의를 개최하여 차기 전투기 요구 성능에 스텔스 기능을 추가하여 사실상 F-35A를 단독 후보로 선정하도록 정책을 변경한다. 이 회의에서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전투기를 판매하는 정부거래방식(FMS)인 F-35A는 미국으로부터 KF-X에 필요한 핵심기술 이전이 곤란하다는 점은 토론조차 되지 않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결정이다.

재작년 8월부터 9월 사이에
진행된 석연찮은 사업 부결
누가 왜 보잉 F-15SE 흔들며
록히드마틴 F-35A를 밀었나
한국형 전투기는 도박이 됐다

핵심기술 이전 어려움 알고도
작년 9월 F-35A 40대 구매계약
누가 사업주체인지도 헷갈려
청와대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
뒷북을 치면서 진상조사 한단다

미국은 기술이전 논의 자체를 거부

2014년 5월10일 오전 10시에 서머셋 팰리스 호텔에서 진행된 청와대 주철기 안보수석 주최의 KF-X 대책회의. 공군과 방사청, 업체, 민간 전문가, 전문 기자 등이 초청된 회의 서두에 주철기 수석은 “작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차기 전투기 사업에 대한 역사적인 결단을 내렸다. 올해는 한국형 전투기 사업에서 역사적 결단을 내릴 것이다”라며 비장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KF-X 기술 이전에 대한 견해는 양분되었다. 공군 정책의 자문에 응하고 있는 A교수는 “공동 개발 파트너로서 F-X 사업 수의계약 대상자 록히드마틴은 핵심기술 이전 및 개발비 분담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며 “미 정부의 수출승인(E/L) 불허품목인 전자식 레이더(AESA)와 적외선 탐지 및 추적 장치(IRST), 광학 표적추적 장치(EOTGP) 기술 이전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금 상황을 정확히 예측했다. 이에 반해 역시 공군 자문에 응하는 다른 B교수는 “미국은 기술 이전에 호의적”이라며 무난히 핵심기술을 이전받을 것으로 낙관했다. 의견이 갈리자 회의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마무리되었다. 그해 최초로 KF-X 사업의 체계개발 예산이 국방예산에 반영되는 시점에 공군이나 방사청, 업체 관계자는 사업 차질을 두려워하여 누구도 기술 이전 문제를 이야기하길 꺼렸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손’이 F-35A 도입의 걸림돌을 차례로 제거해 가고 F-35A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공모된 침묵이 형성되도록 했다.

청와대 회의 직후 공군, 방사청, 그리고 예전의 청와대 대책회의에 참여한 B교수 등으로 구성된 F-X 절충교역 3차 협상단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 국방부 안보협력국(DSCA)과 미 공군 관계자들을 만났다. 여기서 우리 쪽이 강력하게 미 정부 수출 승인 품목의 기술 이전을 요구하자 미국 쪽 관계자는 “한국이 무슨 전투기를 만들겠다는 거냐?”며 형상도 결정되지 않은 한국형 전투기에 기술 이전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를 거부하였다. 더불어 미국 쪽은 “핵심기술 이전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만일 한국이 기술이 필요하면 미국에서 별도로 구매해야 하고, 구매를 하더라도 한국형 전투기 체계 종합은 기술을 제공하는 미국 업체가 해야 한다”며 우리의 전투기 개발을 전면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미국 정부로부터 문전박대당하는 동안 사업 협력자인 록히드마틴은 우리 쪽의 KF-X 사업 공동참여 제안에 대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참여를 회피하였다. 미국 정부의 기술수출 승인이 거부되고 록히드가 KF-X 사업 참여 결정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방사청은 미국과 F-35A 40대 구매의향서(LoA)를 체결하여 미국에 추가 요구를 할 수 있는 협상의 여지마저 포기해버린다. 다만 방사청은 “구매의향서에 미국은 360명의 기술 인력과 F-16 최신기술 자료를 지원하고 21종의 핵심기술 이전을 지원한다”고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기술 이전에 문제가 없다”는 말만 언론과 국회에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여기에다 개발비의 20%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인도네시아가 공동개발자로 참여하는 사업협력협정(PA: Project Agreement)을 체결하는 또 하나의 무리수를 둔다. 핵심기술 이전이 불확실하고 미국 업체의 참여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피에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방사청과 공군은 미국으로부터 기술 이전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도 작년 9월에 F-35A 40대 구매계약을 미국과 체결한다. 그러나 이 계약마저도 전투기 가격, 도입 시기, 기술 이전 의무조항에 대한 구속력 있는 규범이 아니라 일종의 가계약에 불과하다. 실제 본계약은 F-35A 개발이 계속 지연되고 있어 현재로서는 체결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계약 자체가 불가능한 실체가 없는 F-35 도입에다가 연쇄적으로 KF-X 사업의 위험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지금의 상황은 공군 창설 이래 최대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군 출신 이희우 예비역 준장은 “지금 공군에는 쓰나미형 위기가 몰려오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는 동안 국방부에는 KF-X 사업을 전담하는 사업단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방사청에 모든 사업관리 책임을 미루어왔다. 방사청은 구매의향서와 계약을 체결한 만큼 기술 이전 문제는 “업체가 알아서 할 사안”이라며 KF-X 주사업자인 한국항공우주산업에 그 책임을 또 미뤘다. 개발에 8조원, 양산에 10조원이 소요되는 전투기 개발 사업은 누구 주체인지도 헷갈리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이 모든 과정을 전혀 몰랐다는 듯이, 기술 이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올해 국정감사에 불거지자 그제야 진상파악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전투기 없는 공군’ 될 재앙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미국의 미완성 전투기 도입을 결정하고 사업관리에 부실이 누적되는 동안 2025년까지 차기 전투기 도입과 한국형 전투기 생산은 모두가 불확실한 하나의 도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기에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방사청이 기존의 사업계획을 모두 고수하는 가운데 필요한 핵심기술을 유럽 등 제3국으로부터 도입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대안을 또다시 제시한다는 데 있다. 뿌리부터 재검토해야 할 전투기 도입 사업을 그대로 놔두고 가지만 치겠다는 발상이다. 미국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한국형 고등훈련기(T-50)를 기본 플랫폼으로 하여 발전시키는 전투기에 유럽 기술을 적용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또 하나의 불확실한 도박이다. 돈이 얼마나 들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 1999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천명한 전투기 개발 사업이 16년 만에 좌초될 만한 위기다.

F-X와 KF-X가 흔들려 적기에 전투기가 공급되지 못하면 2020년대 중반에 공군의 전투기 보유 대수는 현재 430대에서 그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전투기 없는 공군”은 한국 안보의 근간을 흔들 대형 재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기존의 전투기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여 새로운 사업의 대안을 내놔도 시원찮을 판에 기존의 사업에 대한 기득권에 연연하다가 공멸로 가는 죽음의 행진이다. 이 재앙은 재작년 8월 말부터 9월 중순 사이에 진행된 무언가 석연치 않은 사업 부결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비극적 상황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그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김종대
김종대
김종대

▶ 김종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할 말은 하는 군사전문가. 1993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과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방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별들의 암투를 지켜봤다. 권력과 군대가 독점하는 안보가 아닌 ‘진짜 안보’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 군사전문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이다. ‘김종대의 군사’는 한 달에 한 번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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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창설 이래 최대 위기’ 관련 정정 및 반론

본지 지난 10월3일자 19면 “전투기로 장난하나…공군 창설 이래 최대위기” 제하의 기사에서 김관진 전 장관이 예정된 일정보다 하루 앞당겨 귀국했고 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장이 방추위 위원들과 개별적인 접촉을 추진했다고 보도했으나, 김 전 장관은 예정대로 귀국했으며 실장이 방추위 위원들과 ‘개별’ 접촉한 사실은 없어 이를 바로잡습니다.

또 위 기사에 대해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전력자원관리실장이 2013년 9월24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 회의에서 부결안만 상정하고 서명할 것이냐 말 것이냐만을 물은 사실이 없고, 회의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대정부구매(FMS) 계약은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간 공식 계약이다’라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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