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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북한의 SLBM 발사, ‘대성공 사기극’이 되려나

등록 2015-05-29 19:25수정 2015-05-31 09:00

최근 북한의 ‘애매한’ 방식의 미사일 공개는 국내 안보론자들을 사드, 킬체인, 핵무장 등의 ‘공포 대 공포’ 접근법으로 이끌었다. 지난 9일 북한이 잠수함발사 미사일(SLBM) 시험에 성공했다며 <노동신문>에 공개한 사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시험 발사를 참관했다.
최근 북한의 ‘애매한’ 방식의 미사일 공개는 국내 안보론자들을 사드, 킬체인, 핵무장 등의 ‘공포 대 공포’ 접근법으로 이끌었다. 지난 9일 북한이 잠수함발사 미사일(SLBM) 시험에 성공했다며 <노동신문>에 공개한 사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시험 발사를 참관했다.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 공포로 번지는 북한의 뻥튀기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영상편집기술 전쟁’이 진행중이다. 지난 5월8일 북한이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시험에 성공했다며 공개한 세 장의 사진은 통상 <노동신문>에 공개하던 원판이 아닌 피디에프(PDF) 파일에서 사진을 오려낸 것으로 해상도가 떨어졌다. 사진의 진위에 대해 19일 미국 합동참모본부 제임스 위너펠드 차장은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서 “몇주 전에 우리는 북한이 자신들의 잠수함발사미사일 시험을 격찬하는 것을 봤다. 다행스럽게도 북한의 시험은 그들의 영리한 영상편집자만큼 가지 못했고 북한의 선전꾼들은 우리를 믿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며 영상조작설에 힘을 실었다. 미 정부 관리들과 북한 전문 매체들은 “잠수함이 아니라 바지선에서 쏜 것”이라며 그 의미를 폄훼하는 방향으로 몰아갔다. 그러자 27일 북한은 대남선전용 누리집 ‘우리민족끼리’에 미사일이 발사되는 짧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2분4초 분량의 동영상 후반부에는 수중에서 미사일이 사출되어 수면 위에서 점화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이 역시 화질이 선명하지 않은데다 발사된 미사일의 자세를 제어하고 점화하는 데 모종의 부자연스러움이 발견된다. 이 역시 미사일 시험의 진위를 가늠하기 어려운 아주 애매한 영상이다.

한국 안보론자들 혼란 즐기는 북한

만일 북한이 잠수함발사미사일을 보여주고 싶다면 더 선명한 영상을 제공하여 상대방이 진위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적어도 신형 잠수함과 미사일의 위력을 상대방에게 확실히 인식시키고 싶다면 말이다. 실제로 북한은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서방에 선명한 원판 사진을 대량으로 공급해왔다. 그러나 유독 잠수함발사미사일에 대해서만 진짜 같기도 하고 조작 같기도 한 ‘애매함’으로 접근한다. 바로 이 애매함에 북한의 진의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은 신형 잠수함과 거기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전격 공개할 시점이 아닌 상황에서 상대방이 혼란에 빠지도록 상황을 유도하려는 게 진짜 의도가 아니냐는 추론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북한이 뭘 슬쩍 보여주기만 해도 기겁을 하는 미국과 한국의 여론을 역으로 북한이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왜 북한이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지는 현재 우리 사회의 안보전략 논의 구조를 살펴보면 자명해진다. 지난해 3월 동해에서의 노동미사일 발사시험과 올해 5월 신포 앞바다에서 실시한 잠수함발사미사일 시험은 한국 안보론자들의 여론을 정확히 셋으로 쪼개버렸다.

첫째는 북한의 노동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언필칭 ‘사드파’의 주장이다. 둘째는 이미 북한은 잠수함으로 배후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므로 사드와 같은 방어무기는 실효성이 없고 수중 킬체인(미사일 사전요격시스템)으로 북한의 잠수함기지를 선제타격하거나 잠수함 작전을 차단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킬체인파’의 주장이다. 셋째는 변화무쌍한 북한의 전략에 일일이 대응하는 사드나 킬체인과 같은 무기체계는 모두 소용이 없고,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궁극적인 억제력으로 한국이 핵무장을 선택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핵무장파’의 주장이다. 적어도 올해 초까지는 첫번째가 가장 우세했고, 이달 초부터 두번째가 부각되기 시작하다가, 최근에는 세번째 주장에 힘이 실리는 중이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어떤 군사전략을 선택할 것인가로 갑론을박하면 북한은 중요한 전략적 이점을 얻는다. 먼저 혼란을 겪는 한국은 전쟁의 양상을 결정지을 ‘결정적 작전’(decisive operation)에 국방의 에너지를 집중하지 못해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게다가 한국의 핵무장론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을 신뢰하지 못하는 한국이 독자적 핵무장의 길로 간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한-미 동맹에는 심각한 균열이 생긴다. 이걸 왜 북한이 마다하겠는가?

이런 추론은 북한이 공개한 동영상 서두에서 “송아지마냥 화들짝 놀라 초상난 집처럼 떠들어대는 미국과 괴뢰(남측)의 소동”, “깨진 쪽박 쓰고 날벼락 막기”라는 육성에서도 드러난다. 사드, 킬체인, 핵우산 어느 것도 신뢰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한국 안보론자들의 혼란을 조장하고 즐기는 것 같은 메시지들이다. 북한의 새로운 위협이 나타날 때마다 군사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던 국내 보수언론은 이런 북한의 의도를 잘 구현해준 고마운 동업자일지도 모른다. 반면 북한의 미사일시험에 대한 의구심을 표출하면서 신중한 대응을 주장하던 미국 군의 고위인사들이나 한국의 진보는 북한에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투철한 안보의식이 결여됐다고 알려진 한국 내 진보세력은 북한의 의도에 잘 따라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종북이라기보다 ‘배북’(背北)에 가까울 것이다.

북한이 공개한 잠수함발사미사일
진본으로 보기엔 조잡하고 애매
국내 보수 안보론자들 ‘사분오열’
사드파, 킬체인파, 핵무장파로
미국 쪽에선 ‘조작 의혹’ 제기

추가로 공개된 동영상은
더 조잡해 ‘조작설’ 힘 실려
북한은 우리를 놀렸나
말려들면 비이성으로 치닫는
이것이 ‘공포의 군사전략’이다

‘공포의 균형’이 최상의 안보전략일까

정체불명의 무기를 앞세운 북한의 위력시위는 국내 안보론자들에게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그들을 분열로 이끌었다. 과연 무엇이 북한으로 하여금 공포를 체험하도록 할 수 있는 수단이냐를 선택하는 문제로 군사전략에서 분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들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위신을 높이는 데 반해 한국은 추락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게 잃어버린 자아상, 즉 “우리는 끊임없이 협박을 당하지만 북한을 징벌할 수 없다”는 열등의식과 자괴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면 무언가 새로운 권위를 향한 강렬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어떨 때는 사드로, 킬체인으로, 핵무기로 몰려다니는 이유가 된다.

최근 <조선일보> 양상훈 논설위원의 칼럼은 한국 안보전략의 목표는 핵을 가진 북한과 ‘공포의 균형’을 달성하는 것이 최상의 안보전략이라는 점을 천명하고 있다. 북한은 우리에게 공포를 줄 수 있는데 우리가 북한에 그럴 수 없다면 전략적 균형은 무너진 것이다. 이럴 경우 일차적 대안은 북한 정권을 언제든 제거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갖추는 것이고, 더 궁극적인 대안은 한국의 핵무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공포의 총량이 균형을 달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최상의 안보라고 보는 것이다. 그 목표가 충족되는 순간이 북한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전환되는 시점이 된다. 그렇다면 북한의 노동미사일이나 잠수함발사미사일이 실재하는 것인지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 문제는 북한이 우리에게 공포의 이미지를 뿌려대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여기서 사드나 킬체인, 핵무장이라는 세 가지 수단을 확보한다는 논리의 비현실성도 손쉽게 초월해버린다. 우리도 어느 정도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북한이 공포로 다가오는 원천은 북한이라는 집단의 비정상성, 국가 이성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비합리성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전혀 현실적일 것 같지 않은 대안을 주장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도 비이성적인 면모가 있다는 걸 느끼게 해야 북한이 공포에 떨게 된다. 군사전략이라는 게 정상인의 눈으로 볼 때 항상 기괴하면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우리도 미칠 수 있다는 것, 아니 일정 부분은 벌써 미쳐 있다는 걸 상대방이 알아줄 때 공포의 상호거래가 성립한다. 이때 비로소 상처 입은 자존감이 회복될뿐더러 우리가 더 우월하다는 자기확신이 가능해진다. 더불어 국내 정치에서도 군 장성과 공안검사가 득세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합리성이 어느 정도 훼손되는 것이 국가안보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우리의 비이성적인 측면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북한이 지난해 3월에 발사 각도를 높여 발사한 이상한 노동미사일 발사시험, 그리고 올해 5월의 진위가 의심스러운 잠수함발사미사일 시험이라는 두 사건은 비로소 그 전말을 드러낸다. 이 두차례의 미사일 시험은 한국과 미국의 군사전략을 송두리째 흔드는 ‘성공한 사기극’이다. 실제 북한이 군사전략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진실로 믿어버리게 만드는 그 정체불명의 속성 때문에 대성공을 거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우리도 북한에 대한 대응 사기극을 연출할 수 있다면, 예컨대 북한 정권 궤멸, 선제타격에서 핵무장에 이르는 일련의 연극이 현실화한다면 북한은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재래식 무기에 의한 국지전을 노리거나 원자력잠수함 건조, 수소폭탄 개발과 같은 더 극단의 공포를 제공하는 수단에 북한은 주목하게 된다. 그러면서 북한 내 고위인사에 대한 숙청이나 비정상적인 통치의 면모를 일부러 보여줄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안보불감증이 큰 자산이라는 역설

이런 변화가 예견되는 한반도 안보지형에서 어떤 군사전략이 옳은지 논의하는 건 의미가 없다. 북한은 한국의 군사전략을 잘 관찰할 뒤 자신의 군사전략을 바꾸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어제 옳았던 것이 오늘은 틀린 것이 되고 내일은 또 알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혼란을 초래하는 북한의 새로운 위협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야 한다. 또한 한국군에게는 대책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공포를 제공하는 쪽이나 수용하는 쪽이나 이야깃거리가 된다. 최근 일부 언론이 시속 50노트의 신형 ‘파도관통형 고속함정’(VSV·Very Slender Vessel)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 함정은 30㎜ 함포와 공격용 어뢰까지 장착한 스텔스 함정이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낯선 위협의 출현을 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해야 상호거래가 성립한다. 지난해 북한의 조잡한 무인정찰기가 출현한 것도 그 낯섦 때문에 공포가 배가됐고,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군사전략적 가치가 있었다. 연평도 바로 앞 무인도인 갈도에 북한이 최근 방사포 진지를 설치한 것 역시 우리나라 서북해역에서의 전쟁 양상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모종의 메시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상호거래는 또 성립한다.

여기서 초래되는 국가의 혼란과 스트레스는 잘못 관리될 경우 집단의 광기로 발전할 수 있다. 2차대전 당시에 일본군은 눈앞의 손쉬운 승리에 현혹되어 정치권력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전쟁의 광기를 향해 치달았다. 그 과정에서 분출되는 잔인함과 야수성은 상대방에게 공포를 강요할 수 있는 위력적인 수단이었다. 공포를 선호하는 군사전략은 그 스스로도 통제되기 어려운 비합리적인 충동을 내포하는데, 여기서 국가는 매우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순수한 의미의 군사전략은 미세한 폭력의 파동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것이고, 여기에 전쟁의 과학, 전쟁의 본성이 있다. 군사사상가인 클라우제비츠에 의하면 그것은 우연과 도박을 감수하는 행위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가운데 무엇이 진짜 위협인지 식별할 수 없는 안개와 같은 상황, 거기서 낯선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긴박함의 연속에서 극단의 선택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이런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합리와 이성으로써 전쟁의 논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려움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 것이 시민의 가장 큰 권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공포에 질린 대중처럼 통치하기 손쉬운 대상도 없다. 북한이 제공하는 공포를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무시해버리는 전략은 전쟁의 광기를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안보세력이 불만스러워하는 시민의 안보불감증이라는 것이 사실 이 나라 안보의 가장 큰 자산이다. 북한이 강요하는 공포를 무시할 수 있는 자신감이 시민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북한이 두렵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국가가 이 정도 안정을 유지하고 민주주의 기본틀이 유지된다는 안보의 역발상으로 이해될 만하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김종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할 말은 하는 군사전문가. 1993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과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방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별들의 암투를 지켜봤다. 권력과 군대가 독점하는 안보가 아닌 ‘진짜 안보’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 군사전문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이다. ‘김종대의 군사’는 한 달에 한 번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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