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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한반도 북단에 새로운 ‘군사 강대국’이 출현했나

등록 2015-04-03 19:17수정 2015-04-05 11:01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가 완료됐다는 주장이 한·미 정부 관계자들의 아리송한 수사로 전해지는 사이 미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한반도 배치론이 표면에 부상했다. 지난달 18일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근처 미군 부대 앞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가 완료됐다는 주장이 한·미 정부 관계자들의 아리송한 수사로 전해지는 사이 미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한반도 배치론이 표면에 부상했다. 지난달 18일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근처 미군 부대 앞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사드와 북한 핵공포론
보험회사의 상투적인 영업 멘트와 뭐가 다른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 문제가 공론화되기까지 북한 핵능력에 대한 미국과 한국 정부의 말이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보자. 먼저 지난해 10월25일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이 미국에서 한 기자회견 발언.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게 뭔 말인가? 소형화했다는 건가, 안 했다는 건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괴물

이어진 기자의 질문에 그는 “북한이 실제로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며 “이번 분석이 사실관계에 근거한 것은 아닌” 것이라며 ‘추정’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아는 게 없다는 건데, 그렇다면 왜 이 말을 했는지 더 아리송하다. 그러나 이틀 뒤에 한민구 국방장관은 국정감사에서 “확인된 첩보는 없지만 소형화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라며 스캐퍼로티의 주장에 맞장구쳤다. 이렇게 한·미 국방당국자는 북한 핵이 소형화되었다고 단정짓지 않는 기묘한 화법만으로 북한 핵이 소형화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당신이 노년에 비참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는 보험회사 직원의 영업 화법과 유사하다. 여기서 말하는 핵탄두 소형화란 그 무게가 1t 미만, 크기는 90㎝ 미만으로 북한이 사정거리 300~500㎞의 스커드 미사일에 핵탄두가 장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이 보유한 800여발의 단거리 미사일에 핵을 탑재한다면 그 공포의 무게가 달라진다. 한·미 정보당국은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당시만 해도 “핵이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되었다”는 북한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4년이 되자 한·미 양국 정부는 북한 핵 능력이 계속 진화하여 사실상의 핵 위협이 현실화된 국가로 평가를 바꾸려는 조짐을 보였다. 문제는 지난해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단행하여 이를 확인시켜 주어야 했는데 그토록 기다리는 핵실험을 북한이 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지난해 이맘때 나온 정부 당국자 발언만 보아도 쉽게 확인된다. 국가정보원이 서울시 공무원의 간첩 증거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지자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4월 중순에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면서 엉뚱하게 그 말미에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조성된 엄중한 안보 상황”이라는 표현을 넣었다. 사실 이건 간첩 증거 조작에 이은 북한 정보에 대한 또 다른 조작이었다. 이 말이 나오자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이 4월30일 이전에 큰 거 한 방 터뜨릴 것”이라며 아예 북한 핵실험을 예고하는 분위기를 띄웠다. 그 여파는 박근혜 대통령의 5월 초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에서 “북한은 4차 핵실험 위협 등으로 끊임없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발언으로 이어졌다. 이제껏 북한의 핵실험 징후가 보이면 빈틈없는 정보자산으로 정확히 예측해온 한·미 정보당국이 엄연히 있다. 훗날 확인되었지만 이 무렵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는 어떤 징후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발언이 나온 배경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당시 필자를 만난 국정원 요원은 “남재준 원장의 ‘4차 핵실험’ 발언은 국정원에 정보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대목을 넣으라는 청와대 지침에 의해서였다”고 솔직하게 사정을 밝혔다. 이 당시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을 보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기정사실화하고자 하는 정치권력의 집요한 의지가 읽힌다. 만일 북한이 제대로 핵실험만 해준다면 아무런 의심 없이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가 이뤄졌다는 정보판단이 가능해지고, 세월호 정국도 안보정국으로 전환할 수 있는데 말이다. 참으로 북한도 야속한 것이 남한 정부가 이토록 기다리는데 왜 핵 한 방을 터트려주지 않는단 말인가.

핵탄두 소형화, 경량화했다던
2013년 북한 주장 무시하던
한·미 정부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기술이 상당수준 이르렀는데
확인은 안 됐다는 아리송한 수사

비행제어, 대기권 재진입 등
소형화는 쉬운 일 아니다
냉정한 평가 없이 애드벌룬 띄워
혹시 미사일방어예산 늘리려는
정략에 춤추는 것 아닌가

상상력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이미지

핵실험은 없었지만 북한은 지난해 한해에만 19차례에 걸쳐 111발의 중단거리 발사체를 쏘아올리는 시험을 했다. 특히 지난해 3월에는 동해를 향해 노동미사일 2기를 발사하면서 통상 발사각도인 45도 정도를 70도 정도로 높게 해 사거리를 절반 정도인 650㎞로 줄이는 이상한 발사시험을 했다.

이어 8월과 9월에는 신형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다. 어쩌면 소형화되었을지도 모르는 핵탄두를 탑재하기 위한 마지막 실험으로 인식될 만했다. 세차례 핵실험만으로 북한이 핵탄두의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 시험을 했다는 건 무언가를 탄두에 실어 운반하기 위한 능력을 갖기 위함이다. 지난해 유독 발사시험이 많았다는 건 운반해야 할 중요한 물건이 있다는 것, 즉 핵탄두 소형화가 임박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굳이 북한의 핵실험을 지켜보지 않아도 북한의 핵능력을 한 단계 건너뛰는 것으로 일단 정보를 수정하기로 하고 여기에다 보너스로 또 한 가지 시나리오를 추가한다. 북한의 핵탄두가 1t 미만으로 소형화되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다. 2t에 달하는 무거운 핵탄두라도 노동미사일에 탑재하여 사거리를 짧게 하면 이것도 핵무기가 된다. 노동미사일을 고각을 높여 짧게 발사한 목적이 바로 이것이라는 참으로 기발하고 창의적인 해석이다.

2013년 미국의 사드 시험 발사 장면.
2013년 미국의 사드 시험 발사 장면.
어떤가? 한편으로는 핵탄두 소형화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미사일로, 그리고 잠수함 발사 미사일로 다양하게 쏟아내니까 한반도 핵전쟁의 구체적 가능성이 그럴듯하게 체감되지 않는가? 이걸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면 대다수 안보주의자들은 “통상 3~4번 핵실험하면 소형화에 성공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며 얼버무린다.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북한이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사령관이 본국에 사드 요격체계를 요청할 수 있는 논리적 명분도 생긴다. 전세계 육군 4성장군이 지휘하는 야전사령부 중에 아파치 공격헬기 대대가 없는 곳은 주한미군사령부가 유일하다. 전시작전권이 한국으로 전환될지 모르는 지난해 상황에서 보면 주한미군사령부는 변변한 전략자산이 없는 식물사령부, 또는 기획사령부로 전락할지 모르는 조직의 위기 상황이다. 4성장군의 자리도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사드가 배치되면 미국의 핵심 전략자산을 보유한 주한미군사령부는 본국의 정보와 첨단기술, 예산이 최우선적으로 지원되는 태평양사령부의 핵심 부대가 된다. 그러니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가 되건 말건 일단 정보평가부터 바꿔야 했다. 고사 상태의 주한미군이 갑자기 일류 첨단군대로 도약하는 명백한 이익이 있는데, 이걸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심경이 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므로 한반도에선 북한이 남한을 핵무기로 협박할 필요가 없다. 그런 협박을 한국 정부와 주한미군사령부가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더 부풀려서 효과를 극대화한다. 만일 북한 공작원이 남파되어 서울에서 이 현상을 본다면 “핵무기를 앞세운 우리의 대남 심리전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기네 상부에 보고할 만하다. 이왕 내친김에 미 국방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올해 3월19일 세실 헤이니 미군 전략사령관은 북한의 핵능력과 관련해, “그들이 이미 핵능력의 일부를 소형화했다고 생각한다”며 한층 북 핵 능력을 상향 평가하였다. 물론 여기서도 새로운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여기에다 그는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건 또 뭔 말인가? 사연은 이러하다. 북한이 중형 잠수함 도입을 추진한다는 ‘소문’을 듣고 있던 얼마 전 잠수함 기지 주변에 못 보던 건물이 지어졌다는 영상 사진이 확보되었다는 것.

이걸 잠수함에 탄도미사일 발사대를 장착하는 공정을 수행하는 건물 아니겠냐고 ‘억지 해석’을 덧붙인 것이다. 전세계에서 미국, 러시아, 영국, 중국 정도만 보유한 최고 수준의 기술을 북한이 확보했다는 이 믿지 못할 주장의 근거는 이것 외에 없다. 그런데 이 주장은 명백한 미국의 실수다. 북한의 미사일기지에서 날아오는 중거리 미사일을 막기 위해 사드가 필요한 것인데 잠수함으로 싣고 내려와서 우리 뒤통수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전방을 주시하는 사드 요격체계는 필요없다. 기존의 미사일방어는 아예 쓸모가 없는 것이니 공연히 돈을 들일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미국보다 미국을 더 믿는 세력

같은 시기에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연구원과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도 북한전문 웹사이트 ‘38노스’에 게재한 글에서 “북한이 2020년까지 최대 1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놔 또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물론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처장의 “많아야 1년에 3~5개 핵무기 추가”라는 주장과는 판이하게 다른 상향된 평가다. 그런데 곧이어 3월25일에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하원 세출위원회 국방분과위에 제출한 서면증언에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인 KN-08의 배치를 위한 초기 수순을 이미 밟고 있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미국의 주장이 진짜 그런가 하고 생각하게 했다면 지금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이제는 곧이들리지 않는다.

불과 몇 달 전에는 북한 핵탄두가 소형화되었다는 증거도 없어 조심스럽게 말하던 그들이 이제는 북한 핵무기가 실전 배치된 것으로 몇 달 만에 말을 바꾸었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중장거리 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과 유도 및 제어 기술이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주궤도에 로켓을 올려놓는 데 딱 한번 성공한 북한이 그것보다 더 어려운 핵탄두가 대기권에 재진입하는 완성된 기술을 어떻게 확보한 것일까? 재진입 때 3000도가 넘는 고열을 견디는 흑연으로 구성된 특수합금을 삭마제라고 하는데, 이게 없으면 핵탄두는 증발해버리고 만다. 여기에다가 핵탄두가 초속 7㎞로 자유낙하하여 표적을 파괴할 수 있는 탄두의 비행제어, 소재, 유도기술 등을 북한이 시험해보기라도 한 것인가? 그러나 미 국방부는 북한이 그런 과정 자체를 완성한 것으로 기정사실화하고자 한다. 바로 미사일방어 예산을 증액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한반도 북단에 인류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군사강대국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한다. 어쩌면 물리학의 법칙마저 초월한 것 같은 한반도 북단의 대국은 상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가상의 국가다. 이러니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북한은 핵보유국”이라고 발언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먼 미래의 어느 날 서울과 뉴욕과 도쿄에서 동시에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파국의 이미지는 그들이 가장 열광하는 짜릿한 공포의 향연이다. 공교롭게도 미국 고위 장성은 “버튼만 누르면 핵전쟁”이라고 허풍을 늘어놓는 북한군 장성들과 짝이 잘 맞는 한패가 되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은 정확한 위협평가로 북한에 대한 군사 전략(戰略)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미사일방어 예산을 늘리려는 군사조직의 정략(政略)이 변화한 것이다.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미국의 미사일 요격체계에 대한 신격화된 권위의 부여, 맹목적 추종이 뒤를 잇는다. 3월말 마이클 길모어 미국 국방부 미사일운용시험평가국장은 “사드 시스템의 구성요소들은 지속적이고 꾸준한 신뢰성 향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양심적(?)인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서 지적한 사드의 문제점 때문에 미국 내에서조차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예산 낭비가 될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데 미국의 야전사령관과 전략사령관, 여당 지도부는 “미군이 실전 배치한 무기”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도대체 이 광기와 열풍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필자로선 난감하기만 하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사드 요격체계 한반도 배치는 지난 5년여간 한·미 국방부 간의 확장억제위원회에서 한번도 검토된 바 없는 전혀 새로운 군사정책이다. 이런 식으로 국가 안보를 뿌리째 뒤흔드는 접근을 정치가 주도하게 되면 안보가 불안해서 도대체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김종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할 말은 하는 군사 전문가. 1993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과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방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별들의 암투를 지켜봤다. 권력과 군대가 독점하는 안보가 아닌 ‘진짜 안보’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 군사 전문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이다. ‘김종대의 군사’는 한 달에 한 번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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