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비합리적 공포가 조장되면서 비합리적으로 무기 수요가 책정되고, 한국은 국제 무기 거래 시장에서 값비싼 최첨단 무기만 찾는 ‘호갱’으로 전락한다. 무기 도입에 개입하는 세력이 경쟁하면서 수요를 통제하는 장치마저 무너지고 만다. 2013년 10월1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국군의 날 시가행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방산비리 수사 가능한가
방산비리 수사 가능한가
▶ 김종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할 말은 하는 군사전문가. 1993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과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방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별들의 암투를 지켜봤다. 권력과 군대가 독점하는 안보가 아닌 ‘진짜 안보’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 군사전문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이다. ‘김종대의 군사’는 한 달에 한 번 연재된다.
장면 #1. 군정을 종식하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 4월24일. 노태우 대통령 시절 인사비리 혐의로 강제 전역한 바 있는 정용후 전 공군 참모총장은 자택에 기자들을 불러 폭탄선언을 했다. 자신에 대한 1989년 8월의 기무사 조사는 진급 비리 조사가 아니라, 한국형 전투기 사업(KFP) 기종 선정 때문이라는 것. 정 전 총장은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했다. “1988년 1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차세대전투기 기종을 F-18로 해야 한다는 건의를 하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기 직전,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이 서울 하얏트호텔로 나를 불러 F-18뿐만 아니라 F-16도 장점이 있다며 두 기종을 함께 건의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폭로를 군부세력을 청산할 절호의 기회로 여긴 김영삼 대통령은 즉각 감사원과 검찰로 하여금 조사에 착수하도록 했다. 이후 검찰은 “당시 김 수석이 ‘노 대통령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기회니 내 말대로 하라’며 정 총장에게 압력을 가했으나, 이를 거절한 후 노 대통령에게 F-18을 채택하도록 건의해 최종 재가를 받았다고 정 전 총장이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민정부는 한국군 전력 현대화 사업, 일명 ‘율곡사업’ 특별감사와 검찰 수사에 착수하여 돈을 챙긴 이종구·이상훈 전 국방장관, 한주석 전 공군참모총장,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을 구속 기소하고 해외에 있던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기소중지로 처분했다. 현역 군인 34명과 공무원 9명도 징계를 받았고 뇌물을 제공한 무기중개상과 방위산업체 관계자 다수도 입건됐다.
김영삼과 토니 블레어의 경우
장면 #2. 율곡비리 특별감사 이후에도 문민정부에서 공군 출신인 이양호 국방장관이 방위산업체에서 뇌물을 받았다고 국정감사 도중에 경질되었다. 이 사건이 기억의 저편으로 멀어지던 2000년 8월. 태평양지역 공군 참모총장회의 참석차 하와이에 와 있던 이억수 공군 총장은 퇴임한 이 전 장관이 “이곳(하와이)에 칩거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황급히 자신과 측근들이 가진 달러화를 몽땅 털어 저녁에 이 전 장관의 숙소로 찾아갔다. 갑자기 옛 부하가 찾아온 데 놀란 이 전 장관은 대화 중에 갑자기 눈물을 떨구더니 “맹세코 나는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당신은 앞으로 외부 손님을 만날 때 절대 혼자 만나지 말고 배석자를 두라”고 했다. 린다 김이라는 미모의 로비스트는 김영삼 대통령도 야당 당수 시절부터 잘 아는 거물이었다. 그런데 권영해 안기부장이 린다 김과 이 장관을 서로 싸잡아 음해하는 보고를 대통령에게 하니까 김 대통령이 화가 나서 이 장관을 제거하려고 뇌물 사건을 터뜨렸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양호 장관 재임 당시 국방부에서 무기 거래를 관장하는 획득국장이 훗날 국방장관이 된 해군 출신 윤광웅 전 장관이다. 그에 따르면 이 장관이 “뇌물을 받은 사실은 모르겠으나 특정 업체를 밀어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위 두 장면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한국 정치를 뒤흔든 초대형 무기 거래 스캔들이다.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한국 사회에는 무기 거래란 무언가 은밀하고 부도덕한 것, 권력과 로비스트가 밀착된 추악한 것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굳이 한국에 국한된 특이한 현상도 아니다. 국제투명성기구 회장 위게트 라벨은 “무기 거래는 전세계 무역량의 1%가 채 되지 않지만 전세계 부정 거래의 50%를 차지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무기 거래는 보안의 장막과 국가적 이익과 맞물려 공공분야에서 가장 개방되지 않은 사각지대”라며 “국제적 반부패 노력의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한다.
영국의 방위산업체 비에이이(BAE)시스템스가 사우디 왕실에 무기를 파는 대가로 약 10억파운드(1조84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현금을 비밀리에 제공해왔다는 단서를 잡은 영국 중대비리조사청(SFO)은 2006년 12월에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사우디 왕실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자국으로 불러들여 “수사를 중단하지 않으면 앞으로 영국 무기를 사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놀란 블레어 총리가 조사를 중단시키자 이에 격분한 수사 검사들이 런던의 한 레스토랑 앞 쓰레기통에 각종 정부 기밀과 수사 자료를 몽땅 처넣고는 일간지 <가디언>에 그 사실을 전화로 알렸다. 그 쓰레기통에서 건진 정부 기밀자료는 1년 내내 <가디언>의 특집면을 장식하며 비에이이와 사우디 왕실의 검은 거래를 낱낱이 폭로했다. 이에 헤이그의 유럽 법원은 유럽연합 각국의 검사들을 파견받아 중동,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4개 대륙과 유럽 방위산업체들의 검은 거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였다. 금세기 최대의 국제 무기 거래 스캔들이었다.
안전에 대한 수요는 ‘밑 빠진 독’
북한에 대한 비합리적 공포 조장
첨단무기 선호, 값은 천정부지
실제 무기수요 초과하는
비합리적 구매만 남는다 체계적인 무기 구입 위해 만든
방위사업청도 ‘식물청’으로 전락
뻥튀기 수요, 외국업체 결탁 잡는
제대로 된 ‘방산비리’ 수사 없으면
상황은 점점 악화될 것이다 로비스트 린다 김은 이렇게 말했다 안전에 대한 수요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여서 적절한 위협만 있다면 무기 거래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로비스트 린다 김은 필자에게 “만일 내가 무기 거래 로비스트가 되지 않았다면 석유나 곡물 거래 로비스트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무기와 석유와 곡물 거래는 권력층에 접근하여 큰 거래를 성사시키는 불멸의 사업거리라는 이야기다. 특히 한국의 권력자들처럼 무기 거래에 개입하고 싶어하는 탐욕스러운 집단도 없다. 항상 새로운 위협을 보여주는 북한이라는 딱 알맞은 상대가 버티고 있고, 한 건만 터트리면 평생을 먹고사는 대형 무기 거래가 무수히 널려 있는 기가 막힌 시장이 바로 한국이기 때문에 권력의 탐욕은 항상 무기 거래에 시선이 쏠린다. 북한에 대한 위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아서 약간만 정보를 조작하거나 부풀리기만 해도 국민은 공포에 질려 무기 거래에 저항하지 않는다. 심지어 한국에서 국가안보는 새로 발견된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외국의 고가 첨단무기를 사오는 것과 동일시된다. 북한 무인기가 출몰하면 이스라엘제 저고도 레이더를 도입해야 하고, 북한의 장사정포가 산 앞에 있다가 산 뒤로 가면 적지에 은밀하게 침투하는 미국제 스텔스 전투기를 사와야 한다. 북한의 해안포 위협이 등장하면 스웨덴제 대포병 레이더를 사와야 하고, 북한의 미사일이 등장하면 미사일방어(MD) 무기체계를 들여와야 한다. 보수 언론이나 종합편성 채널을 보면 북한의 위협을 그럴듯하게 묘사하면서 최신형 외국무기 도입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예비역 장교, 군사평론가들이 거의 매일 나온다. 외국 무기업체의 영업사원과 거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 군비 증액과 무기 도입의 논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북단에는 우리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군사적 초강대국이 존재한다는 암묵적 가설이 성립된다. 이제 북한이라는 존재는 20만명의 특수부대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무인공격기까지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군사 천재들의 집단’으로 둔갑한다. 그런 북한에 의해 지금, 당장 한반도가 공산화될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를 확산시켜야 ‘군사전문가’가 된다. 이런 무기 애호가들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선진국, 특히 미국의 최신형 군사무기는 강한 존재에 대한 욕망의 상징이자 숭배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은밀한 거래가 있다. 한 방위산업체 중역은 필자에게 “만일 값싸고 성능 좋은 재래식 무기를 한국군에 제안하면 잘 채택되지 않는다”며 “값이 비싸고 최첨단이라야 우리 국방조직은 비로소 도입을 고려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게다가 이런 무기 소요를 합리적인 기준을 세워 통제해야 할 우리 합동참모본부는 북한 위협에 대한 여론이 조성되면 속수무책으로 외국 무기업체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합동참모본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여 2006년께부터 ‘국방전력 발전규정’을 제정하고 각 군의 무기 소요를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체계적 규범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는 했다. 먼저 싸우는 방법(how to fight)과 군사력의 목표를 정한 후 각 군의 무기 소요를 하향식(top-down)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이 이 규정의 취지였다. 그러나 2008년께 북한의 특수부대가 8만명에서 16만명으로 갑자기 두 배 증가한 것으로 위협이 변경되고, 2010년에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북한이 보여주는 위협에 시급히 대응해야 하는 절박성에 내몰린 군은 ‘조기전력화 사업’을 소나기식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최근 문제가 된 해군의 구조함인 통영함도 천안함 사건으로 긴급히 추진되면서 성능이 떨어지는 수중음파탐지기를 비싼 가격에 구입했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이렇게 애초 계획에 없던 사업이 끼어드는 식으로 추진되면 무기중개상이나 외국업체가 공략하기에 딱 좋은 먹잇감이 된다. 제대로 조건을 따져보고 성능을 검토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역시 천안함 사건의 여파로 국산 헬기가 있는데도 영국제 해상공격헬기를 도입하는 정책을 결정하는 데는 외국업체와 결탁한 해군 예비역들이 있었다. 북한 장사정포를 대비한다며 국방과학연구소(ADD) 출신인 일부 학자, 업체가 결탁하여 청와대에 로비하여 성사시킨 상상을 초월하는 사업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국방부와 합참도 모르게 청와대가 직접 추진하는 일명 ‘대통령 특명사업’이라는 ‘번개사업’이 1조원대 규모로 추진된 것이다. 재작년에 이 사업이 터무니없는 부실사업이라는 걸 밝혀내던 감사원의 담당 조사과장이 갑자기 국정원에 “보안에 대해 조사할 것이 있다”는 이유로 석연치 않게 조사를 받고 좌천되었다. 또한 감사원의 자문에 응하던 민간 학자들까지 수사를 받는 수난을 당했다. 이렇듯 서로 무기 도입에 개입하려는 세력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타당성도 없고 긴급하지도 않은 사업들이 끼어들자 무기 소요를 통제하는 장치가 허무하게 무너졌다. 단지 무기 도입에서 누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느냐는 이전투구만 이어져 왔을 뿐이다. 무기 소요를 부풀리고 북한 위협을 조작하는 탐욕스러운 세력들은 항상 ‘방산비리 척결’을 외친다. 그 백미는 역시 이명박 정부 시절 방위사업청장으로 임명된 일명 ‘엠비(MB)의 아바타’로 불린 장수만 전 청장이었다. 2011년 2월 그는 업체 뇌물로 보여지는 다량의 현금과 백화점 상품권을 지인의 집에 보관하다가 적발돼 구속되었다. 그가 부임할 무렵만 해도 방사청이 연루된 방위사업 비리는 거의 적발된 적이 없다. 그런 그가 부임하자마자 방산비리 척결을 외치며 자신의 재임기간 중 부패를 완전히 척결할 것처럼 말하더니 정작 자신이 부패로 걸렸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는 취임하는 검찰총장, 경찰청장, 감사원장이 전부 ‘방산비리 척결’을 내걸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무기 소요 자체는 성역으로 남겨두고 입찰이나 계약과정, 원가산정 단계라는 최종 집행 단계에서만 비리를 적발하는 수사를 하니까 거꾸로 무기 도입 비리는 줄어든 것이 아니라 더 늘어났다. 정말 방위사업청을 폐지한다면… 이후 군의 거센 공격을 받은 방위사업청은 예산 편성과 기종 결정 권한을 상당 부분 군에 빼앗기면서 ‘식물청’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그 직후에 군사기밀을 빼돌리거나 외국업체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11명의 범법자가 발생했다. 특히 외국업체에 대해서는 조사권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계약을 위반하거나 납품일자를 맞추지 못해도 제재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 이 때문에 비리를 조장하는 외국업체와 그에 결탁한 예비역 장성들은 다 빠져나가고 대부분 국내업체만 조사하는 매우 제한적인 수사라는 점은 박근혜 정부에서 출범한 방산비리 합동수사단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기 소요의 정책결정 과정의 비리까지 파헤친 1993년의 율곡비리 특별수사와 달리 업체의 원가 조작, 입찰서류 조작, 시험평가서 조작만 수사하는 것으로 그 범위도 매우 제한적이다. 사실 방산비리를 제대로 조사하려면 이명박 정부 당시의 무기 소요 결정의 난맥상을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시 그 몸통은 청와대가 될 수밖에 없다. 단지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방산비리는 이적행위”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먼지 터는 식으로 방위산업체를 뒤져보겠다는 것 이상으로 그 어떤 방향성이나 구체성이 보이지 않는다. 덩달아 지금 새누리당은 권력과 외국업체 사이에 버티고 있는 방위사업청을 해체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되면 권력층이 외국업체와 결탁하여 무기 도입을 떡 주무르듯이 좌지우지하게 되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런 권위주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권력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이번 방산비리 수사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린다 김은 김영삼 정부 시절 정관계 인물과 두루 만나면서 무기 거래 로비를 벌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북한에 대한 비합리적 공포 조장
첨단무기 선호, 값은 천정부지
실제 무기수요 초과하는
비합리적 구매만 남는다 체계적인 무기 구입 위해 만든
방위사업청도 ‘식물청’으로 전락
뻥튀기 수요, 외국업체 결탁 잡는
제대로 된 ‘방산비리’ 수사 없으면
상황은 점점 악화될 것이다 로비스트 린다 김은 이렇게 말했다 안전에 대한 수요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여서 적절한 위협만 있다면 무기 거래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로비스트 린다 김은 필자에게 “만일 내가 무기 거래 로비스트가 되지 않았다면 석유나 곡물 거래 로비스트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무기와 석유와 곡물 거래는 권력층에 접근하여 큰 거래를 성사시키는 불멸의 사업거리라는 이야기다. 특히 한국의 권력자들처럼 무기 거래에 개입하고 싶어하는 탐욕스러운 집단도 없다. 항상 새로운 위협을 보여주는 북한이라는 딱 알맞은 상대가 버티고 있고, 한 건만 터트리면 평생을 먹고사는 대형 무기 거래가 무수히 널려 있는 기가 막힌 시장이 바로 한국이기 때문에 권력의 탐욕은 항상 무기 거래에 시선이 쏠린다. 북한에 대한 위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아서 약간만 정보를 조작하거나 부풀리기만 해도 국민은 공포에 질려 무기 거래에 저항하지 않는다. 심지어 한국에서 국가안보는 새로 발견된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외국의 고가 첨단무기를 사오는 것과 동일시된다. 북한 무인기가 출몰하면 이스라엘제 저고도 레이더를 도입해야 하고, 북한의 장사정포가 산 앞에 있다가 산 뒤로 가면 적지에 은밀하게 침투하는 미국제 스텔스 전투기를 사와야 한다. 북한의 해안포 위협이 등장하면 스웨덴제 대포병 레이더를 사와야 하고, 북한의 미사일이 등장하면 미사일방어(MD) 무기체계를 들여와야 한다. 보수 언론이나 종합편성 채널을 보면 북한의 위협을 그럴듯하게 묘사하면서 최신형 외국무기 도입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예비역 장교, 군사평론가들이 거의 매일 나온다. 외국 무기업체의 영업사원과 거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 군비 증액과 무기 도입의 논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북단에는 우리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군사적 초강대국이 존재한다는 암묵적 가설이 성립된다. 이제 북한이라는 존재는 20만명의 특수부대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무인공격기까지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군사 천재들의 집단’으로 둔갑한다. 그런 북한에 의해 지금, 당장 한반도가 공산화될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를 확산시켜야 ‘군사전문가’가 된다. 이런 무기 애호가들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선진국, 특히 미국의 최신형 군사무기는 강한 존재에 대한 욕망의 상징이자 숭배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은밀한 거래가 있다. 한 방위산업체 중역은 필자에게 “만일 값싸고 성능 좋은 재래식 무기를 한국군에 제안하면 잘 채택되지 않는다”며 “값이 비싸고 최첨단이라야 우리 국방조직은 비로소 도입을 고려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게다가 이런 무기 소요를 합리적인 기준을 세워 통제해야 할 우리 합동참모본부는 북한 위협에 대한 여론이 조성되면 속수무책으로 외국 무기업체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합동참모본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여 2006년께부터 ‘국방전력 발전규정’을 제정하고 각 군의 무기 소요를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체계적 규범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는 했다. 먼저 싸우는 방법(how to fight)과 군사력의 목표를 정한 후 각 군의 무기 소요를 하향식(top-down)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이 이 규정의 취지였다. 그러나 2008년께 북한의 특수부대가 8만명에서 16만명으로 갑자기 두 배 증가한 것으로 위협이 변경되고, 2010년에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북한이 보여주는 위협에 시급히 대응해야 하는 절박성에 내몰린 군은 ‘조기전력화 사업’을 소나기식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최근 문제가 된 해군의 구조함인 통영함도 천안함 사건으로 긴급히 추진되면서 성능이 떨어지는 수중음파탐지기를 비싼 가격에 구입했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이렇게 애초 계획에 없던 사업이 끼어드는 식으로 추진되면 무기중개상이나 외국업체가 공략하기에 딱 좋은 먹잇감이 된다. 제대로 조건을 따져보고 성능을 검토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역시 천안함 사건의 여파로 국산 헬기가 있는데도 영국제 해상공격헬기를 도입하는 정책을 결정하는 데는 외국업체와 결탁한 해군 예비역들이 있었다. 북한 장사정포를 대비한다며 국방과학연구소(ADD) 출신인 일부 학자, 업체가 결탁하여 청와대에 로비하여 성사시킨 상상을 초월하는 사업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국방부와 합참도 모르게 청와대가 직접 추진하는 일명 ‘대통령 특명사업’이라는 ‘번개사업’이 1조원대 규모로 추진된 것이다. 재작년에 이 사업이 터무니없는 부실사업이라는 걸 밝혀내던 감사원의 담당 조사과장이 갑자기 국정원에 “보안에 대해 조사할 것이 있다”는 이유로 석연치 않게 조사를 받고 좌천되었다. 또한 감사원의 자문에 응하던 민간 학자들까지 수사를 받는 수난을 당했다. 이렇듯 서로 무기 도입에 개입하려는 세력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타당성도 없고 긴급하지도 않은 사업들이 끼어들자 무기 소요를 통제하는 장치가 허무하게 무너졌다. 단지 무기 도입에서 누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느냐는 이전투구만 이어져 왔을 뿐이다. 무기 소요를 부풀리고 북한 위협을 조작하는 탐욕스러운 세력들은 항상 ‘방산비리 척결’을 외친다. 그 백미는 역시 이명박 정부 시절 방위사업청장으로 임명된 일명 ‘엠비(MB)의 아바타’로 불린 장수만 전 청장이었다. 2011년 2월 그는 업체 뇌물로 보여지는 다량의 현금과 백화점 상품권을 지인의 집에 보관하다가 적발돼 구속되었다. 그가 부임할 무렵만 해도 방사청이 연루된 방위사업 비리는 거의 적발된 적이 없다. 그런 그가 부임하자마자 방산비리 척결을 외치며 자신의 재임기간 중 부패를 완전히 척결할 것처럼 말하더니 정작 자신이 부패로 걸렸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는 취임하는 검찰총장, 경찰청장, 감사원장이 전부 ‘방산비리 척결’을 내걸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무기 소요 자체는 성역으로 남겨두고 입찰이나 계약과정, 원가산정 단계라는 최종 집행 단계에서만 비리를 적발하는 수사를 하니까 거꾸로 무기 도입 비리는 줄어든 것이 아니라 더 늘어났다. 정말 방위사업청을 폐지한다면… 이후 군의 거센 공격을 받은 방위사업청은 예산 편성과 기종 결정 권한을 상당 부분 군에 빼앗기면서 ‘식물청’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그 직후에 군사기밀을 빼돌리거나 외국업체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11명의 범법자가 발생했다. 특히 외국업체에 대해서는 조사권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계약을 위반하거나 납품일자를 맞추지 못해도 제재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 이 때문에 비리를 조장하는 외국업체와 그에 결탁한 예비역 장성들은 다 빠져나가고 대부분 국내업체만 조사하는 매우 제한적인 수사라는 점은 박근혜 정부에서 출범한 방산비리 합동수사단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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