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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박지만과 ‘누나회’…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등록 2014-10-10 18:55수정 2014-10-14 16:25

윤 일병 사망사건으로 시작된 군 인사는 기무사령부와 헌병대 등 미묘한 권력게임의 흐름을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수치수여식에서 박지만씨의 육사 동기생인 이재수 기무사령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수치는 군 장성의 직위와 이름 등이 수놓아진 끈 깃발로, 대통령이 관례적으로 장성들의 삼정도(장군에게 상징적으로 지급되는 칼)에 달아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윤 일병 사망사건으로 시작된 군 인사는 기무사령부와 헌병대 등 미묘한 권력게임의 흐름을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수치수여식에서 박지만씨의 육사 동기생인 이재수 기무사령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수치는 군 장성의 직위와 이름 등이 수놓아진 끈 깃발로, 대통령이 관례적으로 장성들의 삼정도(장군에게 상징적으로 지급되는 칼)에 달아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토요판] 군사 군 진급 인사의 안과 밖
▶ 지난 7일 단행된 군 인사에 대해 유난히 뒷말이 무성합니다. 특히 전임 장경욱 사령관에 이어 이재수 사령관까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국군기무사령관 자리가 적지 않은 잡음에 휩싸여 있습니다. 군의 독립적 인사가 무너지고 청와대 등 군 출신 유력인사들이 개입한 권력게임 양상도 비칩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들여다봤습니다.

매년 가을의 군 진급인사가 발표되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까지 시끄럽다는 말이 있다. 지하에서도 “누가 진급되었냐?”며 수군거린다는 이야기다. 누가 영전을 하고 진급을 하느냐 하는 건 당사자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 예비역, 군인 가족에게도 온통 관심의 초점이 된다.

어느 조직이건 진급이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으련만 군이 유별난 이유가 있다. 군인은 모자란다고 외부에서 충원할 수 없고, 남는다고 정리해고 할 수 없는 폐쇄형 인력구조다. 군대 이외에는 다른 직장을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직 조직 내에서 출세와 명예를 추구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현재 군의 진급체계는 패자부활전에 인색하다. 한두 번 진급에서 밀리면 영원히 그 계급의 인생을 살아야 하며, 자신이 목표로 한 계급에 진출하지 못하면 인생의 패배자가 된다. 우리 군은 진급이 되지 않아도 명예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또한 우리 장교들은 전역 뒤 사회에 나오면 군복이 부끄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냉대와 무시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오직 진급이 가져다주는 특전과 명예만이 군에 장기 복무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유일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는 장교단은 여기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위관급 때 동기가 영관급에서는 경쟁자가 되고 장군이 되면 적이 된다.

인사부서와 수사기관에 내려진 어떤 재앙

위로 올라갈수록 더 좁아지는 진급의 관문은 인간관계를 무한경쟁으로 몰아넣고 유력자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거나 파벌을 형성한다. 여기에다 군인을 줄 세우고자 하는 정치권력의 허세와 정치권력에 줄 서고자 하는 군인의 출세욕이 맞아떨어지면 장교의 진급은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이 점에서 우리 군의 실질적 통치자는 마키아벨리라고 할 것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은 가끔 도덕적 미덕을 저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유력자는 자기 사람을 챙기고 하급자는 유력자에게 개인적 충성을 하면서 경쟁자나 경쟁 세력을 음해하거나 배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군사권력의 지도를 만들고자 한다. 그런 만큼 군사집단의 가장 큰 권력은 지휘권이 아닌 인사권에서 나온다.

지난 7일 발표된 군 정기 진급인사는 최근 우리 군에서 과도한 진급 경쟁과 파벌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사건의 발단은 4월에 28사단에서 일어난 윤 일병 사망사건이 불거지면서부터였다. “음식을 먹다가 질식해 숨졌다”며 이 사건은 두 달 넘게 은폐되었다가 군인권센터가 그 실상을 폭로하자 군 병영문화 혁신의 주도권이 완전히 시민단체로 넘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이 서슬 퍼렇게 군을 질타하고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면서 군은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 돌연한 위기는 이제껏 군의 인사를 주도하던 육군의 인사부서와 수사기관에 재앙이었다. 6월 말 임명된 한민구 국방장관은 자신의 재임 이전에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기로 하고 국방부 감사관실을 동원하여 관련 책임자를 조사하였다.

감사 과정에서 이 사건에 대해 보고받지 못하고 언론을 보고서야 진상을 알게 된 권오성 육군 참모총장(육사 34기)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권 총장이 보고받지 못한 것은 사건을 보고할 책임이 있는 선종출 육군 헌병실장(육사 40기)이 사건의 진상과 속보를 총장에게 직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병실장도 졸지에 징계 대상이 됐다. 그런데 헌병 라인으로 사건이 보고되지 않은 것은 각종 군대 내 사건에 대한 보고를 헌병이 아닌 류성식 인사참모부장(육사 39기)이 독점한 탓이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부터 김관진 전 국방장관의 사람으로 분류되던 류 소장이 군 인사를 주도하던 핵심 인물이라는 점에서, 헌병의 사건보고를 인사참모부가 장악한 것은 그 파워 때문이라는 관측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사고에 연연하지 말고 훈련에 전념하라”던 김관진 장관의 ‘전투형 군대 육성 방침’에 따라 군대 내 사고에 인사참모부가 안이하게 대응했던 것으로 여론이 조성되면서 인사참모부장 또한 징계 대상이 되었다. 류 소장은 대령, 준장, 소장 직위를 모두 육군 인사참모부에서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김관진 국방장관 시절 최측근인 군사보좌관을 역임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새로 임명된 김요환 육군 참모총장(육사 34기)은 8월15일 광복절에 류 소장을 논산훈련소장으로 내보내고 그 자리에 자신의 연대장 시절 대대장이었던 직속 후배로 논산훈련소장을 맡고 있던 김규하 소장(육사 39기)을 앉히려 했다. 징계위원회에 막 회부되어 아직 징계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 보직인사를 먼저 결정하는 것은 인사권을 가진 총장이라 하더라도 분명 월권이었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그 다음날에 육군의 이런 인사조치 계획을 보고받고 동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돌연 월요일인 18일에 육군의 조치를 중단시켰다. 인사참모부장 인사가 보류되는 석연치 않은 과정은 또다시 군 내에 파란을 일으켰다. 아마도 청와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류 소장을 보호하려는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터였다.

정기 군 인사를 앞두고 인사라인의 혼선은 진급을 앞둔 장교들 전체를 흔들 만한 사안이었다. 어제의 유력자가 오늘은 낙오자가 되는 반전이 일어나면서 국방장관과 육군 참모총장 사이에서도 석연치 않은 갈등의 조짐이 나타났다. 이런 심상치 않은 인사정보를 수집하는 장교단의 고성능 레이더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무사령관 그만둔 이재수는
경질됐다기보단 배려받은 것
바로 4성장군으로 가기엔 부담
야전으로 한바퀴 돌려 내년에
군사령관 보내려는 의도로 보여

윤일병 사건 책임 묻는 과정에서
국방장관-육참총장 갈등 조짐
헌병실장·인사참모부장에 대한
경질 와중에 월권-인사보류 논란
자기 줄 찾는 별들의 파워게임

전인범 특전사령관과 장경욱 기무사령관의 경우

더 황당한 사태는 헌병으로 이어졌다. 헌병실장이 징계를 받을 처지에 이르자 10월7일의 정기인사에서 육군은 아예 헌병실장으로 헌병 출신이 아닌 보병 김주훈 소장(육사 40기)을 임명했다. 이어 또다른 헌병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에 이종협 대령(육사 42기)을 정상진급이 아닌 임기제 준장 진급자(해당 직위에 근무하는 조건으로 한시적으로 진급시키는 제도)로 발령냈다. 이에 헌병 장교들은 “사건 보고를 육군 인사참모부장이 독점하여 생긴 문제인데 왜 헌병이 초토화되느냐. 이렇게 되면 내년에 헌병에서 장군 진급자가 나올지도 걱정”이라며 조직의 안위와 자신의 진급에 대한 불이익을 걱정하는 눈치다.

더 황당한 일은 기무사로 이어졌다. 현 정부에서 세번째 기무사령관이자 박지만씨와 육사 동기생으로 군 내 떠오르는 실세로 평가받던 이재수 기무사령관(육사 37기)이 전격적으로 경질되어 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간 것이다. 이재수 사령관은 부임한 이래 육군 개혁 방향, 병영문화 혁신 방향 등 기무사 업무와 무관한 육군 정책발전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기무사가 육군의 정책까지 좌지우지하는 과시적 행태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눈총을 샀다. 그렇게 오지랖이 넓은 기무사령관이 윤 일병 사건과 같은 군대 내 주요 사건에 대해 “적시에 조언하지 못했다”며 자청해서 물러났다는 국방부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실상은 기무사령관 경질이 아니라 배려에 가깝다. 기무사령관을 바로 4성장군으로 진급시켜 군사령관으로 내보내기가 부담스러우니까 야전으로 한 바퀴 돌려 내년에 군사령관으로 보내려는 꼼수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역대 정권이 군을 관리하면서 권력 직위인 기무사령관을 4성장군으로 진급시킨 사례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이남신 대장(육사 23기)의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박지만 동기생들이 약진하는 현재의 군 추세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또다른 박지만 동기생인 현 전인범 특전사령관의 경우 최근 고문체험훈련 과정에서 2명의 특전사 요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나 별다른 징계 없이 여전히 건재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필자와의 통화에서 기무사령관에 대해 “그게 배려이지 왜 경질이냐”고 반문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내년 4월께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친구들이 군 최고 요직에 진출할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

정작 적시에 군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상부에 직언하다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물러난 기무사령관은 전임 장경욱 사령관이다. 그는 작년 8월에 일선 사단장들의 군 인사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여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청와대와 국정원의 군 출신 유력인사와 국방장관, 육군총장까지 지칭해 “군 인사를 관리하는 5개의 머리가 있다”는 야전 장교들의 여론이 가감 없이 기록돼 있었다. 각자 자기 동향과 근무인연에 속한 후배들을 챙긴다는 구체적 행태까지 적시되어 있었다. 이 보고서 내용을 알게 된 김 장관을 비롯한 당사자들은 반발했다. 그 결과 10월에 군복을 벗은 사람은 장경욱 사령관이었다. 야전 장교들이 보기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기무사도 군 유력자의 인사행태를 섣불리 건드렸다가 외려 된서리를 맞았다. 지금껏 기무사는 권력에 직언을 하다가 그 역풍을 맞은 적은 있어도 권력에 영합하여 불이익을 본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윤 일병 사건으로 보고의 법적 책임자도 아닌 기무사령관이 경질되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군 출신 유력인사들의 타협 산물?

만일 기무사가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조언을 못한 사례가 있다면 올해 3월 말에 불거진 무인기 출몰 소동이 대표적이다. 기무사는 3월 말에 북한 무인기에 대해 “대공용의점이 없다”고 판단을 내린 합동조사단의 간사 기관이었다. 그런데 기무사가 “별다른 위협이 아니”라고 판단한 이 무인기를 국정원이 수거해 가면서, 이 무인기는 4월에 ‘심각한 위협’으로 돌변했다. 4월 초에도 이런 정황을 전혀 알지 못한 김관진 국방장관을 비롯해 국방부 정보본부장 등은 무인기에 대한 국정원의 조사 결과를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 그러나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 등이 국정원을 압박하여 이 무인기의 의미를 ‘심각한 위협’으로 바꾸자, 무인기는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덮으려는 호재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뒤늦게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사건 조사를 부실하게 했다”며 기무사 요원을 질책하고 김관진 장관이 무인기를 “심각한 위협”이라며 사태를 주도하는 순간 세월호 참사가 벌어져 이 사건은 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만일 기무사령관이 잘못 조언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다면 그때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누나회’(박지만씨의 육사 37기생들을 부르는 별칭)는 건재하다.

이런 일련의 현상에 대해 군 장교들은 정보를 분석하기에 바쁘다. 우리 군에는 400여명의 장군과 3000명 정도의 대령이 있다. 이런 고위 장교단에 진출하기 위해 보직과 경력을 관리하는 중령, 소령들이 수만명이다. 계급과 직책이 높아질수록 군의 문화를 주도하는 장교단의 집단정신이 고양되어야 하지만 과도한 진급 경쟁에 내몰리는 한국군의 장교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과거 독일군 장교단의 ‘혁신을 추구하는 정신’, 이스라엘 장교단의 ‘생존에 대한 강한 의지’와 같은 집단정신이 한국군 장교들에게는 무엇일까? 이런 집단정신보다는 특정 장교에 대해 “아무개는 누구 사람”이라는 사적 파벌을 지칭하는 용어가 통용되는 것이 군의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소속된 조직에서 1등을 하면 진급이 된다”는 믿음이 약화되고 정치권이건 청와대건 누구에게든 줄을 대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확산된다면 군의 정신은 이미 무너졌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청와대가 군 장교들의 신상을 직접 검증한다는 원칙이 정착되고 난 이후 군의 집단정신이 무너지는 속도는 매우 빨라졌다. 육군에서 진급 추천을 받았다고 해도 청와대 검증 과정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의 노골적인 개입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군 유력자들이 청와대에 즐비한 상황에서 그 간섭의 폭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고위 장교들은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의식하며 초조주를 마시고 있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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