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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재일 조선대, 학술교류 통해 북과 남 잇는 다리 되고파”

등록 2013-12-23 19:21수정 2013-12-23 22:35

장병태 재일 조선대학교 학장이 지난 11월30일 일본 도쿄 서부 고다이라 지역에 위치한 조선대학교 입구에서 환한 웃음을 띠고 있다. 장 학장은 “조선대학이 북과 남의 학술교류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장병태 재일 조선대학교 학장이 지난 11월30일 일본 도쿄 서부 고다이라 지역에 위치한 조선대학교 입구에서 환한 웃음을 띠고 있다. 장 학장은 “조선대학이 북과 남의 학술교류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한겨레가 만난 사람] 재일 조선대학교 장병태 학장

일본 도쿄 서부에 위치한 재일 조선대학교(이하 조대)의 장병태(71) 학장은 지난달 30일 인터뷰 내내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남한의 한신대(총장 채수일)와 조대가 ‘세계사 속의 조선정전협정과 재일조선인’이라는 이름으로 조대 강당에서 정전협정 6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연 날이었다.

그 미소 때문이었을까? 필자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북과 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해외대학인 조대의 학장이면 좀더 강한 캐릭터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무너져갔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남과 북에 모두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인터뷰에서 그가 가장 강조한 것도 “조대가 북과 남을 잇는 다리가 되고자 한다”는 말이었다.

인터뷰/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60만 재일동포’라고 말했던 기억이 오래지 않은데 재일동포 수가 이제 40만명이 채 안 된다고 한다. 학교 운영에도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동포사회에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동화나 귀화, 국제결혼 등이 많아지고 있다. 또 일본 사회가 결혼도 안 하고, 어린아이도 많이 낳지 않는 사회가 됐다. 재일동포 어린이 수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조대만이 아니라 우리말을 가르치는 민족학교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학생 수를 늘리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민족교육을 이어나가야 민족성이 지켜진다.”

1956년 설립된 조대는 현재 일본의 정식 대학이 아닌 각종학교로 등록돼 있다. ‘조선대학교’라는 이름 자체가 그 산물이다. 일본에서 정식 대학 등록을 한 곳은 ‘대학’이란 이름을 붙인다. ‘조선대학교’란 이름 자체가 정식 대학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때 160여곳에 이르렀던 초·중·고 과정의 민족학교도 현재 70여곳으로 줄어들었다. 이들은 모두 일본 정부로부터 어떠한 재정적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 우익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만6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조대가 동포사회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사실이다. 조대의 교육 목표는 민족간부 양성에 있다. 민족적 자주성이 확고하고, 높은 지식, 높은 이론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것이 조대의 기본 사명이다. 이에 따라 조대 졸업생이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동포사회의 중심이 되고 있다. 조대를 졸업하고 민단에 가서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국적의 학생이 크게 늘어난 현실을 고려할 때, 이제는 조대를 남북 공동자산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우리는 국적에 관계없이 재일동포 자녀라면 다 받아들이고 교육을 하고 있다. 조대는 한번 없어지면 다시는 못 세운다. 꼭 지켜야 한다.”

남한 정부는 지금까지 조대를 북의 공식 교육기관으로 분류해오고 있다. 설립 당시 총련 쪽 동포사회가 주축을 이뤘으며, 지금도 해마다 북으로부터 ‘교육원조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학생 구성에서는 한국적이 3분의1을 넘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남한과의 무역 등을 위해 한국적을 취득했더라도 ‘우리말과 정신은 배워야 한다’며 조선대에 자녀들을 보내는 재일동포들이 많기 때문이다.

장 학장은 조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 말 속에 여러 사실들이 함축적으로 느껴졌다. 조대는 정치경제학부, 문화역사학부 등 총 8개 학부로 구성돼 있다. 재학생은 현재 700여명이고,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수업이 끝나는 오후 4시 이후에는 민족문화예술, 축구, 무용 등 다양한 예술체육활동을 한다. 그러나 이 시간대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어려운 학생들도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재일동포사회는 지난해 민족학교와 조대 학생들을 돕기 위한 공익법인인 ‘재일조선학생지원회’(대표이사 박영웅)를 만들어 학생들을 돕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 대학과 심포지엄·학술행사
저어새 ‘남북 공동연구’ 길 열며
학술사업 활발히 추진해와

조선적 재일동포들 향해
적대적 태도 보이는 남한 정부
이제는 ‘교류의 문’ 넓혀야

-이번 심포지엄 공동주최자인 한신대 채수일 총장께 조대가 심포지엄 등을 통해 남북을 잇는 다리가 되고자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조대만이 아니라, 일본에 사는 많은 재일동포들의 바람이다. 해방과 함께 분단이 되고 북과 남이 막히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조대를 포함해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 사회는 다리 역할이 돼서 북과 남을 이어주는 게 하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왔다. 조대는 공화국(북)과의 관계가 강한데다 이남과도 가능한 부분에서 교류를 해왔다.

학술교류만 해도 올해 한신대와 공동심포지엄을 연 것 외에도 지난해 건국대와 학술행사를 같이 했고 서울대, 고려대 교수들도 찾아와서 학술교류를 한 바 있다. 이분들과 조대 교수들이 공동으로 연구해서 공동명의로 논문을 내기도 했다. 2년 전인 2011년에는 조선문제연구센터(센터장 강성은 조대 부학장)를 설립해 학술교류를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하려고 하고 있다.”

학술교류 얘기를 듣다 장 학장에게 “조대가 앞으로 남북간에 촉매 역할도 할 수 있겠다”고 하자 그가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촉매 역할’은 조대의 능력 밖이라는 것이었다. “촉매 역할은 크다. 촉매란 우리가 주동이 되어서 북과 남이 넘어야 할 높은 장벽을 낮추는 것인데, 그런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다리 역할이 적절하다.”

‘다리’와 ‘촉매’를 명확히 구분짓는 것을 보면서 장 학장이 공학박사 출신이라는 것이 새삼 떠올랐다. 장 학장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교토대 공학박사다. 그는 28살 젊은 나이에 박사학위를 딴 뒤 1970년 조대에 교원으로 부임했다. 이후 조교수, 교수 지위를 거쳐 2001년부터는 학장으로서 조대를 이끌고 있다.

-교토대를 나온 뒤 조대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지 않았나?

“당시 애국심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교토대 학부 때부터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10년 동안 북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그런 속에서 은혜라 할까 고마움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애국심’이라는 장 학장의 말을 들으며 조대에서 인터뷰했던 몇몇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터뷰한 조대 학생들 중 상당수가 대학을 졸업한 뒤 민족학교 교원으로 가고 싶다고 답했다. “지금 이렇게 민족학교 상황이 안 좋은데 왜 굳이 그곳에 가려 하느냐”고 물었다. 한 학생의 대답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누군가가 이끌어주었기에 오늘 우리말을 할 수 있는 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이끌어주어야 할 아이들이 있습니다.”

-한신대 쪽에서 내년에는 남한에서 공동 학술행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다리 역할이 좀더 강화되는 것 아닌가?

“북과 남의 교류와 협력관계가 답보되고있을 때에도 학술교류, 문화교류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한국 대학의 초대가 있다 해도, 마음 놓고 찾아갈 수 있는 형편은 못 된다. 무엇보다도 한국에 가기 위해 비자를 신청하면, 남한 정부 쪽에서 조선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으로 바꿀 것을 강요하거나 모멸감을 주는 태도로 대하기도 한다. 너무 여러 가지 조건이 붙어 있어 신중히 대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금까지도 조대는 남북을 잇는 다양한 학술사업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남북을 잇는 저어새 연구다. 세계적 희귀조인 저어새는 “극동시베리아에서부터 이북과 이남, 일본까지 활동영역으로 삼고 있는 철새”다. 2000년대 중반 조대는 북의 평양동물원과 남의 대전동물원 등을 연결하면서 저어새 연구에서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다리 구실을 했다.

-사실 중국과 대만 관계를 볼 때도 학술교류는 양안관계 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남한의 현 정부가 학술교류 차원에 대해서만이라도 재일동포사회에 문을 더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맞다. 남한 정부의 조선적 재일동포들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면 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에는 고향방문단 형태로 총련 쪽 재일동포들에 대해서도 남한 방문이 허용됐다.”

‘조선적’은 1945년 해방 이전부터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 중 남한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이들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식민지 분류체계에 따른 ‘식민지 조선 출신 사람’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일본 국적 실무상으로는 무국적자로 분류돼 있다. 재일동포들의 경우 상당수가 경상도와 제주도 출신으로 한번만이라도 고향을 가보고 싶다는 염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장 학장의 경우도 경북 의성이 아버지와 할아버지 고향이다. 장 학장은 “일가붙이가 아직 의성에서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한다.

-남과 북의 관계가 최근 막혀 있다. 다리로서의 조대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재일동포사회에서는 ‘조국이 부강해야 재일동포들의 행복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조국이 훌륭해야 일본에서의 재일동포들의 지위가 높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국의 부강발전, 이것을 정말 바라고 있다.

분단의 역사를 끝장내고, 또 하나가 돼야 우리에게 행복이 있다. 이제 1세들이 거의 없고, 나를 포함한 2세들도 이제 60~80대다. 2세들도 이제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넘었다. 이제 3세, 4세, 5세들이 중심이 돼가는 상황에서 부강발전한 조국, 통일된 조국을 넘겨주지 않으면 재일동포사회 자체가 존재하지 못한다. 자칫 잘못하면 정말 그럴 수도 있다.”

장 학장이 인터뷰에서 주로 사용한 용어는 북에 대해서는 공화국, 남에 대해서는 한국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부강하기를 기원하는 ‘조국’은 과연 어디일까. 이에 대해 장 학장은 ‘조대가 공화국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해외대학’임을 환기시켰지만, 곧 이어 “민족적인 입장에서 볼 때 재일동포들의 지위가 높아지는 데서는 남과 북이 모두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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