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장관
이종석 전 통일장관의 ‘한반도 진로’ 분석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절대권력에 바탕을 두고 북한 사회를 통치해온 그의 죽음은 북한 사회를 넘어서 한반도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그의 죽음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정작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김정일 이후의 북한이다. 그가 이끌어온 ‘수령’ 절대권력의 유일체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핵문제와 남북관계는 어디로 갈 것인가? 새로운 지도부는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것인가? 김정일은 국제정세에 비교적 밝고 상당한 식견과 지도력을 갖춘 통치자였지만, 북한 경제의 침체와 저발전, 사회적 억압, 대외적 호전성 등도 그의 지도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제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는 김정은이다. 북한 사회에서 김정은은 선언적 차원에서 이미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입지가 확고하다. 그는 김정일이 그러했듯이 북한 주민들에게 통치자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의 권력은 김정일과는 다를 것 같다. 김정일은 1964년에 조선노동당에 입당하여 10년간 다양한 후계수업을 쌓고 나서야 후계자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20년간 직접 국정을 운영한 뒤에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젊은 김정은에게는 그럴 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불과 3년의 짧은 기간 동안 김정일이 30년간 밟아온 계단을 한꺼번에 올라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 결과 그의 지도력이 북한의 정치·국방·경제 등 중요 분야에서 밑바닥까지 투사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 따라서 김정은은 자신의 최대 후원자인 고모부 장성택을 정점으로 하는 권력 핵심 그룹의 후원 아래 국정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문가들이 김정일의 생존이 길어질수록 권력승계의 안정성이 높아지므로 북한 체제가 불안정해질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라고 진단해 왔는데, ‘형식적으로는 무난히 승계가 이루어지나 내용적으로 완벽한 승계가 불가능한’ 지금의 상황은 매우 애매하다.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원적으로 편재된 북한 체제의 특성이나 북한 핵심 그룹의 이해관계 등을 따져볼 때 김정은이 최고지도자로 부각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급하게나마 후계체제 확립을 위한 공식 절차를 어느 정도 거쳤기에 이 과정에서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김정은이 권력을 공고히 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끌어가기 위해서는 장성택 등의 후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한번도 2인자를 두어본 경험도, 집체 결정구조를 가져본 적도 없는 오늘의 김정은 후원그룹이 아직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못한 젊은 지도자를 위한 ‘맞춤형 국정운영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장기적으로 김정은 체제가 제대로 안착이 될지는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김정은의 소양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가 상당한 지도력을 갖추었다면 북한 정치가 어느 정도 안정되겠지만 그 반대라면 결국 권력 핵심부가 동요하고 그것이 북한 정권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남북관계다. 후계자의 지도력이 공고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한 ‘수령’의 사망은 북한 사회를 긴장시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에는 북한의 내부 긴장이나 동요가 자칫 남북관계로 불똥이 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가 제기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대화와 협력이 이루어지는 우호적 관계가 가장 바람직하다.
어떤 이들은 북한 세습정권의 부도덕성을 들어 남북대화에 비판적이다. 그렇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3대 세습은 개탄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규범적·도덕적인 차원에서 북한의 세습이 문제가 된다고 해서 우리가 이 시점에서 그것을 잣대로 대북정책을 구사할 수는 없다. 우리의 기분과 상관없이 새로 들어서는 김정은 체제는 북한 핵문제의 주체이며 남북관계의 한 축을 관리하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김정은 정권이 실패한다면 극심한 체제 불안정이 발생할 것이며 이것이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매우 위험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이 시대착오적인 세습이 일단 성공하는 것이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나오는 것이다. 그만큼 북한의 세습이 지닌 도덕적 문제와 별개로 국익 관점에서의 현실적 대응은 냉철하고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중대한 안보 현안을 제대로 관리하고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김정은 정권의 실체를 인정하고 조속히 대화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그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는 최소한 상대방을 자극할 만한 행동을 일절 삼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북한이 믿을 만한, 성의있는 대화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은 혈통적 정통성 외에 최고지도자로서 내세울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북한 주민들의 물질적 삶의 향상에 이전 지도자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 아마 당장은 그의 최고지도자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캠페인이 벌어지겠지만, 어느 정도 내부 체제가 정비되면 곧 대외개방과 남북협력에 이전 시대보다 더 큰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 지도부의 이러한 관심을 개혁·개방으로 이어지게 하고 국제협력의 틀로 유도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몫이다. 만약 남한이 이 일을 적극 추진하지 않으면 북한의 유일한 동맹인 중국이 그 역할을 도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로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유동적인 북한 정세에 대비하고 새로운 북한 정권과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개척해 나가기 위한 우리 사회의 ‘합의된 지혜’가 필요한 때다. 이종석 전 통일장관
우리가 중대한 안보 현안을 제대로 관리하고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김정은 정권의 실체를 인정하고 조속히 대화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그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는 최소한 상대방을 자극할 만한 행동을 일절 삼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북한이 믿을 만한, 성의있는 대화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은 혈통적 정통성 외에 최고지도자로서 내세울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북한 주민들의 물질적 삶의 향상에 이전 지도자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 아마 당장은 그의 최고지도자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캠페인이 벌어지겠지만, 어느 정도 내부 체제가 정비되면 곧 대외개방과 남북협력에 이전 시대보다 더 큰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 지도부의 이러한 관심을 개혁·개방으로 이어지게 하고 국제협력의 틀로 유도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몫이다. 만약 남한이 이 일을 적극 추진하지 않으면 북한의 유일한 동맹인 중국이 그 역할을 도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로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유동적인 북한 정세에 대비하고 새로운 북한 정권과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개척해 나가기 위한 우리 사회의 ‘합의된 지혜’가 필요한 때다. 이종석 전 통일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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