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연합훈련 강행에 북한 ‘물리적 대응’ 천명
대화·협력 분위기 상실, 군사·외교 갈등 고조돼
대화·협력 분위기 상실, 군사·외교 갈등 고조돼
천안함 침몰이 격동시킨 한반도 정세의 군사·외교적 갈등이 좀체 잦아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대화와 협상’을 강조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천안함 관련 의장성명이 “국면 전환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지난 21일 추가 대북제재 방침 공표와 25일 한-미 양국의 동해 연합훈련 강행으로 오히려 동북아의 군사·외교적 갈등이 높아지는 분위기가 확연하다. 북한은 24일 국방위원회와 외무성이 나서 한-미 연합훈련과 추가 제재에 ‘핵억제력에 기초한 물리적 조치’로 대응하겠다고 반발했고,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도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을 만나 한-미 연합훈련 반대 방침을 거듭 밝혔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24일 대변인 성명을 내어 한·미 양국의 연쇄 연합훈련을 “우리(북)에 대한 군사적 압살을 노린 노골적인 도발행위”라고 규정하고 “필요한 임의의 시기에 핵억제력에 기초한 우리식의 보복성전을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위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더욱더 요원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쪽 외무성 대변인도 같은 날 <조선중앙통신> 기자회견 형식을 빌려 “미국은 전쟁연습 강행과 제재를 통한 압박 강화에로 나오고 있다”며 “미국의 도발책동은 우리가 정한 금지선을 넘어서는 것이며 이런 조건에서 우리도 미국이 그어놓은 금지선에 더이상 구애될 필요가 없게 됐다”고 밝혔다. 외무성 대변인은 “핵억제력을 더욱 다각적으로 강화하고 강력한 물리적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쪽의 이런 반발은 ‘핵억제력’을 되풀이 강조했다는 점에서 수위가 매우 높다. 하지만 ‘즉각적이고도 구체적인 대응조처’를 거론하지 않은 대목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대응조처와 관련해 “필요한 임의의 시기”(국방위 대변인 성명) 또는 “대화와 전쟁에 다 준비돼 있다”(외무성 대변인)는 등의 단서를 달아 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박의춘 북쪽 외무상이 23일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천안함 침몰이 초래한) 지난 몇달간 전쟁 직전의 폭발적 정세는 공화국(북)의 안정과 인민에 피해를 줬고 경제에 극심한 손해를 가져왔다”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한하게 안정적인 정세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쪽은 지금 대결보다는 대화와 협상을 바란다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미 양국의 태도인데, 대화와 협상을 모색하는 분위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 정부 고위당국자는 “지금은 출구전략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 한-미 연합훈련은 연말까지 매달 할 것”이라며 오히려 강경 기조를 강조했다. 필립 크라울리 미국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도 북쪽 국방위 대변인 성명에 대해 “북한과 말싸움을 벌이는 데 관심이 없다”는 싸늘한 논평을 내놨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이 최근 아세안지역포럼 등에서 6자회담과 관련해 기존의 “조속한 재개”가 아닌 “재개를 위한 여건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한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한·미 양국 정부의 태도에 비춰 6자회담의 조기 재개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중국 정부의 판단이 깔린 외교적 수사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다른 고위 당국자도 “천안함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에 짙게 드리운 갈등과 대결 국면이 어떤 파급효과를 낳고 어떻게 전개될지 우려되는 시점이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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