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성명뒤 북 ‘대화공세’ 중 “6자 재개”
한·미는 ‘북 사과’ 거론하며 신중한 태도
서해 군사훈련 등 미-중 전략 조정 변수
한·미는 ‘북 사과’ 거론하며 신중한 태도
서해 군사훈련 등 미-중 전략 조정 변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9일 천안함 관련 의장성명 채택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 논의의 중심축이 ‘천안함’에서 ‘6자회담’으로 옮아가는 분위기다. 3월 26일 이후 동북아 정세를 짓눌러온 천안함 문제에서 벗어나려는 각국 정부의 출구전략이 가동되며, 논의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샅바싸움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11일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이 (동북아 정세의) 긴장완화로 가는 큰 길을 열어준 것은 틀림없다”며 “기본 방향은 정해졌다”고 밝혔다. 이 고위 당국자는 “국면전환의 기회가 제공됐다”며 “동북아에 이해관계를 가진 모든 나라가 천안함 사태에서 벗어나 정상 상황으로 가는 게 중요한데, 북한도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겉보기에 가장 먼저, 바쁘게 움직이며 ‘대화공세’를 펴는 쪽은 북한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0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회견에서 “우리는 평등한 6자회담을 통하여 평화협정체결과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하게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선호 유엔주재 북한대사도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직후 회견을 자청해 “우리는 6자회담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고 강조했다. ‘이제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메시지다.
북쪽은 미국과 대화하고 싶다는 속내도 거듭 드러냈다. 9일 공표된, 북쪽에 장기 억류중인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조선중앙통신> 보도와, 판문점에서 천안함 관련 북-미(형식상 유엔사령부-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좌급 실무접촉을 13일 열자는 제안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이를 “북쪽의 퇴로찾기(출구전략)”라고 평가했다.
중국도 신속한 6자회담 재개를 강조했다.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직후 내놓은 성명에서 “우리는 조속히 6자회담이 재개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공동으로 수호할 수 있게 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미 양국의 태도에 비춰, 6자회담이 실제 재개되려면 어느 정도의 냉각기와 함께 관련 각국 정부의 외교적 절충·조정 과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먼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과와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6자회담 재개가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도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나 북한의 다른 당국자를 6자회담 문제 논의를 위해 초청할 계획은 없다”며, 북쪽과 바로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을 생각이 없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한-미 양국의 태도가 강경 일변도는 아니다.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사과가 전제조건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며 “뭘 기준으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판단할지는 한-미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여지를 뒀다.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도 “북한이 건설적 행동을 보여준다면, 경제·정치·외교적 측면에서 그들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6자회담 재개에는 남북한 정부의 태도와 함께 미-중의 전략적 조정이 필수적이다. 관련 장애물의 하나는 중국 정부가 공개 반대하는 한-미의 합동군사훈련 추진 문제다. 한-미 양국은 합동군사훈련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훈련 장소와 규모 등에선 조정의 여지를 뒀다. 한국 정부의 고위 인사는 “북한의 추가 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는 분명히 전하면서도, 미-중 갈등 등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지 않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앞마당으로 간주하는 서해가 아닌, 동해나 남해 쪽에서 훈련이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9일 오전 일본 요코스카항을 떠난 미군 7함대 소속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는 일단 한반도가 아니라 7월 중 훈련 일정이 잡혀 있는 인도양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야흐로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쥐려는 관련 각국 정부의 고차 함수 풀이가 본격화하는 형세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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