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 선체구조분과장 박정수 해군 준장(왼쪽)이 지난달 29일 경기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3개 언론단체를 상대로 열린 ‘천안함 언론인 설명회’에서 스크류가 안쪽으로 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평택/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국방부 “카탈로그에 어뢰설계도”→“CD에” 번복
‘점토에 가까운’ 폭발 흡착물질 등 설명 잘 안돼
“지방선거 겨냥 급히 발표해 불신 초래” 지적도
‘점토에 가까운’ 폭발 흡착물질 등 설명 잘 안돼
“지방선거 겨냥 급히 발표해 불신 초래” 지적도
천안함 사고 ‘100일’ 일지
천안함이 침몰(3월26일)된 지 3일로 100일째를 맞았지만 ‘침몰의 진실’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민·군 합동조사단(합조단)이 5월20일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공식 발표했음에도, 이후 정부나 합조단의 말이 뒤바뀌거나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여럿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꼬리’ 부분에서 시작한 의혹이 사건의 진실인 ‘몸통’을 흔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 ‘1번 어뢰’를 둘러싼 논란 무엇보다 5월15일 쌍끌이 어선으로 건져 올린 어뢰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합조단은 5월20일 천안함 침몰원인 조사결과 발표 때, 쌍끌이 어선으로 건져 올린 어뢰가 북한에서 제조된 ‘CHT-02D’ 어뢰라며 ‘결정적인 증거물’로 내놓았다. 합조단은 ‘이 어뢰가 범인’이라는 근거로 △폭발로 발생한 흡착물질인 알루미늄 산화물 분석 결과 △어뢰 추진체의 ‘1번’ 표시 △어뢰와 함체의 부식 정도 △어뢰 추진체와 북한의 어뢰 설계도의 일치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합조단이 제시한 이런 근거들은 갈수록 도전받고 있다. 첫째, 흡착물질과 관련해 합조단은 어뢰의 폭약에 포함돼 있던 알루미늄 가루가 폭발하며 천안함 선체와 어뢰 추진체에 하얗게 눌어붙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물리학)와 캐나다 매니토바대 지질과학과 분석실장 양판석 박사 등은 합조단이 제시한 자료들을 분석한 뒤, 폭발로 발생한 알루미늄 산화물이 아니고 점토성분에 가깝다고 반박했다.
둘째, 합조단은 파란색 잉크로 표시된 어뢰추진체의 ‘1번 표시’에 대해서도 6월29일 기자협회·언론노조 등 언론단체를 상대로 한 설명회에서 “‘1번’ 표기의 잉크는 청색 유성매직으로, 분석 결과 ‘솔벤트 블루5’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솔벤트 계열은 잉크에 많이 쓰이는 성분이고, 합조단은 ‘1번’ 잉크의 성분과 대조할 북한 잉크 시료를 확보하지 못해 ‘1번’의 증거로는 불충분하다.
셋째, 비슷한 기간 바다 속에 있던 어뢰와 함수의 녹슨 정도도 중요한 대목이었지만, 합조단은 “어뢰 추진체의 부식상태는 재질과 부위별로 최고 6배가량 부식 두께 차이가 심해 부식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판단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과학적 설명이 힘들다는 얘기다.
넷째, 합조단이 조사결과 발표 때 제시한 북한 어뢰의 실물크기 설계도도 해당 어뢰의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군의 발표에 대한 신뢰가 금이 가 있다. 게다가 합조단은 당시 북한이 어뢰 판매를 위해 제작한 카탈로그에 설계도가 있었던 것처럼 발표했으나 김태영 국방장관 등은 이후 시디(CD)에 있었다고 말을 바꾸었다.
이밖에도 버블제트 어뢰가 폭발할 때 발생하는 거대한 물기둥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도 합조단의 발표와 백령도 초병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잠수정(함)이나 어뢰를 탐지하는 데 쓰이는 소나(음파탐지기)가 천안함에서 작동했는지, 침몰 순간 열상감시장비(TOD) 영상이 정말 없는지 등을 놓고도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 왜 의문이 계속 나오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6·2지방선거’ 일정에 맞춰 급하게 진실의 퍼즐을 맞추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자업자득’이라고 지적했다.
군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하면 천안함 침몰 원인을 놓고, 청와대와 군 내부에서도 ‘어뢰파’와 ‘비어뢰파’로 갈려 적지않은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생존자나 목격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북한의 작전능력에 대한 평가 등도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실제 합조단도 6월29일 언론 3단체 설명회에서 버블제트 어뢰를 실전에서 사용해 성공한 것은 북한이 처음이라고 인정했다. 게다가 정찰·공작용으로 사용하는 소형 잠수정에 중어뢰를 장착해 공격용으로 실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군 전문가들도 선뜻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런 논란 속에서 5월15일 ‘1번 어뢰’가 인양돼 내부 논쟁은 ‘어뢰파’의 승리로 정리가 됐다. 그만큼 ‘1번 어뢰’와 천안함 침몰의 상관성을 밝히는 게 중요한 과제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단 5일 만에 어뢰와 천안함의 모든 상관관계를 입증한 것처럼 발표했다.
익명을 요구한 군 소식통은 “어뢰를 이동하고, 물과 먼지를 제거하고, 보고서를 쓰는 데 들어간 시간 등을 제외하면 불과 3일 안팎에 모든 검증을 한 꼴”이라며 “정부가 지나치게 과욕을 부려 불신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이용인 이승준 기자 yyi@hani.co.kr
천안함 사고 ‘100일’ 일지
김태영 국방부 장관(가운데)이 천안함 사건 발생 100일을 하루 앞둔 2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김 장관 왼쪽은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다. 연합뉴스
이슈천안함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