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중간발표에 나선 감사원 박수원 제2 사무차장이 10일 오후 서울 감사원 브리핑룸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감사원 발표내용 들여다보니…
감사원이 10일 발표한 ‘천안함 침몰사건 대응실태’ 감사결과(중간발표) 내용은 에이4(A4) 용지 5장 분량에 불과하다. 감사원은 다른 감사 때와 달리 군사안보와 군사기밀 보호를 이유로 감사결과 전문을 공개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감사결과도 밝히지 않았다. 감사결과 발표 뒤 이뤄진 박시종 감사원 행정안보감사국장과 취재진 사이의 문답 시간도, 박 국장이 대체로 “공개할 수 없다, 밝힐 수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해 20분도 안 돼 끝났다.
하지만 감사원이 두루뭉술하게 찔끔 밝힌 감사 내용만 봐도 군사대비태세, 상황보고 및 전파 등 지휘보고체계, 초동조처, 상황 발생 뒤 위기대응 등 곳곳에서 어이없는 문제점이 숱하게 드러났다. 군당국은 처음엔 사태의 위기관리반을 소집하지 않는 등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 못했고, 늑장보고와 허위보고, 현장보고 묵살, 자료 조작 등이 있었던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확인됐다. 천안함 침몰사고와 관련한 군당국의 대응은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 ‘종합부실세트'라고 할 만하다. 더욱이 감사원의 이날 발표 내용은 감사결과의 극히 일부에 한정돼, 실제 천안함 침몰사고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군당국의 문제점 가운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감사원은 지난달 3~28일 국방감사 전문인력 29명을 투입해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해군 작전사령부 등을 대상으로 감사를 벌여 전투예방·준비태세, 상황보고·전파 등에서 문제점을 확인했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 결과 드러난 ‘제도개선사항' 등은 심층적인 검토·분석 뒤 별도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이 이날 밝힌 군당국의 대응태세 문제점을 분야별로 나눠 짚어본다.
① 전투준비태세 소홀
사고 3일전 ‘북 잠수정 정보’ 전달받고도 무방비 군당국은 북한의 잠수함(정) 침투·공격을 예측하고 낌새가 있다는 정보를 확보하고도 필요한 대비태세를 갖추지 않았다. 군의 기본 임무인 경계와 전투 준비를 등한시한 것이다. 합동참모본부, 해군 작전사령부, 해군 제2함대사령부는 지난해 11월10일 대청해전 이후 전술토의 등을 통해 ‘북한이 잠수함(정)을 이용해 서북해역에서 우리 함정을 은밀하게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제2함대사령부는 대청해전 이후 백령도 근해에 잠수함 대응능력이 부족한 천안함을 배치한 채 대잠능력 강화에 나서지 않았다. 2함대사령부 등은 사건 발생 2~3일 전 ‘북한 잠수정 관련 정보’를 전달받고도 적정한 대응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이번 감사에서 확인됐다.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있었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② 상황 보고 및 전파 부실
2함대, 사고접수 16분 지나 합참에 보고 ‘늑장’ 경계에 실패한 군은 사태 발생 뒤 최초 상황 보고가 늦었고, 천안함이 보고한 ‘어뢰피격 가능성'을 빼고 상급기관에 보고했다. 신속·정확한 보고가 생명인 군에서 늑장·축소보고가 벌어진 것이다. 제2함대사령부는 천안함으로부터 3월26일 밤 9시29분께 사건 발생 보고를 받고서도 해군작전사에는 3분 뒤에 보고하고 합참에는 최초 상황보고 접수로부터 16분이 지난 밤 9시45분에야 보고했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대로라면 그 사이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은 사건 현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늑장대처다. 군의 늑장보고 이유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이날 “초기에 군이 상황 파악을 못하고 우왕좌왕한 탓으로 본다”고 밝혔다. 해군 2함대사령부는 천안함으로부터 침몰 원인이 “어뢰피격으로 판단”된다는 보고를 밤 9시53분에 받았지만 이러한 사실을 합참, 해군작전사 등 상급기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사고 당일 밤 11시께 초계함인 속초함이 북방한계선(NLL) 근처에서 발포한 해상 표적물에 대해서도 속초함은 ‘북한 반잠수정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했으나 2함대사는 속초함의 보고와 달리 상부에 “새떼”라고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은 최초 상황보고를 중간부대에서 추정·가감 등을 금지한 보고지침을 어겼고, 현장의 보고를 누락해 초기대처에 혼선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감사기간 중 레이더 사이트 영상과 조류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정밀조사했으나, 속초함이 발포한 물체가 반잠수정인지 새떼인지 최종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합참은 해군작전사로부터 천안함 침몰을 보고받은 뒤 긴급상황을 전파해야 하는 유관기관 중 상당수 기관에 상황을 전파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합참은 밤 9시15분이란 해군작전사 보고와 달리 사건 발생 시각을 ‘21:45분’으로 임의 수정하고, “폭발음 청취” 등 외부 공격 가능성 보고 내용을 삭제한 채 김태영 국방장관 등에게 보고하고 언론에 발표했다. 감사원은 합참이 사건 발생 시각을 멋대로 고친 것에 대해 ‘경계 실패와 초동대처 지연에 따른 비난을 모면하려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군당국은 또 3월27일 오전 7시40분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로부터 정확한 사건 발생 시각 등을 알 수 있는 지질자원연구원 지진파 자료를 받고도 당시 혼선이 있었던 사건 발생 시각에 대한 적극적인 수정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③ 상황 발생 뒤 위기 관리·대응조처 부실
국방부 ‘위기관리반’ 소집않고도 “소집” 거짓말 군을 지휘하고 상황을 총괄해야 할 국방부도 허둥대고 거짓말을 했다. 국방부는 천안함 침몰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관계 규정에 따라 ‘위기관리반’을 소집해야 하는데도 이를 소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김태영 장관에게는 위기관리반을 소집한 것처럼 허위보고하고 언론에도 위기관리반을 소집했다고 홍보했다. 합참 등 일부 관계 부대는 비상상황 때 의무적으로 조처해야 할 전투대응태세를 이행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국방부가 처음엔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 못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확한 실상을 알리지 않아서 은폐 의혹과 국민 불신을 자초했다. 특히 사건 직후 침몰 원인 규명과 관련해 관심을 모은 열상감시장비(TOD) 공개 과정에서 말바꾸기를 3차례나 해 국민의 불신만 높였다. 국방부는 동영상이 실제 시각 기준으로 사건 당일 밤 9시25분38초부터 녹화된 사실을 알고도 9시35분8초 이후의 영상만 편집해 공개한 뒤, 여론의 질타에 떠밀려 두 차례 추가 영상을 공개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박시종 감사원 행정안보감사국장은 “사건 발생 시각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돼 군이 어려운 처지에 빠지자, 군이 두번째로 수정해 발표한 사건 발생 시간인 밤 9시30분을 유지하기 위해 밤 9시30분 이전의 티오디 영상은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국장은 “사고 발생 당시 밤 9시21분56초 티오디 장면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 군당국은 보도자료 배포 때 보안성 검토를 실시하지 않거나 소홀히 해 주요 무기 배치 현황 등 군사기밀 자료 다수가 외부에 유출됐다. ④감사원, “군사기밀” 구체내용 안밝혀
“감사결과 미흡” 비판 감사원은 감사결과 전문에 군의 핵심적인 군사작전지침·계획, 서북해역 함정보유·배치 현황, 군의 무기성능 및 한계 등 군사기밀 사항이 다수 포함돼 있어 국가안보 및 군사기밀관리 등에 저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보도자료를 만들어 감사결과를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 질의응답에서도 감사원은 대부분의 질문에 “군사기밀에 속하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감사원은 또 속초함이 미확인 물체를 반잠수정으로 판단한 근거, 미확인 물체를 반잠수정이나 새떼 등으로 결론 내리기 어려운 이유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렇듯 감사원이 대부분의 감사 내용을 국가안보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아 국민의 의혹과 불신을 해소하기에는 크게 미흡한 감사결과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박시종 행정안보감사국장이 10일 오후 서울 감사원 브리핑룸에서 보고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고 3일전 ‘북 잠수정 정보’ 전달받고도 무방비 군당국은 북한의 잠수함(정) 침투·공격을 예측하고 낌새가 있다는 정보를 확보하고도 필요한 대비태세를 갖추지 않았다. 군의 기본 임무인 경계와 전투 준비를 등한시한 것이다. 합동참모본부, 해군 작전사령부, 해군 제2함대사령부는 지난해 11월10일 대청해전 이후 전술토의 등을 통해 ‘북한이 잠수함(정)을 이용해 서북해역에서 우리 함정을 은밀하게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제2함대사령부는 대청해전 이후 백령도 근해에 잠수함 대응능력이 부족한 천안함을 배치한 채 대잠능력 강화에 나서지 않았다. 2함대사령부 등은 사건 발생 2~3일 전 ‘북한 잠수정 관련 정보’를 전달받고도 적정한 대응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이번 감사에서 확인됐다.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있었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② 상황 보고 및 전파 부실
2함대, 사고접수 16분 지나 합참에 보고 ‘늑장’ 경계에 실패한 군은 사태 발생 뒤 최초 상황 보고가 늦었고, 천안함이 보고한 ‘어뢰피격 가능성'을 빼고 상급기관에 보고했다. 신속·정확한 보고가 생명인 군에서 늑장·축소보고가 벌어진 것이다. 제2함대사령부는 천안함으로부터 3월26일 밤 9시29분께 사건 발생 보고를 받고서도 해군작전사에는 3분 뒤에 보고하고 합참에는 최초 상황보고 접수로부터 16분이 지난 밤 9시45분에야 보고했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대로라면 그 사이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은 사건 현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늑장대처다. 군의 늑장보고 이유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이날 “초기에 군이 상황 파악을 못하고 우왕좌왕한 탓으로 본다”고 밝혔다. 해군 2함대사령부는 천안함으로부터 침몰 원인이 “어뢰피격으로 판단”된다는 보고를 밤 9시53분에 받았지만 이러한 사실을 합참, 해군작전사 등 상급기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사고 당일 밤 11시께 초계함인 속초함이 북방한계선(NLL) 근처에서 발포한 해상 표적물에 대해서도 속초함은 ‘북한 반잠수정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했으나 2함대사는 속초함의 보고와 달리 상부에 “새떼”라고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은 최초 상황보고를 중간부대에서 추정·가감 등을 금지한 보고지침을 어겼고, 현장의 보고를 누락해 초기대처에 혼선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감사기간 중 레이더 사이트 영상과 조류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정밀조사했으나, 속초함이 발포한 물체가 반잠수정인지 새떼인지 최종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합참은 해군작전사로부터 천안함 침몰을 보고받은 뒤 긴급상황을 전파해야 하는 유관기관 중 상당수 기관에 상황을 전파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합참은 밤 9시15분이란 해군작전사 보고와 달리 사건 발생 시각을 ‘21:45분’으로 임의 수정하고, “폭발음 청취” 등 외부 공격 가능성 보고 내용을 삭제한 채 김태영 국방장관 등에게 보고하고 언론에 발표했다. 감사원은 합참이 사건 발생 시각을 멋대로 고친 것에 대해 ‘경계 실패와 초동대처 지연에 따른 비난을 모면하려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군당국은 또 3월27일 오전 7시40분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로부터 정확한 사건 발생 시각 등을 알 수 있는 지질자원연구원 지진파 자료를 받고도 당시 혼선이 있었던 사건 발생 시각에 대한 적극적인 수정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③ 상황 발생 뒤 위기 관리·대응조처 부실
국방부 ‘위기관리반’ 소집않고도 “소집” 거짓말 군을 지휘하고 상황을 총괄해야 할 국방부도 허둥대고 거짓말을 했다. 국방부는 천안함 침몰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관계 규정에 따라 ‘위기관리반’을 소집해야 하는데도 이를 소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김태영 장관에게는 위기관리반을 소집한 것처럼 허위보고하고 언론에도 위기관리반을 소집했다고 홍보했다. 합참 등 일부 관계 부대는 비상상황 때 의무적으로 조처해야 할 전투대응태세를 이행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국방부가 처음엔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 못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확한 실상을 알리지 않아서 은폐 의혹과 국민 불신을 자초했다. 특히 사건 직후 침몰 원인 규명과 관련해 관심을 모은 열상감시장비(TOD) 공개 과정에서 말바꾸기를 3차례나 해 국민의 불신만 높였다. 국방부는 동영상이 실제 시각 기준으로 사건 당일 밤 9시25분38초부터 녹화된 사실을 알고도 9시35분8초 이후의 영상만 편집해 공개한 뒤, 여론의 질타에 떠밀려 두 차례 추가 영상을 공개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박시종 감사원 행정안보감사국장은 “사건 발생 시각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돼 군이 어려운 처지에 빠지자, 군이 두번째로 수정해 발표한 사건 발생 시간인 밤 9시30분을 유지하기 위해 밤 9시30분 이전의 티오디 영상은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국장은 “사고 발생 당시 밤 9시21분56초 티오디 장면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 군당국은 보도자료 배포 때 보안성 검토를 실시하지 않거나 소홀히 해 주요 무기 배치 현황 등 군사기밀 자료 다수가 외부에 유출됐다. ④감사원, “군사기밀” 구체내용 안밝혀
“감사결과 미흡” 비판 감사원은 감사결과 전문에 군의 핵심적인 군사작전지침·계획, 서북해역 함정보유·배치 현황, 군의 무기성능 및 한계 등 군사기밀 사항이 다수 포함돼 있어 국가안보 및 군사기밀관리 등에 저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보도자료를 만들어 감사결과를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 질의응답에서도 감사원은 대부분의 질문에 “군사기밀에 속하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감사원은 또 속초함이 미확인 물체를 반잠수정으로 판단한 근거, 미확인 물체를 반잠수정이나 새떼 등으로 결론 내리기 어려운 이유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렇듯 감사원이 대부분의 감사 내용을 국가안보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아 국민의 의혹과 불신을 해소하기에는 크게 미흡한 감사결과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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