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 시절 합의·서명된 ‘9·19 남북 군사합의’(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공식화하는 쪽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에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이번에는 북한이 예고한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를 그 구실로 삼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해 감시·정찰 능력을 키우는 만큼, 9·19 군사합의에서 한국의 대북 정찰 능력을 제한하는 조항의 효력을 우선 정지해,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정찰을 재개한다는 방침으로 14일 알려졌다.
2018년 맺은 9·19 군사합의는 군사분계선 일대 지상·해상·공중 접경지역에서 완충구역을 설치해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인 적대 행위를 중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합의에 따라 고정익(날개가 고정된 항공기·전투기나 정찰기 등)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서부 20㎞, 동부 40㎞는 비행이 금지됐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9·19 군사합의에 따른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북한의 임박한 전선 지역 도발 징후를 실시간 감시하는 데 굉장히 제한돼 있다”며 이 합의 효력을 정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9·19 군사합의가 군사대비태세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효력 정지가 필요하다’는 국방부 입장을 반복해 유관 부처에 전달했고, 유관 부처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할 경우 정찰 규제의 효력 정지를 시작으로, 이후 북한이 추가적으로 무력 행동을 할 때마다 맞대응으로 효력 정지를 단계적으로 추가해서, 최종적으로는 9·19 군사합의를 백지화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9·19 군사합의는 국회 비준 없이 맺어졌기에, 효력 정지는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북한에 통보만 하면 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남북 9·19 군사합의 주요 내용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국방부는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의 근거로 이달 초까지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을 내세우다, 최근에는 북한의 3차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들고 있다. 앞서 북한 무인기의 수도권 침투(지난해 12월) 뒤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애초 국방부는 9·19 군사합의로 군사분계선 근처 무인기·정찰기 비행이 제한돼 대북 감시·정찰 능력이 크게 약해져, 한국이 북한 기습에 노출됐다는 주장을 폈다. 구체적으로 북한 장사정포가 산 뒤에 있는데 감시 사각지대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위원회 소속인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스라엘은 9·19 군사합의 같은 감시·정찰에 대한 제약이 전혀 없는데도 하마스의 기습을 받았다. 9·19 군사합의 이전에도 산 뒤에 있는 북한 장사정포는 정찰이 힘들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다 정부는 최근에는 북한의 정찰위성을 그 명분으로 대고 있다. 신원식 장관은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에 미국도 공감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불안한 한반도 상황을 고려하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가 아니라 이를 무력 충돌을 예방하는 안전핀으로 활용해 북한에 ‘철저한 이행’을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9·19 군사합의는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 부속문서로 남북 정상이 합의한 문서를 토대로 내용을 보증한 것”이라며 “북한 처지에선 무오류인 최고 지도자 결정을 부정하는 것이라, 먼저 이 합의 파기나 효력 정지를 주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강조하면서 남북 합의를 한국이 먼저 효력 정지하는 것 또한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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