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8일 수중에서 핵 공격이 가능한 전술핵공격잠수함을 건조했다고 밝혔다. 지난 6일 열린 진수식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 등이 참석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뒤 대한민국은 더 안전해졌는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밤이면 두 다리를 뻗고 자고, 낮이면 편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가? 2019년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미국은 더 안전해졌는가? 한-미 동맹이 강화됐다고 하고 한-일 관계가 개선됐다고 하는데 한·미·일은 더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됐는가? 동북아시아는 더 평화로워졌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다.
우선 북한의 군사력은 강화되고 있고 공격적인 태세를 보이고 있다. 북은 2019년 이후 무서울 정도의 속도와 집중력을 가지고 새로운 무기체계를 개발·시험·배치하고 있다. 미국을 겨냥한 전략핵무기, 한국을 타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 일본과 괌 등을 사거리 안에 둔 중거리 핵무기까지 ‘3종 세트’를 이미 구비했다. 이들을 실전배치한 데 이어 실제 사용을 가상한 훈련까지 벌이고 있다. 필요하다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전략을 법제화했고, 군사작전의 ‘총적목표’가 “남반부 전 령토를 점령”하는 것이라고까지 공언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응책은 한-미 동맹 강화와 한-일 관계 개선이다. 워싱턴 선언으로 미국이 확장억제를 강화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북이 핵무기로 한국을 공격한다면 미국은 핵무기로 북을 보복하겠다는 건 오래된 약속이었다. 몇십년 묵은 약속을 새롭게 보이기 위한 장치들이 추가되기는 했다. 핵협의그룹이 만들어졌고, 미국의 전략핵잠수함과 같은 ‘전략자산’들이 한반도에 자주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확장억제 강화의 기세에 눌려 북이 군사활동을 자제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번번이 북의 ‘도발’을 불러일으키며 군사적 긴장상태 격화를 초래하고 있다.
동맹에 ‘올인’하는 것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에도 정성을 다했다.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심지어 핵 오염수 문제 등에서 ‘퍼주기’로 일관했다. 심지어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명확하게 내세우고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그 정성이 통했던 것일까. 기시다 후미오 정부를 움직여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여세를 몰아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3국 군사훈련을 정례화하기로 했지만 북은 위축되기는커녕 더 공세적으로 나가고 있다. 이제는 “해군의 전투력을 급속도로 향상”시키겠다며 오히려 전선을 확장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3국 협력에 중국을 끌어들여 북을 고립시키기를 희망하는 것 같다. 지난 4일 공개된 에이피(AP)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북한의 대중 경제 의존도를 감안하면 중국은 북한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며 기대를 비쳤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책임이 있는 중국으로서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마땅히 건설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는 속내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당위론을 현실화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이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에 비토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런 명분론으로 중국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윤 대통령은 러시아에도 바라는 바가 있다. 지난 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 비공개 발언에서 “국제사회의 평화를 해치는 북한과의 군사 협력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며 “어떤 유엔 회원국도 불법 무기 거래 금지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규정한 대북 제재 의무를 저버려선 안 된다”고 희망사항을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다음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나 무기 거래 등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러시아에도 명분론을 내세운 것이다. 이미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제재를 반대하고 있는 러시아가 이런 말 몇 마디로 입장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미국과 일본에는 ‘퍼주기’로 공약을 받아내느라 진심이었는데, 중국과 러시아에는 명분을 내세운 말 몇 마디로 행동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대북제재는 이미 그 북쪽이 훤히 뚫려 구멍이 났는데 중국과 러시아를 견인하려는 전략도 보이지 않고 전술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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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북이 선수를 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양국 고위관리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관계를 다지고 ‘주고받을’ 것들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2019년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내세운 ‘정면돌파전’이다. 북한은 코로나 시기에는 제재와 봉쇄를 스스로의 힘으로 뚫고 나가겠다며 스스로 국경을 닫아걸고 전례없는 자립경제를 추구했다. 이젠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정면돌파전’에 성공적으로 끌어들였다. ‘역공’의 단계라고 보는 것일까. 미국이 아파할 부분을 건드리기 시작하고 있다.
북이 지난 4월과 7월에 시험발사한 ‘화성포-18’은 고체연료를 이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었다. 발사 준비시간이 길지 않고 이동식 미사일 발사차량에서도 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의 감시정찰을 무력화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테드 포스톨 같은 미국 전문가들은 이 미사일이 최대 3개의 핵탄두와 다수의 가짜 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미국은 현재 알래스카에 지상배치 미사일 방어체계를 설치해 북이나 중국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요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데, 화성포-18은 이 미사일 방어체계도 무력화할 수 있다. 핵탄두와 가짜 탄두가 비행하기 시작하면 미국은 보유하고 있는 요격미사일을 소진해도 모두 요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워싱턴 선언과 캠프 데이비드 합의에 환호하고 있는 사이 북은 미국이 핵전략을 재고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지난 5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무부, 국방부는 브리핑에서 일제히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면 안보리 결의 위반인 만큼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북-러 정상회담이 열릴지, 그 정상회담에서 무기 공급이 합의될지는 며칠이면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언론이 미리부터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미국에 아픈 지점이 어디인지가 드러났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안녕하십니까?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