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8월15일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종찬 광복회장이 27일, 육군사관학교(육사) 내 독립전쟁 영웅 5명(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의 흉상을 철거하겠다는 국방부 방침과 관련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국방장관 자리에서 퇴진하는 것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회장은 이날 공개서한을 내어 “민족적 양심을 저버린 귀하는 어느 나라 국방장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 회장은 일제강점기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한 우당 이회영 선생 손자이고, 육사 16기(대학 56학번) 출신이다. 이종섭 장관은 육사 40기로 이 회장의 24년 후배다.
이 회장은 “육사에 흉상으로 모신 다섯 분은 우리 독립전쟁의 영웅들”이라며 “귀하가 표현한 대로 ‘국난극복의 역사로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분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광복군 참모장이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초대 국무총리·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범석 장군을 거론하며 “귀하가 국방부 장관이라고 하면서 초대 국방부 장관을 멸시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가 홍범도장군기념사업을 처음 시작했다. 홍범도 장군에 대해 귀하의 무지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 자세하게 설명하겠다”며 홍 장군이 무장투쟁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편의상 소련 공산당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홍 장군 유해 봉환이 북한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하다 2021년 어렵게 성사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홍범도 장군을 새삼스럽게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흉상을 철거한다면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동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조부인 이회영 선생 흉상과 관련해선 “나 개인의 사정을 귀하에게 의존하고 싶지 않다”며 “귀하가 생각한 대로 귀찮은 존재로 남기고 싶지는 않다. 정 필요가 없으면 흉상을 파손하여 없애주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백선엽 장군이 한국전쟁에서 쌓은 공훈은 평가절하하지 않고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립영웅 다섯 분의 흉상을 없애고 그 자리에 백선엽 장군이나 그런 류의 장군의 흉상으로 대체한다면 우리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육사 생도에 대한) 교육적인 입장에서 보면 백선엽 장군은 당초 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애국적인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일제에 충성하는 길도 마다하지 않고 선택한 것”이고 “운좋게 민족해방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기회를 틈 타 슬쩍 행로를 바꾸고 무공도 세웠다”고 말했다. 이어 “당신이 철거한다는 다섯 분의 영웅은 일신의 영달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라 찾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시작하였다. 두 가지 종류의 길이며, 급수 자체가 다르고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나라 찾기 위해 생명을 걸고 투쟁하신 분들은 홀대하면서 운 좋은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는 이런 불합리한 현상을 그대로 두고 귀하가 반역사적인 결정을 한다면 나와 광복회는 좌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장관의 사퇴를 촉구한 이 회장은 “귀하의 최종 결정을 기다린다”는 말로 공개서한을 마무리했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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