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1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제막한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표지석.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육군 제공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관련 이력을 문제 삼아 흉상 철거를 추진하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두차례 받은 독립영웅마저 이념 잣대를 들이대 배제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반역사적 행태가 통탄스럽다.
국방부는 지난 26일 언론 공지를 통해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여러 논란이 있는 분을 육사에서, 특히 생도 교육의 상징적인 건물의 중앙현관에서 기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냈다. 현재 육사 내 충무관 중앙현관 앞에는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 가운데 홍범도 장군을 특정한 것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을 치우기 위해 나머지 4명의 흉상까지 철거 대상에 올린 셈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지난 2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공산세력과 맞서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거기서부터 (논의가)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 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의 상징적 인물이다. 1920년 봉오동 전투에 이어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이기도 하다.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지만, 당시엔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공산주의·사회주의를 받아들인 독립운동가가 상당수 있었다. 광복 2년 전인 1943년 사망해 북한 정권 수립과도 관련이 없다. 1962년 박정희 정부가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고, 2021년 문재인 정부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는 등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홍 장군을 독립영웅으로 인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방부 논리대로라면 국방부 청사 앞 홍범도 장군 흉상도 철거돼야 하고, 박근혜 정부 시절 진수한 잠수함 ‘홍범도함’(1800톤급) 역시 이름을 바꿔야 한다.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나.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뉴라이트 사관에 입각해 항일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폄하하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번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움직임 역시 학문적 연구와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역사마저 제멋대로 재단하려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광복회가 “일제가 민족정기를 들어내려 했던 것과 다름없다”며 반발하고, 홍준표 대구시장도 “항일 독립전쟁 영웅에 공산주의 망령을 씌워 퇴출시키려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등 역풍도 거세다. 편협한 이념 잣대로 국군의 정통성과 독립투쟁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