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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한반도 떠도는 ‘선빵의 미신’…전쟁은 멀리 있지 않다

등록 2023-04-15 10:00수정 2023-07-18 15:07

[한겨레S] 서재정의 한반도, 한세상
한미는 상륙훈련, 일본은 국방비 증액…북 핵반격 태세
북한이 태양절(김일성 생일) 111주년을 이틀 앞두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지난 13일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서 고공정찰기 U-2S가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태양절(김일성 생일) 111주년을 이틀 앞두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지난 13일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서 고공정찰기 U-2S가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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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1891년부터 1905년까지 독일제국의 참모장으로 복무했던 알프레트 폰 슐리펜 백작이 한 발언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와 프랑스라는 잠재적 적을 동서에 둔 독일의 지리적 불안감이 출발점이었다. 독일군의 기동력과 전투력에 대한 신뢰가 뒷배가 됐다. 먼저 프랑스를 공격해서 제압한 후 바로 군사력을 돌려 러시아를 공격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구상(슐리펜 계획)으로 이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의 책임을 슐리펜에게만 뒤집어씌울 수는 없지만 슐리펜 계획은 전 유럽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도화선이었고 독일 패망의 일차적 원인이었다.

일, 2027년 국방예산 2022년의 2배

한반도가 위태롭다. 동북아시아가 아슬아슬하다. 공격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 ‘선빵의 미신’이 이 지역을 횡행하고 있다. 이 지역 모든 국가가 공세적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모든 국가가 공세적 군사력을 개발·배치하고 있다. 이제는 이 모든 국가가 선제타격 능력을 공개적으로 연습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마치 1차 세계대전 직전의 발칸반도와 유럽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작은 사건 하나가, 사소한 실수 하나가 불씨에 불을 붙일 수 있다. 한반도라는 화약고에.

한반도의 오래된 군비 경쟁이 이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남북한이 모두 방어를 말하면서 선제타격을 추구하고 있다. 일본은 ‘반격 능력’이라고 쓰고 ‘적기지 타격’이라고 읽고 있다. 미국은 오래된 확장 억제를 개편하여 “(북한) 정권의 종말”을 지향하는 한·미·일 통합 억제력으로 확장하고 있다. 중국은 군사력을 현대화하고 핵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태평양에서 군사 활동을 늘리고 있다.

선제타격은 국가안보전략이나 작전계획상의 개념이 더 이상 아니다. 각국의 무기체계가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일본을 보라. 기시다 정부는 지난 연말 소위 ‘안보 3문서’를 채택해 ‘반격 능력’을 새로운 전략 목표로 채택했다. 2023년부터 국방비를 매년 크게 늘려 2027년에는 2022년의 2배인 10조엔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방비를 과감하게 증액하는 핵심 목적은 적국의 기지를 공격하기 위한 타격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아베 정부가 2015년 ‘집단자위권 법’을 채택해 자위대가 국외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줬다면 기시다 정부는 이 문을 실제로 박차고 나갈 군사력 확보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즉시 미국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구입하는 한편 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12식 미사일을 개량할 계획이다. 12식 미사일은 사거리가 200㎞인 방어용 무기체계다. 적군 함정이 일본 근해에 접근해 공격을 시도하면 육지에서 이 미사일을 발사해 일본을 방어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 미사일을 개량해 사거리를 1500㎞까지 늘리려고 한다. 이 정도의 사거리면 일본 본토에서 발사해도 북한 전 지역을 타격할 수 있고, 베이징과 상하이를 비롯해 중국 해안을 모두 사정거리 안에 넣게 된다. 12식 미사일 개량 계획에는 이를 군함이나 전투기에서 발사할 수 있는 모델의 개발도 포함되어 있다. 이 계획이 완료된다면 중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 될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건넬 미국의 청구서

이미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 △압도적 대응이라는 3종 세트 군사력을 추구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이도 모자라서 상대가 미사일을 쏘기 전에 발사체계를 교란시키겠다는 ‘발사의 왼쪽’을 운운하고 있다. 킬체인은 이미 선제타격 능력을 지칭한다. 북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킬’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으니 북이 발사 시도도 하기 전에 사이버 및 전자전을 구사해서 북의 군사력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 북이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미사일방어체계로 요격하고 압도적으로 보복할 군사 능력을 추구하고 있다. 유사시 북의 지도부를 제거하기 위한 ‘참수작전’을 작성하고 이 임무를 특수임무여단에 맡겼다. 정밀한 타격을 위한 자폭형 무인기를 운영하고 있고, 지하 깊숙한 기지를 타격하기 위한 ‘고위력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21세기 들어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선제공격을 시연했다.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미사일방어체계와 극초음속미사일 등 선제공격 능력을 향상시키는 무기체계를 계속 개발·생산하고 있다. 조 바이든은 대통령 취임 후 핵무기 선제타격이 가능하다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급전환했다. ‘승수효과를 유발하는 동맹국이 미국의 독특한 자산’이라고 공언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의도도 이제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선제공격에 사용했던 토마호크 미사일을 일본에 판매하고 기시다 정부의 국방력 강화를 적극 밀어주고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오므라이스보다는 조금 더 ‘있어 보이는’ 환대를 하고 청구서를 내밀지 않을까. 대북·대중 최전선에 윤석열 정부가 ‘총대’를 메고 나서서 한·미·일 군사협력을 완성하라고.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은 중국의 팽창에 맞서도록 국제사회를 집결시킬 수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그렇게 하도록 할 것”이라고 이미 속내를 드러낸 바 있다.

지난 3월은 잔인한 봄이었다. 한반도는 선제타격의 시연장이 됐다. 3월13일 한-미 연합연습 ‘자유의 방패’가 시작됐다. 북은 그 하루 전인 12일 함경남도 신포 일대 잠수함에서 전략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이어서 ‘핵반격가상종합훈련’을 포함한 일련의 훈련이 실시됐다. 북의 선제타격 훈련이었다. 사실 한국과 미국의 특수전 부대는 북이 선제타격 훈련에 들어가기도 전인 2월 초부터 ‘참수작전’을 포함한 ‘티크 나이프’ 훈련을 실시했다.

3월20일부터는 ‘적 지역’ 상륙을 위한 쌍룡훈련이 시작됐다. 북은 하루 전 대응을 시작했다. 19일 사일로(지하에 구축한 원통형 시설)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해 핵탄두 공중 폭발을 연습했다. 28일 미 항공모함 니미츠호가 부산에 입항해 상륙훈련이 정점을 찍었지만, 북은 25일 ‘해일-1’이라는 핵무인수중공격정을 발사해 27일에 수중 폭파하는 방식으로 니미츠호 ‘환영식’을 거행했다. 한-미 연합훈련 기간에 북이 선제타격 훈련을 실시한 것이 전례 없는 일이라면, 한·미·일은 전례 없는 통합훈련을 보여줬다. 3국 군사협력은 이제 현실이 됐고 모두가 선제타격을 연습하는 상황이 됐다. 이제는 전쟁 자체를 우려해야 하지 않는가.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방문학자로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에 머물고 있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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