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2월26~28일 진행된 제2차 초급당비서대회 도중 오일정 노동당 중앙위 군정지도부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선중앙텔레비전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과 미국·유럽연합(EU) 등의 대러 제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1일 <노동신문>이 공개한 김 총비서의 2차 초급당비서대회 연설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의 속내를 유추해볼 실마리가 없지는 않다.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공정계획에 따른 중요시험”이라 주장한 2월27일의 탄도미사일 발사,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하게 된 근원은 미국과 서방의 패권주의정책”이라는 외무성 대변인의 2월28일 <조선중앙통신> 회견이 그것이다.
김 총비서의 속내는 적어도 세 지점에서 짚어볼 수 있다.
첫째, ‘핵 집착’이 더 심해질 위험이 크다. 핵개발을 포기한 뒤 권력·목숨을 잃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리비아의 무아마르 가다피에 이어, ‘옛소련 핵무기’를 돌려주고 ‘주권·영토 보장’을 문서(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로 받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무력에 유린되는 상황은 김 총비서한테 반면교사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핵없는 한반도’로 가는 문이 완전히 닫혔다고 절망할 이유는 없다. 2016년 노동당 7차 대회에서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항구적 전략노선”이라 공언하고도 2018·2019년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을 협상탁자에 올린 선례가 있다. 한·미가 북의 “안전과 발전”을 담보할 방안을 내놓으면 상황은 다시 달라질 수 있다.
둘째, ‘미·중·러 3각 전략 게임’(미-중 패권·전략경쟁, 미-러 대치, 중·러 협력)를 북·중·러 북방 3각 협력체제의 복원 기회로 여길 수 있다. 자주와 주권을 절대가치로 신성시해온 북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엔 모르쇠하며 “오늘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강권과 전횡”이라 강변하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중·러 협력체제는 냉전기 북한 경제·안보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셋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도발에 조 바이드 미국 대통령이 어떤 전략과 강도로 대응하는지 김 총비서는 티끌도 놓치지 않고 관찰·분석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의 대응 전략’은 푸틴뿐 아니라 김 총비서한테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미사일을 여덟 차례 쏘며 ‘모라토리엄’(핵시험·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유예) 파기 경계선으로 다가서는 김 총비서의 행보는 대화와 협상보다는 전략적 군사행동을 앞세운 대미 압박 쪽으로 기운 듯하다. 김 총비서는 1월19일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8기6차 회의에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위협이 더이상 묵과할 수 없는 위험계선에 이르렀다”고 선언한 터다.
긴 겨울 끝 한반도에 아지랑이와 봄바람이 아닌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하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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