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3월26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서해 수호의 날’ 기념사에서 “2033년 무렵 모습을 드러낼 3만 톤급 경항공모함은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조선 기술로 건조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국방부가 내년도 국방예산을 올해보다 4.5% 늘어난 55조2277억원으로 편성했다. 이로서, 문재인 정부는 임기 5년 동안 국방비를 36.9%나 증액하는 등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군비 증강에 적극 나선 정부로 기록되게 됐다.
국방부는 31일 보도 자료를 내어 “정부는 2022년 국방예산을 2021년 본예산 대비 4.5% 늘여 9월3일 국회에 제출한다. 정부 안대로 최종 반영되면 현 정부 국방예산 증가율은 평균 6.5%가 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를 시작한 2017년 국방 예산이 40조3347억원이었음을 생각하면 임기 동안 무려 3분의 1 넘게 예산을 늘인 것이다. 한국의 국방비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64%로 패권국인 미국(3.19%·이하 지난해 기준)보다는 낮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주요국인 영국(2.0%)·프랑스(1.93%)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한국이 군사대국화를 우려하는 일본은 0.94%, 최근 급격히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는 중국은 1.28%를 기록하고 있다.
구체적인 항목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서해 수호의 날 기념사에서 “2033년 무렵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밝힌 3만t급 경항모 건조를 위해 내년에 처음으로 착수 예산 72억원이 배정됐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올해 예산에 기본설계비 101억원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사업타당성 조사 등 절차를 밟지 않았다”며 이 돈을 전액 삭감한 바 있다. 그밖에 지난 4월 시제기가 공개된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에 4210억원, 지난 13일 진수된 한국 최초의 3000t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장보고-III 배치1)보다 성능이 더 개선된 차세대 잠수함(장보고-III 배치2) 사업 등에 4210억원이 편성됐다. 또, 군 정찰위성, 패트리어트 성능 개량, 탄도탄조기경보레이더-II 등 핵·대량살상무기(WMD) 위협 대응에 4조6650억원을 배정했다.
장병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예산도 대폭 증액됐다. 지난 봄 ‘부실 급식’ 논란을 빚은 장병들의 식사와 관련해선 1인당 급식비를 하루 8790원에서 1만1000원으로 25% 인상하고, 민간 조리원도 910명 증원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에 하나인 ‘병사들의 봉급 현실화’와 관련해선 내년도 병장 봉급을 2017년 최저 임금의 50% 수준인 67만6100원(현재 60만8500원)으로 올린다. 또 병사들이 제대 이후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본금리(5%)에 가산금리 1%를 국가가 지원하고 전역할 때 찾는 금액의 3분의 1을 국가가 추가 지원하는 ‘병 내일준비지원 사업’을 신설해 새로 2165억원을 배정했다. 이 사업에 따라 18개월 복무하면서 매달 40만원을 납입한 병사는 제대할 때 1천만원의 목돈을 챙겨 갈 수 있다.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2022년 1월2일 납입분’부터다. 예비군에 대한 보상금도 현재 4만7000원에서 6만2000원으로 31.9% 오른다.
국방부는 내년도 국방예산과 관련해 “예산이 차질 없이 편성되어 ‘한반도 평화를 뒷받침하는 강군 건설, 국민으로부터 신뢰 받는 병영문화 조성’의 밑거름이 되도록 국회 등 관계 기관들과 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5년 간 국방예산 추이를 보면, 적잖은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 북한과 “단계적 군축을 실현”하기로 약속하고 9·19 평양선언에선 이를 구체화한 군사분야 합의란 성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해 말 ‘전시작전권 전환’을 위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 2019년 국방비를 전년보다 8.2%, 이듬해 예산도 7.4%나 올려 북한의 큰 반발을 불렀다.
특히, 2019년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민감한 상황 속에서 8월 ‘2020~2024년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5년 동안 무려 290조5000억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기로 발표해 북한의 큰 반발을 불렀다. 그 여파 등으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역시 2019년 말로 접어들며 힘을 잃고 좌초하기에 이른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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