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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대변인…얼굴도 이름도 없는 ‘대통령의 입’은 이제 그만

등록 2021-04-23 19:20수정 2021-04-24 02:30

[친절한 기자들]
박경미 청와대 신임 대변인(왼쪽)이 18일 정만호 국민소통수석의 소개를 받으며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으로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박경미 청와대 신임 대변인(왼쪽)이 18일 정만호 국민소통수석의 소개를 받으며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으로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완 ㅣ 정치팀 기자

“언론인 여러분과 함께한 시간, 브리핑을 마치고 여러분을 뒤로한 채 춘추관의 저 문으로 사라질 때의 느낌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정치부에서 청와대를 담당하고 있는 이완입니다. 방금 소개한 이임 인사는 지난 18일 강민석 전 대변인이 청와대를 떠나며 한 말입니다. 기모란 방역기획관 임명 논란 때문에 가렸지만, 대변인 교체는 청와대를 담당하는 기자들 사이에서 단연 화제였습니다. 그가 이번에 바뀌리라 예상한 기자는 인사 발표 전날까지도 별로 없었습니다. 대변인 인사에 놀란 참에 그동안 경험했던 ‘대변인’에 대해 이야기해드릴까 합니다.

기자들과 지지고 볶는 게 일상인 청와대 대변인의 일은 사실 격무에 가깝습니다. 새벽에 출근해 하루종일 대통령 행사와 회의, 기자들 취재 응대로 정신없이 보내야 합니다. 대통령의 말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회의에 들어가 긴장을 늦출 수도 없습니다. 언론인 출신 전 대변인은 “청와대 보고서 한장 한장이 모두 기삿감이었다”고 할 만큼 읽어볼 것도 많습니다. 새벽 석간신문 기자들의 전화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대변인의 휴대전화는 온종일 울리기 일쑤입니다. 어떻게든 ‘입’을 열게 하려는 기자들과 신경전도 치열하죠. 저 역시 사실 확인을 위해 늦은 밤 전화를 할 때면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이 목소리에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대변인은 때론 대통령을 향해 공격해오는 야당과도 싸워야 합니다. 대통령은 자신 대신 야당과 근성있게 싸워줄 ‘입’을 좋아합니다.

청와대만 그런 건 아닌가 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경우 자신이 직접 트위터를 통해서 말을 하도 많이 하는 바람에 대변인의 역할이 가려졌지만 백악관 대변인의 업무도 많다고 합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마이크 매커리는 “미래의 대통령에겐 두 명의 대변인이 필요할 것이다. 낮의 대변인과 밤의 대변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24시간 뉴스전문 방송이 나오고 실시간 기사를 쏘는 인터넷언론 등이 등장한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매체가 더 많아진 지금은 더 바쁘지 않을까요.

정부 부처에도 대변인이 있습니다. 이들도 1년 정도 하고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변인으로서 전문성이 있다기보다는 보통 국장급 공무원들이 인사 이동 때 돌아가며 맡는 보직 개념이죠. 고위 관료를 꿈꾸는 이들은 이때 기자들과 친분을 쌓으려 노력합니다. 기자들이 인사철마다 쓰는 하마평 기사엔 은연중 대변인을 했던 공무원에 대한 호불호가 담기기 마련입니다. 특히 부처를 오래 출입한 기자들은 거쳐간 대변인들의 능력과 성품을 꿰고 있기 때문에 가끔씩 이런 평가가 대변인의 이후 경로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반면 기업의 대변인 격인 홍보팀 임원들은 대개 잘 바뀌지 않습니다. 전문성도 있고, 이들이 그 자리에 오기까지 만든 기자들과의 관계는 단시간에 쉽게 쌓아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관행상 이들이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만나 돌린 술잔 수와 비례하기도 하죠. 특히 대기업 홍보 임원은 업무 특성상 기업과 총수 일가의 속사정까지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 자주 바꿀 수도 없는 게 사실입니다. 터줏대감인 기업 대변인들은 회사를 거쳐간 출입기자들의 이름을 줄줄 꿰고 평가도 합니다.

후임 청와대 대변인으론 초선 의원 출신 박경미 전 청와대 교육비서관이 왔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민정 의원에 이어 두번째 여성 대변인입니다. 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발탁했다는 부정적인 우려도 있습니다.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선 ‘익명’에 숨지 않는 능력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이번 정부에서 박수현-김의겸-고민정-강민석 등 앞서 지나간 대변인들은 모두 관행이라는 이유로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지 않고 답변했습니다. 청와대 관련 기사가 온통 익명의 관계자로 도배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명 브리핑 뒤 동일한 인물이 ‘청와대 관계자’로 기사에 등장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집니다. 그렇다 보니 국민들 역시 대변인이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알기도 힘듭니다.

청와대 대변인은 그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국민과 언론과 소통하는 모습 자체가 문재인 정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취임 초기 압도적이었던 대통령 지지율은 30%대로 내려갔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문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만큼의 ‘투명한 소통’이 되지 않았다는 실망도 한 이유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청와대 대변인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백악관의 경우 한시간씩 현안 브리핑을 하면서도 대변인이 익명의 뒤에 숨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입’이 기자들만 알고 국민은 모르는 익명으로 계속 있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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