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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청원, ‘떼법’ 아닌 성평등·인권 등 ‘사회권 보장’ 요구 높았다

등록 2018-05-09 09:48수정 2018-05-09 10:44

청와대 국민청원 빅데이터 분석

2만명 이상 동의한 158건 중 45%
‘인간다운 생활’할 권리에 관심

제도개선 통한 공적 문제 해결 요구 52.5%
사적 분노표출·하소연은 12%에 그쳐

“국민이 원하는 세상 보여주는 실험”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드러난 한국 국민들의 가장 절실한 요구는 인권, 성평등, 복지, 노동 등 ‘사회권적 기본권’의 실질적 보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8일 여론조사 업체 오피니언라이브,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와 함께 국민청원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6월 지방선거에서도 관련 의제가 ’숨은 민심’을 움직일 가능성이 엿보인다.

국민청원 게시판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해 8월17일 문을 연 뒤 하루 평균 680여건의 청원이 올라오는 등 ‘민심의 용광로’가 됐다. 하지만 일부에선 ‘떼법 창구’, ‘대통령 만능주의’, 삼권분립 원칙 침해 등의 비판과 우려를 제기한다.

‘떼법 창구’ 아닌 ‘제도적 해결 통로’ 이에 지난달 20일까지 등록된 청원 16만8554건 가운데 2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158건을 분석해보니, 절반 이상인 52.5%(83건)가 법·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내용은 사회권적 기본권 보장과 관련된 것으로, 59%인 49건이었다. 신진욱 교수는 “복지·노동 등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해달라는 제도 개선 요구가 가장 많다는 것은, 지금 현재 많은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또 법·제도 개선 요구가 높은 것은, 청원 제도가 왕조 시대의 신문고처럼 ‘군주’ 대통령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수단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문제를 보편적이고 타당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해결을 모색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청원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유형을 좀더 살펴보면, 국민청원이 사적인 어려움을 공적인 의제로 만들고 이를 제도적으로 풀어보려는 통로로 기능한다는 점이 더 분명해진다. 제도 개선 요구 다음으로 많은 청원 유형은 진상 규명 요구(23건, 14.6%)와 처벌 요구(22건, 13.9%)로, 공적인 문제 해결 요구가 많았다. 사적 감정을 드러내는 분노 표출(10건, 6.3%)과 호소·하소연(8건, 5.1%)의 비중은 합쳐도 11.4%에 그쳤다. 문제를 겪은 개인 당사자가 직접 올린 청원 29건만 봐도 제도 개선 요구(22건)와 진상 규명 요구(2건)가 82.7%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아파트 단지 안의 횡단보도에서 난 교통사고 피해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로교통법의 문제를 지적하며 법 개정을 요구한다든지, 취업준비생 딸이 있다는 어머니가 대기업·공기업의 합격자 성별 비율 공개 등 여성 차별 철폐 방안을 제안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민심의 밑바탕엔 ‘사회권적 기본권’ 강화 요구 청원이 내용적으로 어떤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느냐에 따라 그 세부주제를 16가지로 분류해보면, 갑질이나 세월호 진상 규명 등 사회일반 분야의 글이 24건(15.2%)으로 가장 많았다. 인권(22건, 13.9%), 성폭력·성평등(21건, 13.3%), 정치(20건, 12.7%) 분야의 청원이 그와 엇비슷했다. 반려동물(8건, 5.1%)과 언론(7건, 4.4%) 관련 청원도 눈에 띄었다. 시야를 좀 넓혀 보면, 인권, 성폭력·성평등, 노동, 복지, 환경, 안전, 교육 등 사회권적 기본권과 관련된 청원이 45%(71건)로 절반 가까이 됐다. 국민의 관심이 그만큼 사회권적 기본권 보장에 집중돼 있다는 뜻이다.

이는 단어 빈도 분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분석 대상 청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여성(272건)이었고, 정부(165건), 아이(138건), 국가(119건), 사회(109건), 대통령(102) 등이 뒤를 이었다. 국민들이 여성, 아이 등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언급을 가장 많이 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할 책임자로 정부, 국가 등을 꼽았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들 가운데 100개를 추려 동시출현 빈도를 분석한 뒤 상관관계가 높은 것들끼리 묶은 연결망 분석 결과를 봐도 마찬가지다. 여성이라는 단어와 함께 성폭력, 차별, 인권, 노동, 임금, 고용, 경제, 취업 등의 단어가 자주 출현하는데, 이는 “젠더, 성적 주체성, 복지, 소득, 고용 등을 ‘보편적 기본권’으로 함께 사고하는 경향이 그만큼 확산되었다는 뜻”이라는 게 신진욱 교수의 풀이다. 가령 ‘남녀 동일가치 노동에 동일임금 지불과 임금 공개 의무화’를 요구한 청원은 성평등과 정당한 임금이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징병, 의무, 무고죄 등의 단어도 여성과 함께 자주 출현한다는 점이다. 미투 운동이 폭발적으로 전개되면서 관련 범죄 처벌과 성차별 철폐 요구가 높아지자, 이것이 역차별이라며 반발하는 기류가 생긴 결과로 보인다. ‘여성의 군 복무 의무화’ 청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가와 정부라는 단어는 헌법, 발달장애, 미세먼지, 병원, 세월호, 아이 등 청원 이슈 전반에 걸쳐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전, 복지, 환경 등 기본권 보장의 책임을 국가와 정부에 요구한다는 방증이다. 그중에서도 국가와 정부는 블록체인, 거래소, 가상화폐, 금융, 시장 등의 단어와 더 가깝게 묶였다. 김찬우 오피니언 라이브 빅데이터센터장은 “국가와 정부가 금융, 규제 등의 이슈와 같은 그룹으로 묶인 것은 국가경제 개선을 위한 정책적 요구가 강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폭발하는 요구의 제도적 수용 필요 단어 연결망 분석에서 언론이 정당, 자유한국당 등과 함께 적폐로 인식된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연합뉴스 국고보조금 폐지’ 청원은 장충기 전 삼성그룹 사장에게 <연합뉴스> 간부가 보낸 부적절한 문자메시지가 공개되자 이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단 해체’ 청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취재하러 갔던 한국 기자가 중국 경호인력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올라온 것이다. 청원의 계기가 무엇이든 언론에 ‘무조건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여론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조사가 핵심 단어로 등장하는 그룹엔 동물, 법, 검찰, 피해, 처벌, 세월호 등의 단어가 같이 들어가 있다. ‘동물학대 처벌’이나 ‘세월호 관련 조여옥 대위 징계’ 청원처럼 사건·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처벌해달라는 요구를 검찰에 한 결과다. 간호사, 병원, 자살, 자격 등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태움 문화’가 폭로되면서 이들의 처우 개선 청원이 이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이, 학교폭력, 학교 등이 속한 그룹에선 경찰이 문제 해결의 주체로 거론됐다.

신진욱 교수는 “국민청원은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바라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실험”이라며 “기존의 민원 제도와 구분되는 제도 개선 국민제안 채널로 실질화하면 좋겠다. 청와대뿐만 아니라 행정부, 입법부 등 더 넓은 차원으로 확대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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