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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청와대는 왜 10월23일 최초 보고시간을 바꿨나?

등록 2017-10-12 20:27수정 2017-10-14 12:47

세월호 참사 6개월 지나 뒤늦게
국가안보실 서면보고시간 30분 늦춰
7시간 행적 관련 특조위 조사 및 수사·재판 앞두고
‘물증’ 마련 위한 ‘일제정비’ 의혹
2014년 10월29일 오전 국회 본관 앞. 흰색 블라우스를 차려입은 박근혜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국회로 들어섰다. 입구 한쪽에 ‘봉쇄’된 세월호 참사 유가족 20여명이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 박 대통령은 돌아보지 않았다. 당시 의원 신분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본관으로 입장하다 3분 정도 머물며 유가족을 지켜봤다. ‘박 대통령이 그냥 지나쳤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쉽네요. 그냥 손 한 번 잡아주시면 국민들이 참 좋아할 것 같은데요”라고 답했다. 2시간 뒤 2015년도 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박 대통령은 역시 환하게 웃으며 국회 본관을 나섰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유가족의 외침은 외면했다. 유가족들은 서서 울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7년 10월12일,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세월호 침몰 최초 보고 시점을 오전 9시30분에서 오전 10시로 30분 늦춘 수정보고서를 작성했다”며, 이는 박 전 대통령의 참사 당일 행적을 숨기기 위한 의도적 조작 정황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밝힌 조작 시기는 2014년 10월23일, 박 전 대통령의 국회 방문 1주일 전이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박 대통령이 참사 당일 오전 10시 첫 보고를 받은 뒤 “단 1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도 사고 당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즉각적인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그해 5월21일 세월호 참사 관련 국회 현안질문에서 박 대통령이 사고를 최초 인지한 시점을 “오전 10시 전후”라고 밝혔다. 하지만 첫 방송 보도( 오전 9시19분)가 나간 뒤 41분이 지나서야 대통령에게 첫 보고가 이뤄졌다는 해명을 두고 대통령 행적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해 7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첫 서면 보고는 오전 10시에 이뤄졌고, 10시15분 유선보고가 있었다”면서도 이후 7시간 동안 대면보고가 없었으며 박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도 없었다고 답하며 논란에 불을 질렀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느냐’는 질문에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루 뒤 감사원은 세월호 침몰사고 대응실태 감사결과를 발표하며 정작 청와대 관련 내용은 빼버렸다. 7월10일 세월호국정조사특위에 출석한 김기춘 실장은 “국가안보실은 오전 10시에 사고개요 및 현장상황을 대통령께 보고 드렸다”고 거듭 주장했다.

청와대의 ‘물증’ 없는 “오전 10시 첫 보고” 잡아떼기에 대통령의 세월호 당일 7시간 행적을 공개하라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요구는 더욱 커졌다. 여기에 일본 <산케이신문>이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관련한 악의적 칼럼을 쓰면서 논란은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했다. 특히 그해 국정감사와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설치를 담은 세월호특별법이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박 대통령의 구체적 행적을 더 이상 감추기는 어려운 상황에 몰리기 시작했다. 김기춘 실장의 “모른다” 발언 이후 한 달여 뒤인 8월13일, 세월호 국정조사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친박계 조원진 의원이 청와대를 대신해 “오전 10시 안보실 서면 1보고(안보실장→VIP)” 등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시간대별 행적을 일부 공개했지만, 이 역시 ‘물증 없는 오전 10시 첫 보고’ 주장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16일 오후 5시15분께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 “학생들이 다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드냐”고 묻고 있다.  <YTN> 화면 갈무리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16일 오후 5시15분께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 “학생들이 다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드냐”고 묻고 있다. 화면 갈무리
이런 상황에서 여론에 떠밀린 새누리당은 세월호특조위 구성을 담은 세월호특별법을 10월 말까지 처리하기로 야당과 합의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세월호특조위의 조사 권한과 기간 등을 축소하는데 성공했지만, 대통령 당일 행적과 관련한 조사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것으로 보인다. 마침 검찰은 10월8일 7시간 행적 의혹을 제기한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을 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불구속 기소했다. 이어 야당은 10월 국정감사가 시작되자 “참사 당일 청와대 내부 대응 절차에 대한 구체적 해명”, “감사원 부실 감사에 대한 재감사”를 거세게 요구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국회 본관 앞 농성이 시작됐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날짜도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월23일, 어쩐 일인지 박근혜 청와대의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가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보고한 세월호 침몰 최초 보고시간이 오전 9시30분에서 오전 10시로 바뀐다. 이어 닷새 뒤인 10월28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친박계 김재원 의원이 ‘참사 당일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지시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혀달라’고 질의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오전 10시 최초보고에 이어 7시간 동안 19차례 보고 받고 7차례 지시를 했다”며 시간대별 구체적 행적을 밝혔다. 대통령의 행적은 사생활이자 비밀이라던 그간 태도와는 달랐다.

앞서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작성한 2014년 10월28일치 업무수첩을 보면 “7시간 전면 복원-정무→김재원 의원 : 보도자료 배포, 메이저언론 상대 설득, 홍보”라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가 적혀 있다. 김재원 의원은 청와대로부터 받은 서면답변자료를 공개하며 “답변 자료에 따르면 대통령은 오전 10시 최초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 이른바 7시간 의혹은 근거가 없는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 행위로, 더 이상 대통령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청와대 비서실과 새누리당이 ‘사전 정지작업’을 모두 마친 바로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국회를 방문한다.

문재인 청와대의 발표처럼 박 전 대통령의 최초 서면보고 시점을 30분 늦추는 조작이 이뤄졌다면, 이는 기존 “오전 10시 첫 보고” 발표에 맞춰 관련 물증들을 조작하는 ‘일제 정비’였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세월호특조위 조사, 국정감사, 관련 수사·재판 등에 대비하기 위한 성격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세월호 참사 6개월이 지난 시점에 보고서에 적힌 보고시간을 뒤늦게 수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실이 드러나며 탄핵 위기에 놓인 지난해 11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보·괴담 바로잡기’ 코너를 만들어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은 어디서 뭘 했는가? -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여기서도 첫 보고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이어 이듬해 1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때도 “오전 10시에야 관련 보고를 처음 받았다”는 답변서를 제출했지만, 재판부로부터 “오전 10시 전에 (침몰을) 확인하지 않았는지 밝혀주기 바란다”며 퇴짜를 맞았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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