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현지시각)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공동 언론발표를 한 뒤 악수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일 정상회담에서 ‘북핵 불용’ 원칙을 재확인했지만 향후 대응과 해법을 놓고는 팽팽히 맞섰다.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 강력한 대북 제재에 러시아의 협조”를 요구하는 문 대통령에게 푸틴 대통령이 “북핵 문제는 제재와 압박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한 모양새다. 미국이 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신규 대북제재 결의안을 표결에 부치겠다고 벼르는 가운데 러시아가 완강한 입장을 밝힌 것이어서, 원유공급 중단 등을 포함한 고강도 대북 제재안이 조기에 통과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2시간40여분 동안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열었다. 정상회담 뒤 이어진 ‘공동 언론발표’에서 문 대통령은 “(두 정상이) 북한 6차 핵실험을 강력히 규탄하며 한반도와 극동의 무한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북한 핵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북한의 핵·미사일이 잘못된 길이고 한반도의 긴장 완화가 시급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면서도 “한반도 사태를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감정에 휩싸여 북한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세우면 안 된다”며 “냉정하게 긴장 고조 조치를 피해야 한다”고 했다. 또 “정치외교적 해법 없이는 현재 상황을 해결하기 어렵다”고도 밝혔다. 북핵 해법에 대해 “구체적인 구상은 러시아와 중국이 만든 북핵 해법 로드맵에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중국과 러시아는 7월 초 ‘양국 외교부 연합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대규모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제안하는 ‘쌍중단’과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을 뜻하는 ‘쌍궤병행’을 기초로 단계적인 관계 정상화 방안을 담은 ‘공동이니셔티브’를 제안한 바 있다.
이후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한 정상회담의 대화 내용에도 두 정상의 신경전은 고스란히 묻어났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을 멈출 수 있는 지도자가 푸틴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인 만큼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멈추도록 두 지도자가 강력한 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윤 수석은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특히 북한을 대화의 길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안보리 제재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며 “이번에는 적어도 북에 대한 원유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부득이한 만큼 러시아도 적극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1년에 4만t 정도로 대북 석유 수출량이 미미하다”며 “북한은 아무리 압박을 해도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원유 중단이 북한의 병원 등 민간에 대한 피해를 입힐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문 대통령이 거듭 설득에 나서자 푸틴 대통령은 “한·러가 같은 입장에 있다고 본다. 어떻게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고 올지에 대해 더욱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답했다고 윤 수석이 전했다.
북핵 해법을 둘러싼 두 정상의 ‘신경전’은 북한의 6차 핵실험 뒤 이뤄진 전화 통화에서 예견된 것이었다. 당시에도 문 대통령은 ‘강력한 대북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푸틴 대통령은 ‘외교적 해결’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러시아가 향후 유엔 안보리의 신규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교부에서는 ‘미국의 강경 기조가 자칫 군사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러시아가 한·미에 현실적인 선택을 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울러 자국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북한의 해외 노동자 송출 금지’ 문제를 놓고 러시아가 일정 기간 동안 제재안의 수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날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서 보듯, 북핵 문제를 두고 한·미·일 대 중·러의 대결적 구도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백악관은 이날도 “지금은 북한과의 대화에 초점을 맞출 시점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다시 강조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지금은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공격적인 조처 시행을 검토하고 있다.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말했다. 또 “중국이나 러시아를 포함해 모두가 (북한)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대사는 미국기업연구소(AEI) 초청강연에서 “더 많은 제재를 가한다고 해서 북한의 행동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탄도미사일과 핵 개발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김보협 기자,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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