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앞줄 오른쪽 셋째)과 6월민주항쟁 유가족들이 10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6월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손을 잡고 ‘광야에 서’를 제창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우리가 도약할 미래는 조금씩 양보하고, 짐을 나누고, 격차를 줄여가는 사회적 대타협에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진정한 노사정 대타협을 위해 모든 경제주체의 참여를 당부드립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새 정부의 국정과제 전면에 내걸었다. 지난 10일 내놓은 6월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를 통해 “사회적 대타협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해내야 할 과제”라며 “대통령과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사회적 대타협’을 화두로 꺼내든 것은 “재난 수준에 이른 양극화”(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지난 5일 기자간담회)를 해결하는 첩경이 “경제주체들의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에 달려 있다는 평소 신념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양극화 해법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있고, 이를 위해선 재계·노동계·시민사회와 정부의 ‘대타협’이 선결돼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확고한 철학”이라며 “1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이런 철학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 설립’을 대선 일자리 공약의 첫머리에 배치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등이 기초한 이 공약은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의 역할을 “일자리 창출과 노사관계 재정립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의 모범 창출”에 두고 “양극화 해소와 근로빈곤층 보호를 위한 고용 복지,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의제로 다루도록 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 기구의 위상을 “대통령이 직접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체”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일자리위원회를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대화기구화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장관급이 위원장이던 기존의 ‘노사정위원회’보다 격이 높다.
이런 사회적 합의모델은 1998년 1월 대통령 자문기구로 출범한 제1기 노사정위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임기를 시작한 김대중 정부는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경제위기 극복을 목표로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양대 노총을 참여시켜 노사정위를 시작했지만, 1998년 2월 ‘건강보험 확대 및 전교조 합법화’와 ‘정리해고·파견근로제 도입’을 맞교환하는 첫 합의 뒤 파행을 거듭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사회적 합의기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문제는 지금의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는 ‘기업 대 노동’뿐 아니라, ‘대기업 대 중소기업’, ‘대기업 노조 대 중소기업 노조’,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과거와 같은 ‘일괄 합의’ 방식의 타협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의 노사정위보다는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일자리위원회’에 이런 사회적 합의기구의 기능을 맡길 것으로 보인다. 홍영표 의원은 “노사정위는 필요하지만, 더 크고 실효성 있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선 참여정부 시절 재계와 노동계, 시민사회, 종교계, 여성계 등이 두루 참여했던 ‘고령화·저출산 대책 연석회의’ 같은 새로운 기구가 필요하다”며 “큰 틀의 사회적 합의기구 기능은 일자리위가 맡고 노사정위는 노사 현안에 집중하는 ‘투트랙’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지난달 1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일자리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보면, 문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아 범정부 차원의 일자리 정책을 총괄 지휘하고, 부위원장과 당연직·민간위촉 위원 30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일자리 정책의 기획과 발굴, 부처 간 정책 조정 등을 논의하게 된다. 당연직 위원에는 관계부처 및 국책연구소장과 대통령비서실 일자리수석이, 민간위원은 노사단체, 민간전문가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청년, 여성 등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참여해 노·사·민·정을 아우르는 상설협의기구로 운영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중앙 차원에서 이뤄지는 ‘원샷형 사회적 대타협’에 매몰돼선 과거 노사정위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장홍근·박명준 연구위원은 지난 4월 <월간 노동리뷰> 기고문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부담스러운 정책현안을 위해 정당성 확보의 통로로 위원회(사회적 대화기구)를 이용하는 행태를 버려야 한다”며 “정부가 사회적 대화에 관심을 갖고 지원은 하되 노사정 간 실질적이고 자율적인 대화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상층단위’의 대화가 아니라 업종·지역 등 다양한 차원의 사회적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조선산업 등 산업별 구조조정 사례에서처럼 ‘중간’ 단위의 노사정 대화가 먼저 선행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대기업 노조의 실리주의를 제어해 중소기업·비정규직과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중범위(산업·업종별) 수준에서의 교섭·협의를 촉진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영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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