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왼쪽 둘째)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를 찾아 정우택 원내대표(오른쪽둘째)와 악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첫날 행보는 여의도를 찾아가 정세균 국회의장과 야 4당 지도부를 만나는 것이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임기 첫날 주요 야당을 직접 방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국회와 협력·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조속한 국정안정과 개혁과제 추진을 위해 야 4당 대표 모두에게 “선거 기간 5당이 내놓은 공약 가운데 공통되는 정책은 빨리 입법하자”고 제안하는 등 첫날부터 협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가장 먼저 자유한국당 당사를 찾아가 정우택 원내대표를 만났다. 선거 기간 문 대통령의 안보관을 집중 공격했던 정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되셨으니 불안한 안보관을 다 해소해 주시고, 한-미 관계나 대북관계에 대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남북관계, 안보, 한-미 동맹 등 사안을 자유한국당이 조금 협력해 주신다면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안보 관련 중요 사안들을 야당과 정보 공유하면서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협력이 절실하다. 문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하고, 국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야당과 소통·대화하며 국정의 동반자라는 자세로 임하겠다. 오늘 제가 야당 당사를 방문한 것도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방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임기 내내 소통하는 자세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대통령께서 야당 대표 할 때보다 저희가 더 강한 야당이 될지도 모른다”고 ‘가시’를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회 국민의당 대표실에서 박지원 대표를 만나 인사하며 활짝 웃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국회로 옮겨 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지도부를 차례로 만나 “야당과 5년 내내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를 만나 “정권교체 이후 대한민국이 갈 방향에 대해 국민의당과 기본 목표가 같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뿌리가 같은 정당이기에 특별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선거 기간에 ‘아침마다 문재인을 비판한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문모닝’이란 말을 빗대 “오늘 아침은 굿모닝으로 시작한다”며 “10년 만에 문재인 대통령에 의거해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에 큰 의미를 둔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협력에 방점을 두고, 야당이기 때문에 견제할 것은 견제하면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회 바른정당 대표실을 찾아 주호영 대표 대행(오른쪽 둘째) 등 당 지도부와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양석 원내수석, 김세연 사무총장, 문 대통령, 주호영 대표 대행, 이종구 정책위의장. 국회사진기자단 2017년5월10일 국민일보 최종학 선임기자
문 대통령은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를 만나서는 “바른정당이 보수에 희망을 줬다”고 추어올렸다. 유승민 후보에 대해서도 “보수가 나갈 길을 잘 제시해주셨다”고 평했다. 보수정당이지만 사회·경제 분야 일부에서는 진보적 색채를 보이는 바른정당의 협력을 얻으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국회에서 가동 중인 개헌특위가 계획대로 잘 추진되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국회와의 소통을 위해 정부조직에 정무장관을 추가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동석한 이종구 바른정당 정책위의장은 “정부 기운을 너무 세게 하면 (경제가) 잘 안 돌아간다”며 문 대통령의 공공부문 강화 정책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10일 오전 국회 정의당 대표실을 찾아 노회찬 원내대표와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통합정부의 또 다른 파트너가 될 정의당의 노회찬 원내대표와 만나서는 “작은 정당이지만 정의당이 제시하는 가치들이 우리 정치에 많은 영감을 줬다. 동지적인 자세로 함께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 원내대표는 “선거제도 혁신을 문 대통령께서도 5년 전 대선에서도 강조했고 국민들께 약속한 바가 있기 때문에 빈틈없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저희도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노 원내대표는 이어 “야당 정치인과도 소주 한잔 하는 대통령을 국민들이 보고 싶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야당 지도부 방문을 마친 문 대통령은 국회의장실을 찾아 정세균 의장과 황교안 국무총리, 양승태 대법원장, 김용덕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5부 요인과 상견례를 했다. 정세균 의장이 야 4당을 순회한 문 대통령에게 “대통령께서 ‘사이다’ 같은 행보를 해주셨다. 국민이 기대하는 협치에 부응해주신 것 같다”고 덕담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국정 공백으로 국민들 사기가 죽어 있다. 대통령께서 기가 살아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시길 부탁한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국민들 상처가 깊은데 위로하고 치유하는, 요즘 말로 ‘힐링’하는 정치를 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경미 윤형중 송경화 김태규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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