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의 첫날과는 사뭇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날은 분주하면서도 소탈하고 간소했다. 약식으로 치러진 취임식 등은 당선이 곧 임기 시작인 19대 대통령의 특수한 상황 탓에 곧바로 실무에 들어가야 하는 까닭도 있지만, 한결 유연해진 경호나 시민들과의 거침없는 스킨십 등은 평소 문 대통령이 말했던 ‘탈권위 대통령’의 행보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취임 직후 직접 국무총리 인선 등과 관련해 기자회견에 나선 모습 등도 앞으로 이어질 ‘소통 대통령’으로서의 기대감을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에서 나와 꽃다발은 전해준 어린이와 껴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에서 나와 환송하는 주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소탈한 대통령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0일 아침 8시 전체 위원회의를 열고 19대 대선 개표 결과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 결정안을 공식 의결했다. 궐위선거인 만큼 당선인 결정안 의결 즉시 신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한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공식 임기는 김용덕 선관위원장이 의결 의사봉을 ‘땅땅’ 두드린 8시9분부터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8시10분 서울 홍은동 자택에서 이순진 합참의장으로부터 북한군의 동태와 군의 대비 태세를 전화로 보고받고, “대비 태세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하며 군 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의 업무를 시작했다.
9시30분께 문 대통령 부부는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첫 공식일정인 현충원 참배를 위해서다. 이날 홍은동 자택 앞에는 지역 주민들을 비롯해 500여명의 환송 인파가 모였다.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 경호팀에 의해 접근이 어려운 밀착 경호가 이뤄져온 통례와 달리, 대통령의 첫날은 평소 유세 때와 별다를 바가 없었다. 배웅을 나온 아이들을 직접 안아주며 주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선거 기간 경호를 맡았던 팀원들을 찾아 격려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달라진 점은 대통령이 사용하는 방탄차량을 탑승했다는 것뿐이었다.
취임식을 마친 오후 청와대로 향하던 중, 효자동 거리에서 마중을 나온 주민들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차에서 내려 주민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비리 척결과 질서 확립에 힘써달라” “국민 고통 함께하시고자 단식했던 것이 생생하다. 공정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 약속을 잊지 말아달라”고 전하는 시민들의 말도 귀 기울여 들었다.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대통령 경호는 비교적 거리를 두고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퇴근길에 남대문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잔 나눌 수 있는 대통령, 친구 같고 이웃 같은 서민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해온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분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취임선서식에서 부인 김정숙씨, 정세균 국회의장 등 5부 요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취임사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대통령 취임선서식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낮 국회 앞을 지나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대통령 취임선서식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낮 국회 앞을 지나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소통하는 대통령 대통령은 소통과 협치를 향한 강력한 의지도 드러냈다. 취임선서를 앞둔 대통령이 먼저 찾은 곳은 서울 여의도에 있는 자유한국당 당사였다. 다음엔 국회의 각 당 대표실을 돌았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야당들에 알리고 함께 논의해 결정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대통령은 각 당을 찾기 전인 오전 중 이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통화를 마쳤다. 전날 저녁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도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당선된 첫날 오후 늦게서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통화를 했다.
‘취임선서 행사’는 10일 정오 국회 본관 중앙홀에서 열렸다. 감색 정장에 짙은 청색 넥타이 차림의 문 대통령과 꽃무늬를 수놓은 화려한 톤의 하얀색 정장을 입은 부인 김정숙씨가 국회 본관 건물에 들어서자 경호라인 바깥에 서 있던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등이 환호성을 지르며 문 대통령 내외를 맞았다. 국무위원들로 이뤄진 ‘취임행사위원회’ 위원장인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문 대통령 부부를 영접했다. 현장에서 국군교향악대가 연주하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객석에는 국무위원, 국회의원, 군 지휘관 등 300여명이 앉았다. 7만여명이 초청돼 국회 앞마당에서 대규모로 치러졌던 18대 대통령 취임식 등 역대 대통령들과 견줄 수 없는 특수한 풍경이었다. 보신각 타종, 군악의장대 행진, 예포 발사 등의 순서도 생략됐다. 취임행사위원회 실무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문 대통령 쪽의 요청으로 ‘취임선서’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간소하게 행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향후 외교사절 등을 초청한 정식 취임식을 거행할지 여부는 외교부·행정자치부 등과 논의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다. 이날 ‘국민께 드리는 말씀’으로 취임사를 갈음한 문 대통령은 청와대로 향했다. 이동 중 도로 양옆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연호하는 시민들이 보이자, 차량의 선루프 밖으로 몸을 내밀고 손을 흔들어 화답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 청와대로 들어가기 전 분수대 삼거리에서 환영하는 주민들의 꽃다발을 받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총리와 비서실장 등 인사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분주한 하루…첫날 첫 기자회견 대통령의 하루는 첫날부터 분주했다. 오후 1시가 넘어 청와대로 들어간 문 대통령은 황교안 국무총리와 1시20분부터 오찬을 하며 경제·외교·안보 사안 및 강원도 산불 관련 현안 등을 보고받았다. 황 총리는 이날 중으로 본인을 포함한 국무위원과 정무직의 일괄 사표를 제출할 뜻을 밝혔으나, 대통령은 “당분간 국무회의 필요성 등 여러 상황을 검토한 뒤 사표 처리 문제 방침을 정하겠다”고 답해 시급히 국무회의가 열릴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오후 2시40분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무총리,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호실장 등 주요 인선안을 발표했다. 이후 3시30분 청와대 본관 집무실로 자리를 옮겨, ‘제1호 업무지시’인 ‘일자리위원회 설치 및 운영방안’을 하달하고 관련 문서에 서명했다. 밤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하는 등 외교 현안을 처리하며 바쁜 하루를 보냈다.
취임 첫날 외빈 등을 초청해 이뤄졌던 저녁 만찬 행사는 생략했다. 아직 대변인 인선 등을 확정하지 못해, 개인 자격으로 급히 기자들 앞에 나선 김경수 의원은 “문 대통령이 전날 밤 광화문 (당선인사를) 다녀오시고 밤늦게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하셨고 (아침에도) 합참의장 보고 일정 때문에 쉬지 못한 상황이라 만찬은 공식 일정으로 잡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관저가 정비될 때까지 2~3일간 홍은동 자택에서 청와대로 출퇴근을 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임종석 신임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제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 설치 및 운영방안'을 하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유경 김규남 이정애 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