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농단 뇌물 사건으로 복역하다 4개월 전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청년 일자리 창출을 당부했다. ‘취업제한’ 상태인데도 편법으로 삼성의 총수 역할을 하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본관에서 삼성을 포함해 현대차·에스케이(SK)·엘지(LG)·포스코·케이티(KT) 등 대기업 대표들을 불러 90분 동안 ‘청년희망온(ON) 참여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를 열었다. 문 대통령은 “6대 기업은 앞으로 3년간 청년 일자리 18만여개를 창출하고, 교육훈련과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해주셨다”며 “훌륭한 결단을 내려주신 기업인 여러분께 직접 감사드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민간 기업에 더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몫이고, 정부는 최대한 지원할 뿐”이라며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독려했다. ‘청년희망온’ 프로젝트는 기업이 청년에게 교육훈련을 제공하고, 우수한 인재를 채용할 기회를 갖는 사업을 말한다. 이 부회장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 9월 김부겸 국무총리를 만나는 등 대외 행보를 공식화하고 있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간담회에서 “우리나라는 저출생으로 신생아가 40만명 이하지만 중국은 대졸자가 500만명이 넘는 상황을 감안할 때 미국과 중국이 탐내는 좋은 인재를 키우는게 중요하다”며 “인력 양성의 중요성이 결국 청년희망온의 취지와도 맞닿아있다”고 화답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국민들이 전기차를 많이 구매해줬고 그 기반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외국 전기차와 경쟁하려면 기술과 서비스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차량용 반도체에서 삼성과 현대차가 더 긴밀하게 협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관심을 끈 것은 문 대통령이 ‘취업제한’ 상태인 이 부회장을 초청해 기업의 경영활동에 대해 ‘특별한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현 정권에 등을 돌린 청년층을 향해 일자리 창출 노력을 보여주고, 이재용 부회장은 대통령이 인정한 ‘공식 경영 행보’를 했다는 이른바 ‘윈-윈’이 가능한 행사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삼성은 ‘인재 제일’이라는 창업주의 뜻을 이어 최고의 능력을 갖춘 ‘삼성인’을 배출해왔다”며 치켜세웠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86억원 뇌물공여·횡령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다. 법무부로부터 5년 동안의 ‘취업제한’을 통보받았으며 지난 8월 가석방됐지만 취업제한은 그대로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이날 “이재용씨를 대기업 총수들과의 간담회 자리에 공식초청한 것은 대통령이 나서서 취업제한 조치 무력화를 공인해준 것과 다름 없다”며 “촛불이 단죄한 정경유착 국정농단의 두 축이 대통령에 의해 완전 사면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활동이 취업제한을 명시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증거자료를 법무부와 경찰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법을 무시한 행사를 마련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통상적인 재계 인사 초청 자리라기보다는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청년 일자리 해결에 뜻을 같이한 기업인들을 초청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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