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서 성일종 위원장(오른쪽)과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공직자의 직무상 권한을 남용한 사적 이익 추구를 막는 이해충돌방지법이 8년간 논의 끝에 국회의 첫 관문을 넘었다. 법 제정이 지연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3기 새도시 투기 의혹 등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는 ‘만시지탄’이 흘러나오지만, 그럼에도 이번 엘에이치 사태를 계기로 공직 사회의 윤리성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4일 법안심사2소위원회에서 직무 관련 정보를 활용한 공직자의 사익 추구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2013년 ‘김영란법’과 함께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공직자의 직무 범위 등이 모호하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 8년간 표류해왔다. 21대 국회에서도 국민권익위원회가 이해충돌방지법안을 제출했으나 ‘박덕흠 사태’ 때만 반짝 빛을 보다가 다시 관심 밖으로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다 최근 엘에이치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었고, 이날 처음으로 국회 문턱을 넘는 진전을 이뤘다.
이날 정무위 소위를 통과한 수정안은 이해충돌방지법 적용 대상인 고위공직자 범위에 ‘지방의회 의원, 공공기관 부단체장 및 정무직 임원’ 등을 포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 법이 직접 적용되는 대상자는 190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고위공직자’ 범위가 너무 확대된다는 우려 탓에 사립학교법과 언론 관련 법안에서 별도로 이해충돌방지 관련 조항을 추가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또한 고위공직자로 임용되는 이들이 민간에 있을 때 했던 각종 거래 행위와 용역 계약 등 경제 활동과 업무 활동을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채용 업무에 담당하는 공직자의 가족은 해당 공공기관과 산하기관에 채용될 수 없고, 공직자와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 존·비속(배우자의 직계 존·비속 포함)은 공공기관 및 그 산하기관과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했다. 특히 토지와 부동산과 관련한 업무 내용을 주로 하는 공공기관 임직원은 부동산을 보유하거나 매수했을 때 14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공직자가 직무상 정보 이용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을 경우에는 최대 7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7천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도록 처벌 규정도 마련했다.
정무위 국민의힘 간사를 맡고 있는 성일종 의원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긴 논의 끝에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이해충돌방지법으로 공직자들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간사인 김병욱 의원도 “전반적으로 국민권익위원회가 제출한 법률 제정안보다 훨씬 강화된 수정안을 마련해 국민들의 공직자 부정·비리 척결 요구에 응답했다고 자평한다”고 말했다. 법안은 정무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성일종 의원은 “정무위원장이 일정을 앞당기자고 해 양당이 협의하기로 했다. 법안 처리에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당이 모두 법안 처리에 의지를 보이는 만큼, 이해충돌방지법은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공산이 크다.
참여연대 이재근 권력감시국장은 “8년 동안 법안 논의가 공전돼 엘에이치 투기 의혹 등을 사전에 막지 못했고, 소급효 적용이 배제돼 이미 논란이 된 투기 의혹 등에 대해 적용될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럼에도 공직 사회의 청렴성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마련한 점은 의미있는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법 제정을 통해 공직자 스스로 윤리성에 대한 경계심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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