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조사 결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당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밝혀진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 박영선 후보가 들어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서울의 봄을 위해 봄날 같은 시장이 되겠다”며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올봄은 유달리 춥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0%포인트 넘는 참패가 예측되면서 서울시장을 발판 삼아 그리던 정치적 미래도 아득해졌다.
선거 당일인 7일 서울 연희동 집에서 머물던 박 후보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뒤 밤 9시께 안국동 캠프 사무실을 찾아 상황실을 돌며 선거운동원들과 주먹인사를 나누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밤 10시20분께 여의도 당사를 찾아 “진심이 승리하길 바라면서 끝까지 응원해준 시민들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회초리 들어주신 시민들께 겸허한 마음으로 제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면서 가야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지상파 방송 첫 여성 앵커에 이어 특파원·경제부장을 거친 뒤 국회로 무대를 옮겨 첫 여성 법제사법위원장, 원내대표 등 한국 사회 ‘유리 천장’을 잇따라 깨뜨린 박 후보는 선거 초반에는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첫 여성 서울시장’에 바짝 다가선 듯 보였다.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취임한 이래 소재·부품·장비 관련 기업 육성·지원 등의 성과를 차근차근 쌓아온 박 장관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차차기 대선을 바라볼 수 있는 역량과 자질을 인정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야권 단일화 이슈로 여론의 관심권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더니,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특히 지난해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여권 인사들이 임대료를 크게 올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민심 이반의 역풍을 온몸으로 맞았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직전 박 후보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15~20%포인트 차까지 밀렸다.
박 후보는 오 후보의 ‘내곡동 셀프보상’ 의혹을 정조준하면서 도덕성 검증을 통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려 안간힘을 썼다.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6일 새벽 고 노회찬 전 의원을 상징하는 6411번 버스에 올랐고, 반성·성찰을 다짐하며 ‘범진보 지지층 결집’을 희망했다. 마지막 광화문 유세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애창곡인 ‘상록수’를 부르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인물 대결보다 정권 심판의 성격이 큰 선거였지만 예상보다 큰 격차로 패배함에 따라 박 후보가 정치적 동력을 되찾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다만 내년 대선 이후 다시 민심이 소용돌이칠 경우, 이어진 지방선거에서 다시 서울시장 후보로 소환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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