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등촌역 인근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30 세대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승부처다. 단지 득표율을 넘어 누가 미래세대의 지지를 받느냐는 상징성이 크다. 최근 쏟아져나온 여론조사를 보면, 정부·여당을 향한 분노에서 촉발한 엠제트(MZ·밀레니얼제트) 세대의 표심은 민주당에 쉽게 곁을 내주지 않고 있다. 그동안 노년층 ‘태극기 부대’의 그림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보수 진영도 이번 선거에선 처음으로 청년층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이 여권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청년층의 보수화’라는 진단은 섣부르다고 말한다.
청년들 지지 발언에 “꿈 같은 일” 울먹인 오세훈
“평등과 정의를 외치던 민주당에서 성범죄 사건이 터지고 ‘피해호소인’ 운운하며 2차·3차 가해하는 움직임에 실망했다.”
“월급 벌어서 집을 사기는커녕 전세 들어가기도 힘들다.”
“민주당이 청년층을 어떻게 보는지 착잡하다. 그들이 우리를 믿어준 적이 있느냐.”
지난 4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후문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차량에 청년 20여명이 잇따라 올랐다. 이들은 3시간반 동안 마이크를 주고받으며 조국·윤미향·엘에이치(LH) 사태 등에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청년들의 발언 도중 연단에 오른 오 후보는 “누가 이 젊은이들을 슬프게 했느냐”며 “이렇게 2030 청년층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는 건 꿈만 같은 일”이라며 울먹였다.
5일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역 유세에서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 연설을 청취한 오 후보는 “젊은 친구들이 실망하게 하지 않겠다. 일당백으로 도와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7일부터 젊은 유권자들에게 유세차량에 올라 발언할 기회를 주는 ‘2030 시민참여 유세단’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하루 평균 20명 정도의 발언이 열흘째 이어지고 있다.
행사를 기획한 이준석 캠프 뉴미디어본부장은 <한겨레>에 “전통적 보수 진영의 목소리가 의원들의 입을 통해 국회에서 대변돼왔던 데 반해, 2030 지지자들이 목소리를 낼 곳이 없었다”며 “에스엔에스(SNS) 파급 효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공감의 힘이 컸던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총선까지만 해도 아스팔트 극우와 차마 결별하지 못하고 주저하던 국민의힘은 이번 4·7 재보선에선 청년 표심 잡기에 공들이고 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나온 여론조사에서 엠제트 세대의 보수 정당 지지 경향은 돋보인다.
지난달 24일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서울 유권자 806명에게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물은 결과(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5%포인트) 18∼29살 연령대에서 오 후보가 지지율 60.1%를 기록하며 박 후보(21.1%)를 압도했다.
<한겨레>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30~31일 서울에 거주하는 유권자 1012명을 조사한 결과(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도, 18~29살 연령층과 30대에서 오 후보가 각각 48.6%, 51.5% 지지율로 박 후보(26.1%, 35.5%)를 16∼22.5%포인트 앞서나갔다.
이에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의 ‘불공정’에 분노하는 젊은이들의 표심을 투표장까지 연결시키려 애쓰고 있다. 오 후보는 청년 스타트업 관계자, 대학 학생 대표 등 젊은 유권자들과의 촘촘한 면담 일정을 소화하고, 하루도 빠짐 없이 강남 코엑스, 노원구 경춘선 숲길, 용산역 광장 등에서 청년 지지자들을 현장에서 모아 유세 차량에 세웠다.
5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시장 후보가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발산역 사거리 일대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영선, 청년공약 먹힐까…“국민의힘 대안 못돼”
하지만 엠제트 세대가 직접 투표장에 나가 2번을 찍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여당이 촘촘한 정책으로 적극 지지층의 마음을 움직여 승부를 보려 하는 이유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달 25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식 선거운동을 개시했다. 최근 청년 교통비 40% 할인 정책과, ‘반값’ 통신비, 청년 일자리 1만개 창출, 5천만원 무이자 창업지원금 지원 등 청년 겨냥 정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박 후보 캠프에선 투표장에 간 청년층의 마음이 돌아설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여전히 민주당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엠제트 세대도 적지 않다. 박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힌 김용민(28)씨는 “흙수저·금수저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부가 대물림되는 공정하지 않은 사회는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며 “오 후보의 공약이 실행되면 재개발·재개발이 다시 가속화돼 잘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빈부 격차가 더 심해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아무개(32)씨도 “오 후보는 과거 무상급식을 반대하지 않았느냐. 저소득층이 무상급식을 먹으려면 가난이나 아픔을 증명해야만 했다. 용산참사 관련해서도 철거민들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국민을 차별하는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아무개(32)씨는 “최소한 민주당이 비판받는 지점에서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순 없지 않겠느냐”며 “국민의힘은 마치 (정부 여당이 해온) 잘못을 안 한 것처럼 얘기하는 게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저성장을 겪으면서 치열한 경쟁구조 속에 놓인 세대. 전문가들은 이들이 보수나 진보, 한쪽으로 정의할 수 없는 ‘공정’을 중요시하는 세대가 된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다. 이 때문에 엠제트 세대의 보수 정당 지지는 이념 지향이 아닌,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 성격이라고 꼬집는다. 앞서 언급한 <한겨레>-케이스탯리서치 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를 물었을 때 18~29살 연령층에선 국민의힘(21.3%)이 민주당(21.2%)과 박빙이었고, 30대에선 민주당(35%)이 국민의힘(28.8%)을 약간 앞섰다. 분노가 지지 정당 선택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은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20대를 진보·보수로 규정하는 건 대단히 성급한 일”이라며 “조국 전 장관 사태, 부동산값 폭등 등으로 불씨가 도처에 생기던 중 엘에이치 사태가 기름을 끼얹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더가능 연구소 대표)은 엠제트 세대 불만의 견고함이 내년 대선의 표심 향방을 좌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 연구원은 “엠제트 세대의 특징은 시대를 막론하고 ‘얼리 어답터’라는 것”이라며 “향후 누적되거나 고착된 불만이 계속된다면 ‘야당 지지’라는 적극적 분노의 기류는 지속할 수 있다. 다만 부동산이나 일자리 문제 등 단기 이슈에 대한 반응이라면 2022년 대선에서 이들은 스윙보터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김미나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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