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차례나 마주친 탓일까. 4·7 보궐선거를 이틀 앞두고 마지막 티브이(TV) 토론에서 마주친 박영선·오세훈 후보는 상대방의 말머리만 듣고도 공격의 길목을 차단하고, 농담도 구사하며 예봉을 피했다. 두 후보는 서로 칭찬해보라는 사회자의 주문에 ‘언변과 패션’, ‘집념과 열정’을 들며 모처럼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내곡동 땅이 민생 문제? 생태탕 매출 때문에?
박 후보는 선거전 내내 오 후보를 몰아붙인 ‘내곡동 땅 셀프 보상’ 의혹을 이날도 꺼내들었다. 박 후보는 자유토론과 부동산 정책 등에 대한 토론 시간을 상당 부분 할애해 내곡동 땅 측량 당시 오 후보가 동행했는지를 캐묻고, 보금자리주택지구 지정을 전결 처리했다는 서울시 주택국장이 초고속 승진한 이유 등을 따져물었다. 그러다 민생 정책에 대한 자유토론 시간에도 내곡동 문제를 꺼내들자, 오세훈 후보가 “민생에는 관심이 없으시군요?”라며 반격에 나섰다. 박 후보가 “민생과 관련이 왜 없느냐”고 따지자, 오 후보는 “생태탕 때문에 관계 되나요? 생태탕 매출하고?”라며 ‘자학 개그’를 선보였다. 박 후보는 웃으며 “(연관 관계를)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며 관련 질문을 이어갔다.
앞서 오 후보는 내곡동 땅 의혹이 제기된 초기에 “땅 위치도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2005년 6월 오 후보가 장인 등과 함께 내곡동 땅 측량에 입회했으며, 당일 함께 생태탕을 먹었다는 구체적인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생태탕집 아들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오 후보가 방문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당시 상황을 증언하기도 했다. 오 후보는 자신의 거짓말 여부를 둘러싼 핵심 쟁점인 ‘생태탕’ 논란을 외려 농담 소재로 활용하며 그 의미를 축소한 셈이다.
오 후보는 이어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인터뷰를 인용하는 ‘돌려치기’ 전술을 구사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내곡동 땅 측량 당시 입회했다는 주장에 대해 “측량 현장에 간 사실이 중요하지도 않지만, 중요하더라도 이해찬 전 대표가 ‘시장도 되기 전에 현장에 간 게 무슨 이해충돌이냐’라고 말한 사실이 있다”며 “박 후보가 이 전 대표의 말을 존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 후보는 박 후보의 공약에 대해 실현 가능성을 주로 따져 물었다. 물재생센터 등 시유지를 활용해 주택 12만4천호를 공급하겠다는 박 후보 공약에 대해 오 후보는 “물재생센터에 악취가 많이 나는데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겠느냐. 그나마 물재생센터 시설을 현대화하는 데 10년 정도 걸렸는데, 언제부터 주택이 공급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한 박 후보의 답변은 ‘기술 발전’이었다. 박 후보는 “오 후보가 지난 10년간 아마 다른 일을 하셔서 그런 것 같은데, 기술 발달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전혀 이해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조금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10년 전 기술과 지금 기술은 다르다”고 말했다. 오 후보가 물재생센터의 악취 문제를 거듭 질문하자, 박 후보는 “악취가 왜 납니까. 기술이 발달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박 후보는 오 후보의 ‘21분 도시 서울’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낡은 사고로 고민하기 때문에 답이 없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오 후보가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가 있는데, 21분 도시 서울에 21개의 중심축이 생기면 4개구는 소외되는 것 아니냐. 그 곳은 어디냐”고 묻자, 박 후보는 “왜 다른 나라 선진 도시들이 15분 도시, 9분 도시, 20분 도시를 하겠느냐. 시공간 개념에 복지 개념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라며 “낡은 행정 중심의 사고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두 후보는 1분 동안 서로를 칭찬해보라는 사회자의 주문에 잠시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회를 맡은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는 “공방이 뜨거워서 조금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두 분이 칭찬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려보려고 질문을 준비했다”며 “1분 이내로 정말 칭찬할 만하다 하는 것을 칭찬해달라”고 주문했다.
먼저 답변하게 된 박영선 후보는 “저는 사실 오세훈 후보를 칭찬할 만큼 같이 공유한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부분들 가운데 어떤 부분을 칭찬해드려야 하나 고민을 했다”며 “일단 언변이 굉장히 좋으신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패션 감각이 다른 분보다 뛰어나신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이어 “스탠딩 토론을 좋아하시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늘 토론도 그걸 굉장히 고집하셨다고 들었다”며 뼈 있는 발언도 덧붙였다.
오 후보는 박 후보의 “집념과 열정”을 강조하며 칭찬에 화답했다. 그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여성분들에게 사실 유리천장이 있다. 그런 것을 계속해서 돌파해서 4선 의원까지 하시고 또 장관까지 하시고 이런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돌파해 우리 딸들에게 모범 사례가 되는, 젊은 여성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장점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끝까지 승승장구 하셔서 대성한 정치인으로 귀감이 되어주시면 좋은 롤모델이 되실 것”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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