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민심의 도저한 흐름이 ‘여권 심판론’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여권에 180석이 넘는 압도적 승리를 안겨준 민심이 불과 1년 만에 급속도로 이반하고 있는 것이다. ‘엘에이치 투기 의혹’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등 여권 인사들의 ‘부동산 내로남불’이 집권세력의 윤리와 공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초래한 결과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공고하게 형성된 ‘촛불 동맹’에 균열이 생겼다는 진단마저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케이스탯이 <한겨레> 의뢰로 지난달 30~31일 서울에 거주하는 유권자 1012명을 조사한 결과(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은 54.4%로 박영선 후보(33.5%)를 20%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일을 일주일 앞두고 공표가 가능한 마지막 시점까지 파악한 민심의 흐름에서 야권의 확고한 우위 구도가 확인된 셈이다.
특히 오세훈 후보는 40대를 제외한 전 세대와 서울의 전 권역에서 모두 박영선 후보를 압도하는 지지를 거뒀다. 통상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18~20대와 30대에서 오 후보는 48.6%·51.5% 지지율로 박영선 후보(26.1%·35.5%)를 앞질렀고, 서울 서북권과 동북권역에서도 51.4%·50.6%로 박영선 후보(34.8%·36.6%)에 우위를 점했다. 박영선 후보는 문재인 정부 핵심 지지층으로 꼽히는 40대에서만 43.9% 지지를 얻어, 오 후보(42.8%)와 접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이념 성향별로도 중도성향 가운데 57.0%가 오 후보를 지지해, 박 후보(30.4%)를 압도했고, 진보성향에서도 24.8%가 오 후보에 대한 지지를 보였다.
특히 두 후보의 지지율을 지난해 4·15 총선 당시 투표 성향과 교차 분석해보면, 민심 이반의 정황이 더욱 또렷해졌다.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고 답한 응답자 가운데 박영선 후보를 지지한다는 비율은 60.4%에 그쳤고, 28.8%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 셋 중에 한 명이 국민의힘 쪽으로 갈아탔다는 뜻이다. 진보 성향인 정의당에 투표한 유권자도 27.1%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미래통합당을 찍었다는 유권자 가운데는 95.7%가 오세훈 후보를 택해 보수 야권 유권자들은 강하게 결집하는 경향을 보였다.
1년 만에 돌아선 민심의 변곡점으로는 최근 불거진 엘에이치 투기 의혹이 꼽힌다. 4·7 보궐선거에 영향을 미칠 변수를 묻는 질문에 서울의 유권자들 가운데 무려 58.7%가 ‘부동산 정책 및 엘에이치 사태’를 꼽았다. 이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13.4%), ‘윤석열 전 총장 사퇴 및 검찰과 여권의 갈등’(9.0%), ‘코로나 방역과 백신 접종’(8.7%) 순이었다. 더구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인사들이 임대차 3법 시행 직전에 임대료를 높게 인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민심이 싸늘하게 식은 것으로 보인다.
하동균 케이스탯리서치 이사는 “그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의 지점이 내로남불, 편가르기 등 당파적인 성향에 대한 문제였다면, 엘에이치 사태와 김상조 전 실장 사건 이후에 윤리성과 공정성에서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본질적인 문제제기에 직면한 것 같다”고 짚었다. 실제 서울시 유권자 가운데 거의 모든 세대(70대 이상 48.6%)와 전 권역, 대부분 정당 지지층과 직업군에서도 과반수의 유권자가 이번 보궐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부동산 정책 및 엘에이치 사태’를 꼽았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민주당과 함께 촛불을 들었던 세대(20~40대)와 진보·중도층이 2017년 ‘박근혜 탄핵 사태’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에 너희들은 무엇이 다르냐고 따져묻는 모습”이라며 “민주당이 성난 민심의 경고를 받아들여 자기 성찰의 모습을 보이는지 여부에 따라, 차기 대통령 선거까지 여론의 흐름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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