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거리에서 대학생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통번역 전공 대학원생에게 인공지능(AI) 기반 자막 제작 플랫폼을 일자리로 추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야당은 ‘청년 일자리 킬러’라며 박 후보를 맹비난했다.
30일 박 후보 쪽이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박 후보는 지난 26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거리에서 통번역 대학원생과 만난 자리에서 “통역대학원은 졸업하면 일자리 걱정은 없지요? 일자리가 많이 있어요?”라고 말한다. 학생이 “걱정된다”고 답하자 “일자리를 하나 소개해 드릴게요”라며 인공지능 기반 크라우드소싱 자막 스타트업 ‘보이스루’를 소개했다. 이어 박 후보는 이 기업의 운영 방식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이 회사는 어떻게 하는 회사냐면, 한국 콘텐츠를 올리면 통역 1인이 자유직업으로 통역을 번역해 올리면 그 번역 가운데 인공지능이 제일 흐름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채택해 올린다”며 “이렇게 플랫폼 방식으로 번역을 하니까 더 빠르고 정확한 번역을 하면서 번역료도 여러 사람한테 기회가 골고루 돌아간다. 통역이나 번역하시는 분들의 일자리가 새로운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소개했다.
문제는 이 일자리가 전통적 고용관계에 기반한 ‘정규직’이 아니라, 번역 건수당 책정된 수수료를 받는 프리랜서라는 점이다. 전문적인 통·번역가 일자리를 생각하며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에게 플랫폼을 통한 ‘긱 이코노미’에 기반한 비정규직 일자리를 권한 셈이다. 이날 박 후보의 발언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논란이 확산되자, 박영선 후보 캠프는 “유튜브를 비롯해 한류 콘텐츠의 인기가 늘어나며 외국어 자막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통번역가들에게 좋은 기회여서 소개한 것”이라며 파문을 차단하고 나섰다. 그러나 야권은 박 후보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경력을 강조하기 위해 청년 일자리를 오히려 줄이자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근식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은 페이스북에서 “방송 토론에서 인공지능으로 나무 물주는 수직공원 타령하더니 통역대학원생 앞에서는 인공지능 번역기 말씀을 하시느냐”며 “사람 일자리 없다고 아우성하는데 사람 대신 인공지능 사용하라는 건, 쌀 없으면 막걸리 먹으라는 달나라 인식”이라고 꼬집었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영화 ‘어벤저스’에서 우주의 생명체 절반을 사라지게 만드는 악당 ‘타노스’에 박 후보를 빗댔다. 그는 페이스북에 “손가락만 튕기면 절반이 사라지는 타노스 이미지를 꿈꾸는 게 아니라면, 가는 곳마다 무인점포니 통번역 인공지능이니 이런 말을 하실 수가 없다”며 “민주노총은 박영선 후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밝히라”고 적었다. 허은아 의원도 “이러다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들께 식기세척기 설치해 드린다 하고, 세탁소 사장님들께 스타일러 설치 공약을 발표하겠다”고 비꼬았다.
앞서 박 후보는 지난 25일 0시 공식 선거운동 첫 일정으로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 뒤에도 무인 점포 운용을 언급해 입길에 오른 바 있다. 그는 직원용 조끼를 입고 야간 아르바이트 노동자와 함께 판매 및 진열 업무 등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할 때 스마트상점, 무인스토어를 확산시켰다. 점주에게 이런 것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야간 아르바이트를 체험한 뒤, 오히려 그 일자리를 없애라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다. 논란이 일자 당시 박 후보 캠프는 “일종의 프로토콜 경제로 일자리가 줄지 않고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동일 임금을 보장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한 바 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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