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9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있다. 공동취재사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 직원들의 투기 의혹 파문이 커지면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거취 문제까지 불이 옮겨 붙고 있다. 변 장관의 엘에이치 사장 재임 시절과 직원들의 땅 매입 시점이 겹치는 데다, 변 장관이 이번 투기 의혹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까지 내놓아 부동산 정책 관리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여권 일각에서도 제기되는 ‘변 장관 경질론’이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민주당은 10일 문재인 대통령과 원내 지도부 오찬에서 변 장관 경질을 당이 요구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날 아침 “민주당 지도부가 변창흠 국토부 장관 경질을 대통령에 요구할 방침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고 출입 기자들에게 공지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당 지도부 차원에서 논의한 바 없다”며 “고위 공직자나 정무직 공직자가 책임질 일이 있으면 당연히 책임져야겠지만, 지금은 조사 결과도 아직 안 나온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도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게 변 장관을 경질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엄정한 수사로 일벌백계하고, 투기로 불린 재산을 환수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힘을 쏟을 시기”라고 말했다. 변 장관에 대한 인사 조처보다, 철저한 조사와 수사를 통한 사태수습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청와대도 흔들림이 없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은 (변창흠 장관) 경질에 관한 언급을 하신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며 “흔들림 없는 2·4 대책 추진을 어제도 강조한 취지를 헤아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의 파장이 커지면서 4·7 재보궐선거를 앞둔 민심이 예상보다 싸늘하게 식고 있다. 집값 급등으로 부동산 정책 신뢰도가 떨어진 가운데, 정부가 주요 공급 대책으로 내세운 3기 새도시 예정지가 투기 의심세력의 먹잇감이 됐다는 소식에 민심의 허탈감과 불만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 신뢰도가 떨어질 경우, 공공 재개발에 중점을 둔 ‘2·4 부동산 대책’ 추진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변 장관의 안일한 인식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변 장관은 지난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현안질의에서 투기 의혹에 대해 “일부의 일탈”이라고 표현했다. 앞서 지난 4일에는 한 언론에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투자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의 파장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지는 인식이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특히 변 장관이 엘에이치 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투기 의심 거래가 집중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변 장관이 참여한 정부 합동조사에 대해 ‘셀프조사’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야권에서는 변 장관에 대한 사퇴 요구가 줄을 잇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불교방송>(BBS) ‘박경수의 아침저널’에서 “변 장관은 문제 시점에 책임자로 있었고 지금은 국토부 장관으로서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인데도 ‘우연히 땅을 샀더니 우연히 그 지역이 신도시 지역이 됐다’는 이해할 수 없는 언급을 하고 있다”며 “자기 책임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 자기가 조사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국토부가 조사해야 한다면 즉각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날 국토위에선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국민들은 실망감과 배신감이 극에 달해 있다. 집값을 사상 최대로 폭등시켜 전 국민을 우울감에 빠뜨린 정부가, 공직자 투기마저 ‘셀프조사’로 적당히 모면하려고 하는 데에 더 큰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며 변 장관의 사퇴를 강하게 촉구했다.
‘경질론’에 선을 그은 당 지도부와 달리, 여권 일각에서도 변 장관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투기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변 장관 사퇴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국방송>(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변창흠 장관조차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한 상황인데, 국무위원이라고 하는 자리는 임기가 보장된 자리가 아니라 정무적인 자리여서 본인의 책임을 국민들이 거세게 제기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의 한 의원도 “지도부 차원에서 변 장관 사퇴를 청와대에 건의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사퇴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의원들은 꽤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노현웅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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