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기를 마친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법무부안산준법지원센터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의 출소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날로 커지자, 정부·여당은 ‘제2의 조두순’을 막겠다며 ‘친인권적’인 보호처분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형기를 마친 살인범, 아동 성폭행범 등 강력범죄자 가운데 재범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 판단이 내려진 경우 최장 10년 동안 별도 시설에 격리하는 제도다.
정부·여당이 ‘친인권적’이라는 수식을 붙인 것은 과거 ‘보호감호제’와 같은 반인권적 과잉처벌의 비판을 최소화하면서도 시민들의 불안감을 줄이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980년 신군부가 만든 사회보호법의 ‘보호감호제’는 살인·강간·강도·사기·횡령·배임 등을 저지른 출소자 가운데 상습범으로 판단될 경우 청송 보호감호소에 최장 7년 동안 가두는 제도다. 대표적인 ‘5공 악법’으로 불렸으며, 이중·과잉처벌과 인권유린 우려 때문에 2005년 폐지됐다. 그럼에도 흉악한 범죄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유사한 제도의 도입이 거듭 거론됐고, 그때마다 국가인권위원회나 인권단체의 반발이 반복됐다.
하지만 흉악범의 ‘개과천선’ 가능성에 대한 시민들의 근본적인 의심 앞에서 ‘범죄자 인권 보호’라는 반대 명분은 한가하게 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시민의 안전’ 대 ‘범죄자 인권’이라는 이분법으로는 논의 진전을 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보호처분제도가 넘어야 할 3가지 질문들을 짚어봤다.
지난달 26일 ‘보호처분제도 당정협의’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치료 및 사회 복귀를 목적으로 하는 친인권적인 새로운 보안처분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범죄자에 대한 교도소 내 교정·교화 프로그램도 전무한 상황에서 격리 제도부터 도입하려는 발상은 설득력이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조영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차장은 “지금은 징역형 집행 단계에서도 성범죄자에 대한 체계적인 교화·교정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재사회화를 꾀하기에 형기가 짧다면 형기를 늘리고, 교도소 내 교화·교정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검찰청이 발표한 ‘보호감호 출소자 재범분석’ 보고서(2008)를 보면 2003∼2004년 청송 보호감호소 출소자 2159명 가운데 80.8%가 4∼6년 사이에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 일반 교도소 출소자 재범률의 두배 가까이 되는 수치다. 명확한 교정·교화 프로그램이 없는 추가 격리는 오히려 재활 희망을 앗아가 범죄자를 ‘범죄의 늪’에 재차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다음 날인 13일 경기도 안산시 한 주택가에서 경찰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범 위험성’은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한 산출 결과가 아니라 ‘예측’이다. 지금도 전자발찌 제도를 도입한 뒤에는 재범 위험성 평가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보호처분제도의 경우 출소자를 재차 구금하는 강력한 조처인 만큼 지금보다 더욱 정밀한 기준과 절차가 필요한 상황이다.
허일태 동아대 교수(로스쿨)는 “보호감호 자체가 위헌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상당한 수준의 ‘개연성’을 증명할 만한 정밀한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논의를 찾아볼 수가 없다”며 “아무리 범죄자여도 단순히 가능성만으로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제도 설계 과정에서 과학적인 기준과 절차를 충분히 판단하지 않는다면 제도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재범 위험성 평가 도구에 대한 전문가들의 과학적 연구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당연히 위험성 평가 판단의 절차와 기준에 대한 법 규정도 없다. 재범 위험성 판단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검사가 자의적으로 보호처분을 청구할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경쟁하듯 성범죄자 격리를 위한 법안을 내놓았다. 보호처분 제도 역시 이 가운데 하나다. 이미 지난 9월 국민의힘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한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 논의를 거쳐 ‘보호수용법’을 발의했고, 민주당은 ‘친인권적’이라는 포장지를 씌워 비슷한 제도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여야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논의’라고 강조하지만 정작 여성계와 인권단체 쪽은 “미봉책”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시민들의 분노와 공포에 기댄 ‘사이다 처방’에 매몰돼 성범죄를 막는 근본 대책에 제대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산인권센터는 지난 10일 입장문을 내어 “범죄자를 더 오래 구금하고, 출소 후에는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감시를 강화하자는 것은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을 고려하지 못한 미봉책일 뿐”이라며 “국회와 정부는 이러한 범죄의 근본적 원인을 다룰 수 있는 정책, 피해자를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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