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
29일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차지하게 된 것을 놓고, 안팎에선 이런 평가가 나온다. 원하는 대로 상임위를 쥐락펴락할 수 있지만, 권한만큼 책임이 따르고 부담도 더 클 수밖에 없다. 여당은 그동안 ‘야당의 발목잡기’에서 벗어나 책임정치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입법부가 행정부·사법부를 견제하는 ‘3권 분립’ 원칙이 21대 국회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 민주당 법안처리 ‘속도’…“176석의 자신감”
민주당은 상임위원장 선출이 끝난 만큼 3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 들어가며 ‘일하는 국회’의 모양새를 취했다. 30일 오전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심사를 마무리한 뒤 임시회 마지막날인 새달 3일에는 반드시 추경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한 의원은 “6월 임시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7월 임시국회를 소집할 예정이다. 인사청문회 대상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을 포함하는 인사청문회법·국회법 개정안 등 처리해야 할 법안이 많다”고 말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준법 출범’도 강조했다. 이해찬 대표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미래통합당이 공수처 출범을 방해하면 민주당은 공수처법 개정을 포함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서라도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현재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7명 중 2명은 야당 교섭단체가 추천하게 돼 있는데, 통합당이 시간끌기로 버티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공수처를 출범시키겠다는 취지다.
이날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한 배경은 결국 거대 여당의 ‘자신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강신구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당이 지지부진하니까 우리가 세게 나가도 국민이 욕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 작용한 거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거여 독주체제를 길게 끌고 가는 것은 민주당에도 부담이다. 민주당 안팎에선 당장 급한 3차 추경안 처리를 마치면 국정조사 등 통합당의 요구안 일부를 수용해 원내 복귀의 명분을 만들어준 뒤 국회 정상화를 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국회가 통법부 소리 안 듣게 고민해야”
‘야당 진공’ 상태에선 작은 실수라도 여당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민주당 입장에선 위험한 상황으로 간 게 맞다. 경제나 남북관계에서 관리가 안 되면 100% 청와대, 정부, 집권당의 책임”이라며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렇게 되면 철저하게 제도와 법을 지켜가면서 가야 한다. 한 발자국이라도 어물쩍 넘어가면 바로 백래시(반발)가 엄청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에 대한 견제가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모든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차지하고, 상임위마다 야당이 수적으로 절대 열세이기 때문에 야당의 견제라는 게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지도 미지수”라며 “민주당으로서는 어떻게 해야 국회가 행정부가 만들어준 법을 그대로 통과시켜주는 ‘통법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수적으로 우세하더라도 야당과 협치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나왔다. 유창선 평론가는 “지난 총선에서 통합당도 40% 이상 표를 얻었다. 여당으로서 야당을 지지했던 민심을 반영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며 “민주당이 그 점에 대해서 책임 있는 긴장감을 내려놓아선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영지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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