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4일 오전 국회 정의당 대표실에서 만나 자리에 앉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연일 민생·경제 관련 화두를 던지며 정책 주도권 확보를 노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제기한 정책 이슈들에 협력 의사를 밝히며 통합당의 ‘변화 의지’를 부각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이런 시도가 당내 반발을 제압하고 당의 현실적 변화를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선이 여전하다.
김 위원장은 4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을 거듭 밝혔다. 그는 “인공지능 등 신기술이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고용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소득 보장이 필요하다”며 “기본소득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해야 하고, 제대로 시행하려면 재정 뒷받침은 어떻게 할 것인지 계속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재원 조달 방식에 대해서는 구체적 견해를 내놓지 않았다. 그는 “적자 재정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현행 우리나라 세입 구조에선 상당히 요원하다”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기본소득은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등 여권 잠룡들이 먼저 수면 위로 끌어올렸지만 김 위원장이 전면에 들고 나서면서 논의 물꼬가 트였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선 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민주당이 추진해온 정책과 방향이 같은 의제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비대면 진료를 포함한 케이(K)헬스케어 정립 △리쇼어링에 대한 파격적 재정지원 △플랫폼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4대 보험 의제화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위한 데이터청 설립 등이다. 또 정부와 여당을 향해 “반대를 위한 반대는 더는 하지 않겠다. 국가 혁신, 경제 성장에 도움되는 정책과 예산에는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첨예한 논란이 일고 있는 비대면 진료에 대해서도 “비대면 진료를 포함한 디지털 뉴딜정책의 정착을 위해 협력하겠다”며 청와대 기조에 힘을 실었다.
김 위원장이 ‘진보 의제’로 간주돼온 이슈들에 대해 거침없이 의견을 내놓자 통합당 내부에선 우려와 기대가 엇갈린다. 장제원 통합당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기본소득에 대한 우려를 밝히며 “청년이나 노인 계층만 기본소득제에 편입시키려 한다면 청년수당 확대나 기초 노령연금 인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 초선의원은 <한겨레>에 “그동안 통합당이 외면했던 정책 지향과 의제들을 제시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문제의식을 갖고 논의하면서 대안을 만들면 된다”고 했다. 다만 김 위원장의 새로운 정책 제안이 전략적 메시지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포스트 코로나’ 이슈를 선점하고 ‘보수가 변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면서 중도 쪽으로 지지층을 확장하려는 계산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도 “좌다 우다, 진보다 보수다 그런 논쟁 자체가 국민 생활과 관계가 없다. 어려운 국민에게 어떻게 잘 다가갈 수 있느냐를 생각하며 정책 경쟁을 해야 한다”며 탈진영적 사고를 강조했다. 심 대표는 “불평등 해소, 기후위기 극복을 중심에 두고 통합당이 적극적으로 정책을 제안하면 여당도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미나 서영지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