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엔(n)번방’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를 앞다퉈 막겠다던 여야가 선거가 끝났는데도 사실상 법안 처리에 손을 놓고 있다. 선거에 참패한 미래통합당이 국회 의사일정을 논의하기 위한 원내대표 회동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이대로 20대 국회가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 차곡차곡 쌓이는 엔번방 법안
국회가 멈춰선 동안 엔번방 관련 법안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형량을 높이는 법안이 잇따라 제출되고 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디지털 성범죄를 비롯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범위와 형량을 높이는 형법 등 6개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여기에는 피해자가 동의를 표했더라도 성폭행으로 처벌할 수 있는 미성년자의 나이(미성년자 의제 강간죄 연령)를 현행 13살에서 16살로 높이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피해자 수에 따라 상습범을 가중처벌하고, 성폭행 예비나 음모죄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앞서 지난 20일에는 백혜련 민주당 디지털성범죄근절대책단 단장이 미성년 성착취물 소지 때에 최소 1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을 내놨다. 현행 법률에는 1년 이하 징역형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규정되어 있다. 개정안에는 판매·배포·제공 등의 경우 형량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엔번방 재발방지 3법’이라고 불리는 형법·성폭력처벌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엔번방 방지법은 미래통합당도 적극적으로 처리를 약속했던 법안이다. 미래통합당은 지난 3일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일말의 정략적인 정쟁을 단호히 거부하며 진지한 성찰의 자세로 문제 해결에 임할 것을 약속한다”며 티에프(TF)를 구성하기도 했다.
■ 왜 처리 먹구름?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만나 국회 의사일정을 협의하려고 했으나, 통합당이 당 수습 방안을 두고 내홍을 겪으면서 회동이 불발됐다. 국회법상 여야가 의사일정에 합의하지 못하면 의장이 이를 결정하게 돼 있다. 민주당은 일단 회동 시한을 22일로 못 박았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날 “통합당 나름대로 수습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마냥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내일 중으로 더 기다려 보고, 그렇게 해도 안 되면 고민을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역대 국회 상황을 보더라도 임기 말이라고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17대 국회에서는 여야가 총선 뒤 7차례 본회의를 열어 교섭단체 대표 연설, 대정부질문 등을 이어가며 논쟁을 했다. 당시는 쇠고기 재협상 논란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 등으로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했다.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한 법은 그 유명한 ‘국회 선진화법’이다. 몸싸움 방지법으로 불리는 이 법으로 패스트트랙,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예산안의 본회의 자동부의, 폭력을 동반한 회의방해 금지 등이 도입됐다. 19대 국회에서도 ‘신해철법’으로 불리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무쟁점 법안 135건이 의결됐다.
서영지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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