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당직자들과 당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를 마친 뒤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20일 광화문을 붉게 물들인 대규모 장외집회는 향후 황교안 체제의 자유한국당이 어디로 갈 것인지 보여주는 ‘예고편’ 성격이었다.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뒤 급격하게 추락한 지지율을 서서히 회복하는 것에 발맞춰 현 정부에 대한 ‘심판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하지만 장외집회는 ‘종북’ 레토릭에 갇혔고, ‘철 지난 색깔론’이 되풀이되면서 한국당이 몰락 전 새누리당과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좌파 딱지’를 주무기로 삼았던 공안검사 출신 당대표와 탄핵 이후 집결한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교감하면서 한국당의 극우 성향이 강화되고 ‘보수 혁신’은 더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날 집회는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에 항의하는 자리였지만, “종북 외교” “좌파 독재” 등의 구호에 묻혀 기승전‘색깔론’으로 끝났다. 취임 두달 만에 처음으로 광화문 장외투쟁에 나선 황교안 대표는 “문재인 정권이 지난 2년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좌파 천국을 만들어놨다”며 “경제를 살릴 외교는 보이지 않고, 김정은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 대표는 이어 “우리 관광은 망하고 있는데 금강산 관광 이야기할 때인가.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행 특급열차를 타고 망하는 길로 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 대표는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며 “힘도 없는 지난 정권 사람들을 나이가 많아도, 큰 병에 시달려도 끝내 감옥에 가둬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청와대로 향하는 붉은 한국당 깃발과 함께 곳곳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부꼈다. ‘5·18 망언’ 토론회 주최와 망언으로 당 징계위에 회부됐으나 ‘경고’ 징계를 받는 데 그친 김진태 의원도 참석했다.
당 안팎에서는 이날 집회를 포함한 황 대표의 최근 행보와 관련해 ‘당내 기반을 다진 황 대표가 전통적 지지층을 불러내 보수 대표 주자의 입지 굳히기에 돌입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친박계 핵심 인사는 21일 “같은 ‘태극기’ 내에서도 자유한국당과 결합을 고민하는 등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며 “강한 정권교체 의지를 보이는 곳으로 뭉치게 돼 있다. 태극기 부대건 중도보수건 보수 대통합의 구심은 자유한국당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도보수 통합의 대상인 바른미래당의 ‘내홍’을 일단 지켜보고, 그 전에 박 전 대통령의 전통 지지층부터 다져놓는 수순인 셈이다.
당내에서는 황 대표의 거침없는 발언 등에 대해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한 비박계 의원은 “‘보수 혁신’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풀기보다, 문재인 정부 지지율 하락에 힘입어 당 바깥 투쟁으로 시선을 돌리는 형국”이라며 “철 지난 ‘박근혜’ 타령으로는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는 야당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노골적인 ‘태극기 끌어안기’가 대안 야당으로 당을 혁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정치권의 시선은 싸늘하다. 이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색깔론과 막말로 또다시 국민을 괴롭히고 있다. 민생과 안보를 지키고자 한다면, 자유한국당과 황교안 대표가 있어야 할 곳은 거리가 아니라 국회”라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도 논평을 내어 “좌파 독재를 빼고는 말의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 집단 같다”고 꼬집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이 거리로 나가는 등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면서 남은 4월 국회의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정치적 대화나 타협의 가능성도 매우 낮아졌다. 당장 처리해야 할 시급한 법안 탓에 여당과 청와대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길에 오르면서 “국회에서 최저임금 결정 구조 개편과 탄력근로제 개선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여당에 당부하며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해 쟁점 사안들을 해결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라면 여야정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정유경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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