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광장 집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 살릴 외교는 전혀 하지 않고 김정은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변인 소리를 듣는다’는 지난달 나경원 원내대표의 ‘색깔론’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취임 이후 두 달여 만의 첫 장외집회에서 황 대표가 굳이 색깔론을 들고나온 건 매우 유감스럽다. 황 대표와 자유한국당은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의 망령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황 대표는 “문 대통령은 대북제재를 풀어달라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구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을 대변하는 일을 중단하고 무너진 한-미 동맹을 복원하라”고 말했다. 제1야당 대표가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을 북한 지도자의 수하 정도로 묘사하는 건 지나치다. 현 정권에 색깔을 덧칠함으로써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수준 낮은 공세다. 문 대통령의 비핵화 외교는 북한과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평화를 견인해보려는 고육책의 일환이다. 이를 냉전적 틀에 얽매여 북한과 엮으려 드는 건 무리한 공세다. 특히 나 원내대표의 발언이 문제됐음에도 황 대표가 집회에서 이를 다시 꺼내든 건 그 저의마저 의심케 한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좌파독재를 끝낼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도 했다. 현 정권을 ‘좌파독재’로 규정했는데, 이것 역시 일종의 색깔론이다. 문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미선 헌법재판관 등을 임명한 것을 강하게 비판할 순 있지만, 이를 좌파독재라고 하는 건 다르다.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주어진 권한에 따라 인선하는 것을 ‘독재’로, 자신들의 이념 잣대에 맞지 않는 인사라고 해서 ‘좌파’로 딱지를 붙이는 건 억지에 가깝다.
문제는 공안검사 출신인 황 대표의 색깔론적 인식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황 대표는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권의 핵심은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라며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이들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운동권 출신이 핵심인 현 정권을 끝장내야 한다’는 식의 극우적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20일 광화문 집회에는 그동안 줄곧 집회를 해오던 태극기부대 일부도 합류했다고 한다. 황 대표와 제1야당이 자꾸만 색깔론을 쥐고 흔드는 구시대적 극우정당으로 퇴행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