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국회·정당

국회서 벌어진 유튜버들의 ‘욕 배틀’…‘5월 어머니들’은 울었다

등록 2019-02-08 21:51수정 2019-02-11 11:33

김진태·이종명 주최 ‘5·18 공청회’
왜곡·망발 이어진 행사장 안팎 풍경
싸우는 이들과 중계하는 이들.
싸우는 이들과 중계하는 이들.
국회 담당 기자는 국회로 출근해 거기서 퇴근하곤 한다. 서울역 앞이나 광화문에서 열리는 ‘태극기 집회’는 자세히 볼 일이 많지 않다. 8일 “5·18은 북한군 짓”이라고 주장하는 극우 인사 지만원씨가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았다.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가 이곳에서 열린 것이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이종명 의원이 주최해 국회에서 이런 행사가 열릴 수 있었다. 태극기, 미국 성조기, 선글라스, 빨간 모자, 욕설, 몸싸움이 뒤엉킨 생경한 풍경이 이날 국회에서 펼쳐졌다.

공청회는 오후 2시부터였다. 435석 규모의 의원회관 대회의실은 1시 반부터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민원실 입구는 신분증을 방문증으로 교환하려는 이들로 가득 찼다. 60대 이상이 다수였다.

국회 의원회관에 들어오기 위해 줄 서 있는 참석자들.
국회 의원회관에 들어오기 위해 줄 서 있는 참석자들.
복도와 계단까지 가득 찬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복도와 계단까지 가득 찬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5월 어머니 네분은 전날 저녁 광주 송정역에서 케이티엑스(KTX)를 탔다. 5월 단체 분들은 “무시하자” 했지만 “열불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며 올라왔다고 했다. 한국당의 ‘5·18 진상규명조사위’ 위원 추천을 촉구하며 국회에 항의 방문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때였다. 오후 1시께 어머니들의 ‘위치’를 물으니 “의원회관 4층 김진태 의원실 앞”이라고 했다. 공청회를 주최한 김 의원이 행사장에 못 가게 막으려고 올라간 것이었다. 어머니들의 시도는 무산됐다. 김 의원은 이 때 국회에 없었다. 애초 공청회장을 방문할 계획이 없었다. 포항을 찾아 포스코 등을 방문했다. ‘자리’만 깔아주고 한국당 전당대회 선거운동에 매진한 것이었다. 2시가 되자 참석자는 1500여명으로 늘어났다. 공청회장 복도와 계단에 빽빽이 앉고도 다 들어가지 못할 숫자였다.

공청회장 앞은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연로한 5월 어머니들을 대신해 조선의열단 기념사업회 등 다른 단체 회원들이 ‘전투’에 나섰다. 지만원씨 사진에 ‘매국노’라고 적은 종이를 가져와 펼쳐 들었다. “전두환은 반란 수괴다!”, “전두환은 개XX다”라고 외쳤다. ‘광주를 모욕하지 말라’, ‘진실을 왜곡 말라’ 등의 펼침막을 준비한 이들도 있었다.

상대방은 싸울 준비가 충분히 돼 있었다. 사방에서 일제히 욕설이 쏟아졌다. “저 빨갱이를 체포하라!”, “전두환이 왜 수괴냐! 이 XX아!”, “5·18 이 가짜 유공자 XX들아!”, “매국노 앞잡이들!”, “전두환 만세!” 50여명이 뒤엉켰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빨갱이’였다.

상황이 무르익을 수록 ‘장비’들이 늘어났다. 참석자들은 셀카봉이나 삼각대를 펼친 뒤 휴대전화를 능수능란하게 연결했다. 휴대전화 두 대를 동시에 매단 이도 있었다. 한 참석자는 통신 장비가 달린 캠코더를 들고 왔다. 50~60대가 많았다. 유튜버들이었다. “지금 이 현장을 낱낱이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2인 1조’로 마이크에 대고 현장을 생중계하는 이들도 보였다. 한 유튜버는 빨간 모자를 쓴 참가자에게 “김정은 개XX라고 해보라”고 했다. 다른 쪽에선 “넌 아베 개XX 해봐라!”가 튀어나왔다. 서로 잘 아는지, 인사를 나누는 이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기성 언론’ 카메라 수보다 유튜버 카메라 수가 3배는 돼 보였다. 욕설과 중계 소리가 겹쳐 혼란은 배가 됐다. 밀치고, 같이 뒹굴며 넘어지고…. 몸싸움까지 이어지자 여의도지구대에서 경찰이 출동했다.

몇 부류의 큰 싸움이 정리된 뒤 유튜버들과 참석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카메라 앞에서 산발적으로 ‘배틀’과 ‘인터뷰’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보수 참석자들도 있었다.

“이 상황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이 빨갱이 XX들아!”

“자, 한 번 붙어보자고! 어?”, “저 XX는 지능이 6살밖에 안 돼서 전두환이 얼마나 위대한지 몰라!”

“이 XX XX야!”, “뭐 이 XX XXX아!”

60대 참석자들의 모습은 흡사 ‘랩 배틀’을 연상하게 했다. 정확히는 ‘욕 배틀’이었다.

안에 들어가지 못하자 복도에서 티브이(TV) 생중계를 보며 경청 중인 참석자들.
안에 들어가지 못하자 복도에서 티브이(TV) 생중계를 보며 경청 중인 참석자들.
지만원씨 발언을 중계 중인 보수 유튜버들.
지만원씨 발언을 중계 중인 보수 유튜버들.
공청회가 시작됐는데도 들어가지 못한 참석자들은 복도 티브이(TV) 앞에 모여 학구열을 불태웠다. “더 큰 화면은 없냐”는 요구에 의원실 관계자들은 난색을 보였다. 티브이 왼쪽으로는 중계 참여자들의 채팅 문구가 실시간으로 올라갔다. 다수 유튜버들은 공청회장 안 중계에 집중했다. 한 60대 유튜버가 공청회장 앞 중계에 집중하다 안에 뒤늦게 들어가려 하자 빨간 모자를 쓴 진행자가 저지에 나섰다. “안에 빨갱이 XX 한 마리가 있어서 잡아내야 합니다. 빼낼 때까지 못 들어가요. 기자님.” 나에게 한 소리인 줄 알았는데 ‘기자님’은 60대 유튜버에게 한 말이었다. 잠시 뒤 ‘쿵쿵’ 소리가 안에서 나더니 한 남성이 쫓겨 나왔다.

복도 한쪽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5·18 유족 이근례씨가 갑자기 몸을 움직였다. 공청회장에 들어가겠다며 돌진한 것이었다. 다른 어머니들과 단체 분들이 말리고, 보수 참석자들이 밀치면서 또다시 혼란이 커졌다. “이 빨갱이가! 가만 안 둬!”

공청회장 안에 들어가려는 5월 유족과 말리는 단체 회원들.
공청회장 안에 들어가려는 5월 유족과 말리는 단체 회원들.
“여기가 어디냐! 국회다!”, “우리 새끼들이 빨갱이냐!”, “우리가 광주다!” 이씨를 비롯한 어머니들은 밀려나며 울부짖었다. 5·18 때 남편을 잃은 박유덕씨는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데 이런 소리를 들으려고 지금까지 살아온 줄 아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원망스럽다. 이렇게 우리를 왜곡하고 지만원은 보호해주는 한국당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공청회장 안에선 한국당 의원들의 축사에 박수가 쏟아졌고, 복도 한쪽에선 티브이 중계를 보는 이들이 호응이 이어졌고, 다른 한쪽에선 5월 어머니들의 고함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2019년 국회의 모습이었다.

글·사진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속보] 권성동 “탄핵소추안 표결 참여하자”…의원 총회서 제안 1.

[속보] 권성동 “탄핵소추안 표결 참여하자”…의원 총회서 제안

박근혜 때와 다른 ‘윤석열 탄핵’ 방청…일반인 출입 막는 이유는? 2.

박근혜 때와 다른 ‘윤석열 탄핵’ 방청…일반인 출입 막는 이유는?

“대세 넘어갔다” 당내 중론인데…권성동 “탄핵 반대 당론” 고집 3.

“대세 넘어갔다” 당내 중론인데…권성동 “탄핵 반대 당론” 고집

김건희 ‘비리 의혹’ 다룬 영화 ‘퍼스트 레이디’ 1만 관객 돌파 4.

김건희 ‘비리 의혹’ 다룬 영화 ‘퍼스트 레이디’ 1만 관객 돌파

[단독] 내란 군 병력 1644명 ‘사단급’…방첩사, 고무탄·가스총 무장 5.

[단독] 내란 군 병력 1644명 ‘사단급’…방첩사, 고무탄·가스총 무장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