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이낙연(65) 전남지사를 지명한 것은 선거 과정에서 약속해온 ‘대탕평 인사’ 원칙의 반영이다. ‘호남 총리’를 기용함으로써 지역균형 인사라는 대의를 얻어냄과 동시에 문 대통령에게 덧씌워진 ‘호남홀대론’ 프레임을 걷어내려는 뜻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 인사 발표 기자회견에서 “선거기간 중에 새 정부의 첫 총리를 대탕평·통합형·화합형 인사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며 “이낙연 지사가 그 취지에 맞게 새 정부의 통합과 화합을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한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부산 출신인 문 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대탕평, 국민 대통합 차원에서 국무총리를 인선하겠다”며 ‘비영남 총리’를 언급한 바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호남은 가장 중요한 국정운영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밝혀온 만큼 호남 인사들이 총리 하마평에 올라왔다.
전남 영광 출신인 이 후보자는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 뒤 전남 함평·영광 등에서 내리 4선 의원을 지냈고, 2014년 지방선거에선 전남지사에 출마해 당선됐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이 지사는 단순히 호남을 고향으로 둔 정치인이 아니라 호남에서 지역민들과 스킨십을 쌓으며 정치를 해왔다. 탕평인사 차원에서 호남 출신을 발탁할 때 적임자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손학규계’인 이 후보자는 문 대통령과 가깝게 지내온 사이가 아니지만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의 대변인을 맡은 일이 있어 ‘가치’와 ‘철학’은 공유한다. 올해 초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광주를 찾았을 때 “이 지사를 국정의 동반자로 모시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무총리에 지명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열흘 전쯤 문 대통령 쪽의 임종석 비서실장으로부터 “준비해달라”는 말을 들은 것이 전부라고 한다.
호남 출신의 여러 후보군 가운데서도 문 대통령이 “원만하고 온건한 중도파”라는 평가를 듣는 이 후보자를 일찌감치 낙점한 것은 총리 인준안 통과를 비롯해 정권 초기 야권과의 협치를 고려한 포석이다. 이 후보자는 현역 의원 시절 대변인을 다섯 번이나 맡을 정도로 소통에 능하고, 다른 정당의 의원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편이었다. “통합 내각을 신속히 출범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인사가 총리로서 첫 내각을 이끌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설명에 부합한다. 무사히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새 정부 출범이 발목 잡히지 않을 만큼 무난한 평판과 도덕성을 갖춘 인사를 발탁한 셈이다.
이 때문에 여당인 민주당은 총리 임명동의안 통과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 후보자는 야당 중진의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다. 인선 이후 야당에서 이렇다 할 비판 논평이 나오지 않는 건 긍정적 신호다”라고 말했다. 이날 바른정당이 논평을 내어 “인사청문 과정을 통해 선입견과 편견 없이 국민 여망에 부응하는 인사인지 도덕성과 국정운영 능력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혔지만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이 후보자 지명에 대해 별도의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호남에 기반한 국민의당의 경우 전남 출신인 이 후보자를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손학규 국민의당 상임선대위원장은 이날 “총리 인준은 하루빨리 해결해 국정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이낙연 후보자는 내각 기용이 공식화되자 이날 오전 연가를 낸 뒤 전남 무안의 공관에서 곧바로 상경했다. 그는 이날 인사 발표 기자회견에서 “막걸리라도 마셔가며 야당 정치인과 틈나는 대로 소통하겠다. 접점은 찾아서 키우고 의견 차가 큰 것은 뒤로 미루는 지혜를 발휘하겠다”고 말했다. 당장 당면한 과제로는 “안보·외교 위기 타개”를 꼽았고 “중장기적으론 위기를 타개한 바탕 위에서 당당한 평화국가로 위상을 세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엄지원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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