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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혁신은 간데없고 ‘친박-비박’ 구태만 재탕

등록 2016-08-05 20:09수정 2016-08-05 20:20

[토요판] 뉴스분석 왜?
새누리당 전당대회 전망
3일 오후 전북 전주시 중화산동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제4차 전당대회 호남권 합동연설회에서 당대표 경선에 나선 후보들이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맨 앞줄엔 당대표 경선에 나선 이정현, 이주영, 정병국, 주호영, 한선교 후보(왼쪽부터)가 앉아 있다. 전주/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3일 오후 전북 전주시 중화산동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제4차 전당대회 호남권 합동연설회에서 당대표 경선에 나선 후보들이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맨 앞줄엔 당대표 경선에 나선 이정현, 이주영, 정병국, 주호영, 한선교 후보(왼쪽부터)가 앉아 있다. 전주/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오는 9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새누리당의 차기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열린다. 지난 총선 패배의 원인을 찾고, 내년 대선에 앞서 당의 진로를 찾아야 하는 전당대회다. 그러나 전당대회는 치열함도 없이 밋밋하게 진행돼왔다. 5일 이뤄진 비박계의 후보단일화로 선거 판세가 막판에 요동치고 있지만, 순전히 눈앞의 당권을 둘러싼 계파 대결일 뿐이다. 집권 여당의 전당대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당대회 이후의 모습은 어떨지 들여다봤다.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막판에 출렁이고 있다. 비박계인 정병국, 주호영 두 후보가 당원선거인단 투표를 이틀 앞둔 5일 오후 전격적으로 주 후보로 단일화했다.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이정현, 이주영 후보 등 친박계 후보에게 밀렸던 주호영 후보가 비박계 단일화를 계기로 판세를 뒤집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비박계에서는 단일화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 후보와 친박의 이정현, 이주영 후보 간 표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두 후보는 선거인단이 많은 수도권(전체의 34%)과 대구·경북(21%)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비주류의 색채가 그다지 강하지 않은 주 후보가 수도권의 표를 제대로 흡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비박계의 전격적인 단일화가 이뤄지자 친박계도 술렁이고 있다. 비박계 후보 1명에 친박계의 이정현, 이주영, 한선교 후보 3명이 1 대 3으로 붙으면 표 분산으로 당권을 놓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7일부터 투표여서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뿐더러 그동안 비박계의 단일화를 “명분 없는 야합”이라고 비판해왔기에 가시적인 후보 단일화는 쉽지 않다. 더구나 이정현 후보는 “상황 변화가 생겼다”며 단일화 가능성에 문을 열어놓고 있지만, 탈계파를 선언한 이주영 후보는 완주 의지가 강하다. 또 친박계가 단일화를 추진할 경우 계파 대 계파 대결을 정면으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역풍이 불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친박 쪽에서는 투표를 통한 자연스런 단일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주말까지 상황을 점검한 뒤에 친박계 의원 및 당협위원장에게 특정 후보 쪽으로 표를 몰아주라는 주문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친박계 사정을 잘 아는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 와서 친박계 후보 단일화는 명분이 없다”며 “다만 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지침을 내릴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이정현, 이주영 후보 가운데 누구를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릴 만큼 원조 친박계인 이정현 의원으로 갈 경우 청와대와의 원활한 관계는 장점이지만, 친박계의 당 장악이라는 당 안팎의 비판을 살 수 있다. 중립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이주영 후보는 계파간 갈등 조정이나 대야 관계에서는 이점이 있지만, 추진력 면에서는 약하다. 현재 친박계의 분위기는 이정현 후보 쪽이 더 강하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는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는 후보를 제치고 2위 후보를 밀어주는 것은 맞지 않다”며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당이 확실히 뒷받침하기 위해서도 이정현 후보가 낫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 후보들의 독자적인 조직력이 만만찮은데다 의원 및 당협위원장의 당원 장악력이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약해 친박계의 투표 지침이 얼마나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국민과 거리 먼 그들만의 전당대회

계파 대결로 치닫기 전에도 새누리당의 전당대회는 국민과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행사였다. 지난 3일 오후 전북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호남권 합동연설회는 알맹이 빠진 전당대회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첫번째 연설에 나선 이정현 후보는 “호남 출신인 저 이정현이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당대표가 되면 그 자체가 사건이고 역사이며, 대변화”라며 ‘호남 당대표론’을 설파했다.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점퍼 차림에 밀짚모자를 쓴 채 연단에 오르는 등 서민 이미지를 강조했다. ‘혁신단일후보’임을 내세우는 정병국 후보는 “계파 해체는 혁신과 정권 재창출의 전제조건”이라며 “계파 패권주의에 기댄 사람들은 반드시 책임지고 전면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넥타이를 매지 않은 흰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연단에 올라 연설 도중 연신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어 연단에 선 이주영 후보는 “우리 당에 진짜 중요한 것은 ‘새누리당의 혁신’과 ‘박근혜 정부의 성공’ 그리고 ‘정권 재창출’”이라며 ‘친박’ 성향을 강조했다. 이 후보는 연설에 앞서 호남에서 새누리당에 2석을 준 유권자에게 감사하다며 청중을 향해 큰절을 하기도 했다. 또다른 친박계인 한선교 후보도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를 성공시켜야 한다”고 외쳤다. 마지막에 연설을 한 주호영 후보는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는 저 주호영이 당대표가 돼야만 이 지긋지긋한 싸움이 끝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당대표가 되어야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다는 일방적 주장만 난무했을 뿐 새누리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둘러싼 논쟁은 전혀 없었다. 당 혁신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정당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자기성찰의 목소리는 없었다. 대신 호남 발전을 위해 새만금 개발을 서두르겠다거나 지역석패율제를 도입해 호남의 새누리당 의원이 더 나올 수 있게 하겠다는 등의 지역 맞춤형 얘기만 넘쳤다. 한마디로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표 경쟁, 목소리 경쟁만 넘쳤다. 5일 오후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충청권 합동연설회도 대동소이했다.

최고위원 경쟁에서는 친박계 후보들이 벌써부터 ‘박근혜 친위대’처럼 행동했다. 친박 핵심 중 한 명인 조원진 후보는 호남권 합동연설회에서 비주류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고 있는 김무성 전 대표를 직접 지목해 “김 전 대표에게 건의한다. 이제 밖에서 이런 행위는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충고드린다”고 말했다. 말이 좋아 건의, 충고이지 사실상 경고장을 내는 듯했다. 친박 돌격대 중 한 명인 이장우 후보도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 후보는 “대통령의 성공 없이 어떻게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겠나. 야당이 무책임하게 대통령을 흔들 때 당내에서조차 대통령을 흔들면 이 당은 뭐가 되겠냐”며 박근혜 지킴이를 자랑했다.

당 비전과 혁신 논쟁 없이
난쟁이 키재기식 당권 쟁투
최고위원 나선 강성 친박
‘박근혜 지킴이’ 자처하기도
국민 외면에 흥행은 저조

이정현-이주영 등 친박 강세에
정병국-주호영 막판 단일화
역전 가능할지 주목
김무성이 단일화 막후 주도
친박 반발로 후유증 예상

3일 오후 전북 전주시 중화산동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제4차 전당대회 호남권 합동연설회장 모습. 청중석에는 각 후보의 지지자들이 따로 모여 앉아 있으며, 천장에는 대표 후보자 5명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전주/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3일 오후 전북 전주시 중화산동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제4차 전당대회 호남권 합동연설회장 모습. 청중석에는 각 후보의 지지자들이 따로 모여 앉아 있으며, 천장에는 대표 후보자 5명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전주/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영남과 책임당원 표가 당락 좌우

연설회를 지켜본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총선 때 중도를 끌어들이지 못한 이유가 뭔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양극화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해서는 어떤 해법을 가지고 있는지 등 정치적 비전과 당의 미래를 놓고 논쟁하는 전당대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가치 경쟁은 없이 패권만 다투고 있다”고 말했다.

전당대회 투표는 7일과 9일 두 차례 이뤄진다. 7일에는 전국 252개 시·군·구 투표소에서 당원선거인단과 청년선거인단이, 전당대회 당일인 9일에는 대회장인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대의원들이 투표한다. 두 번에 걸친 당원 및 대의원들의 투표(70%)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30%)를 합해 최종 승자를 가린다. 새누리당이 이번에 확정한 선거인단은 모두 34만7506명이며, 이 중 대의원은 약 9천명, 책임당원 선거인이 28만8천여명, 일반당원 선거인은 약 4만1천명, 청년선거인 8천여명이다. 선거인단 가운데 대구·경북(7만3천명·21%)과 부산·울산·경남(8만4천명·24%)을 합한 영남권 선거인단이 15만7천명으로 45%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의 선거인단은 전체의 34%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1년에 6개월 이상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의 표심인데, 전체 선거인 수에서 책임당원은 82%(28만8천여명)에 이른다. 새누리당에 대한 애정이 깊고, 대체로 보수성향이 강한 책임당원들의 표심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선출되는 새누리당 대표는 최고위원 가운데 표를 많이 받은 대표가 아니라 최고위원과 별도로 치러지는 선거를 통과한 명실상부한 당의 일인자다. 14년 만에 부활하는 단일지도체제를 이끄는 인물이다. 또 차기 대선주자 선출 등 내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 준비를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어느 때보다 중요한 자리를 뽑는 전당대회임에도 과거와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국민적 관심도가 낮다. 김무성 대 서청원의 끝장 대결이었던 2014년 전당대회, 강재섭 대 이재오의 사생결단식 싸움이 벌어졌던 2006년 전당대회 분위기와 대조적이다.

흥행이 안되는 이유는 후보들의 중량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탓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이주영, 정병국 후보는 5선임에도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이며 한선교, 이정현, 주호영 후보 역시 정치적 무게감이 떨어진다. 또 뚜렷한 대선주자가 부각되지 않는 것도 전당대회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김무성 전 대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은 전당대회와 거리를 두고 있다. 대선주자 대리전이 아닌 까닭에 중반까지는 밋밋하게 진행돼왔다.

그러나 비박계 단일화를 김무성 전 대표가 사실상 주도하고, 친박계가 여기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전당대회는 계파 대결 양상뿐 아니라 내년 대선과의 연계성이 강해졌다. 당내 대선 구도도 복잡하게 얽힐 수밖에 없다. 비박 단일화는 일단 김 전 대표가 조기에 승부수를 띄우는 측면이 강하다. 그는 정병국-주호영 단일화에 대해 “단일화된 후보를 지지하겠다”며 공개적으로 단일화를 촉구했다. 이번 합의에도 비서실장을 지낸 김학용 의원을 내세워 두 사람을 설득해왔다.

조급한 김무성 전 대표의 승부수

김 전 대표가 비박계 후보 단일화에 매달린 것은 단일화하지 않을 경우 당권이 친박계로 넘어가며, 그렇게 되면 내년 대선주자 경선에서 자신이 불리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친박계 후보들은 내년 대선과 관련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외부 인사 영입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이주영 후보는 5일 오전 <교통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새누리당에 유력 대선 주자가 없지 않냐”며 “외부 인사 영입까지도 우리가 해야 된다”고 말했다. 이정현 후보도 이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대선에 관한 한 친박계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청와대와 친박계 주류가 반기문 총장 영입을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따라서 대선주자 행보에 나선 김 전 대표로서는 친박계 당대표의 출현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전당대회에서 그가 지지한 후보가 대표가 될 경우 대선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는 판단도 했음 직하다. 계파 대결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그가 비박계 단일화에 뛰어든 이유다. 김 전 대표의 비박계 후보 단일화 개입은 또 박근혜 대통령과의 대립각을 세워나가겠다는 의미다. 그가 최근 사드 성주 배치 문제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대구·경북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데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전당대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새누리당의 계파 갈등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파인 계파 간 감정의 골도 차기 대선 경쟁과 맞물리면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전당대회 이후에는 유승민 의원 등 다른 대선주자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당을 장악해 청와대와 주파수를 맞추려는 친박계와 당의 독자성을 확보하려는 비박계의 갈등도 점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주/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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