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호 암초로 돌진하는데
배 탄 사람들이 방향 못틀어”
문·안 포함 비상 지도체제 모색
배 탄 사람들이 방향 못틀어”
문·안 포함 비상 지도체제 모색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경기도가 지역구인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재선 의원은 “우리 당 지지자들이 화가 잔뜩 나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도저히 못 살겠는데 제1야당이 쪼개진다는 얘기까지 나오니, 해도 너무한다’며 혀를 찬다”고 전했다. 그가 보기에 야권 지지자들의 마음이 급격히 돌아선 변곡점은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각각 제안한 ‘문재인-안철수-박원순 공동지도부’, 혁신전당대회에 대해 양쪽이 모두 거부하면서 대립했던 11월말~12월초다. 그는 “그 전에만 해도 호남향우회 등에 소속된 전통적 지지자들이 당내 갈등과 문 대표에게 불만을 품는 정도였는데 보름 전부터는 젊고 개혁적인 유권자들마저 문 대표, 안 의원 모두를 원망하며 속속 마음을 접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중인 인천의 한 원외위원장이 전하는 민심도 다르지 않다. 그는 “지금 새정치연합 상황은 암초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데 선장을 비롯해 배에 탄 사람들은 방향을 틀 줄 모르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싫다며 우리 당에 우호적이던 중도층·무당파들도 요즘 들어선 ‘당내 상황부터 정리한 다음에 찍어달라고 해라’며 외면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또다른 의원은 “지지자들로부터 ‘문안박’은 ‘문재인-안철수-박근혜’라고 자조하는 말까지 들려온다”고 전했다.
안 의원이 탈당 가능성을 시사하고 칩거에 들어간 지 사흘째인 9일 아침, 오영식·조정식·우원식·민병두·김현미·김영주·박홍근·윤관석 등 수도권 의원 10명은 모임을 열어 분당을 막아보자고 머리를 맞댔다. 모두 64명에 이르는 새정치연합 수도권 의원들은 원래 이날 대규모 모임을 하려다 문 대표와 안 의원 쪽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10명만 ‘조촐하게’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모임 분위기는 위기감이 팽배했다고 한다. 경기지역의 한 참석자는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는 수도권에 돌아간다. 당이 분열되면 모두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선 “안 의원의 탈당, 분당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 “문 대표를 쫓아내듯 내보내선 안 된다”는 얘기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들은 논의 끝에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이 참여하는 비상지도체제를 제안하자”는 내용 등이 담긴 중재안 초안을 마련해 수도권 의원들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에 나섰다.
수도권 의원들이 당내 위기 상황에 더욱 절박하게 반응하는 것은 서울·경기·인천은 불과 몇백표 차이로도 당락이 갈리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의원이 당선된 곳은 지역마다 조금씩 사정이 다르지만 대략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20% 정도, 친노·개혁 성향 유권자들이 10~15%가량 정도다. 여기에 시민사회·진보성향 유권자들이 합쳐져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다. 분당이 현실화하면 야권 후보들이 난립하게 되고 표를 갈라 새누리당 후보에게 반사이익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야권 분열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 당직자는 “당이 분당과 통합을 거듭하며 어지러웠던 2007년 대선 때 야권 지지자 중 다수가 기권해버렸다. 그런 상황이 또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분당 위기를 눈앞에 놓고 속 타는 것은 주류·비주류 계파를 가리지 않는다. 경기지역의 한 비주류 의원은 “우리 지역은 지지자 중에 보수적인 유권자들과 친노 성향의 유권자들이 혼재해 있는 곳이다. 어느 한쪽도 버릴 수 없다”며 “지역에선 당내 계파갈등과 관련해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고 말했다.
위기의식이 큰 수도권 의원들의 긴박한 움직임이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폭주 기관차’ 같은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수도권의 참패는 야권의 참패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유주현 송경화 이승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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