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외현 정치부 정당팀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민주통합당이 대규모 불법선거운동 사무실을 차려 놓고, 70명 이상을 동원해 불법선거운동을 집중적으로 해온 사실이 밝혀졌다.”
대선 나흘 전인 지난 토요일 15일이었습니다. 새누리당 당사에서 조원진 불법선거감시단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통합당의 불법선거운동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민주당이 당사로 쓰고 있는 서울 여의도 신동해빌딩에서 조직적인 에스엔에스(SNS) 여론조작 행위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원진 단장은 그 근거로 “지난 12월 초 (민주당의) 불법 에스엔에스 여론조작 내용이 일본 <도쿄방송>(TBS)에 방영됐다”고 말했습니다. 조 단장은 그 다음날도 “신동해빌딩 6층은 민주통합당의 에스엔에스본부가 설치돼 있다고 언론(일본 도쿄방송)에도 나와 있다”며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도쿄방송이 불법적인 온라인 여론조작 현장을 촬영해서 보도했다면 대단한 특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내 언론 기자들은 다들 반성해야 할 일이죠. 그런데 이상하죠? 일본 기자를 찾아내 상이라도 줘야 할 텐데, 좀 조용했죠?
도쿄방송 보도는 한국의 인터넷 선거운동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에겐 너무나 평범해서 일상이 돼버린, 트위터 등 에스엔에스와 유튜브 등 동영상 서비스를 활용한 선거운동 얘깁니다. 인터넷 선거운동을 금지한 일본의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한국의 사례가 ‘대립군’으로 인용된 거지요.
보도에는 민주통합당이 당사 가운데 하나로 쓰고 있는 신동해빌딩이 나옵니다. 문재인 후보 캠프의 조한기 에스엔에스지원단장이 인터뷰도 합니다. 헉! 불법선거운동 현장에서 캠프 관계자가 인터뷰를 했다? 보도를 계속 보니 새누리당 사례도 나옵니다. “차가운 이미지를 가진 박근혜 후보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서민적 이미지를 내세운다”는 설명이 붙습니다. 과연 이 보도 내용에서 어느 부분이 불법선거운동이라는 걸까요?
새누리당이 같은 날 낸 ‘민주당 유사선거기관 불법운영 의혹 관련’이란 자료를 보면 주장은 한발 후퇴합니다. 보도 내용 자체가 아니라 도중에 잡힌 모니터에 뜬 화면이 문제라는 겁니다. 자료를 보면, “(보도 내용 가운데) 마침 그중 한 사람이 ‘일간베스트’ 사이트를 들여다보는 모습이 잡혔다. 화면상 댓글을 다는 등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는 보수 성향의 인터넷 게시판 및 커뮤니티 사이트죠. 결국 문 후보 캠프에서 보수층에 균열을 내기 위해 보수 성향 웹사이트에 들어가 ‘역공작’을 했다는 겁니다.
새누리당은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전체 2분48초 길이의 도쿄방송 뉴스 영상을 편집해 56초짜리로 만든 뒤, 이를 기자들에게 배포합니다. 편집본에선 민주당 당사 건물과 문 캠프 관계자 인터뷰만 나옵니다. 한 모니터 화면은 3차례나 반복됩니다. 사실 이것만 봐선 무슨 사이트인지 알 수 없을 수준입니다. 보이는 거라곤 왼쪽에 흐릿한 글, 오른쪽에 광고 배너뿐입니다. ‘일베’에 맨날 들어가는 사람은 바로 알아챘겠죠. 도쿄방송에 나온 모습은 그냥 스크롤바를 내리며 글을 읽는 모습이지만, 새누리당은 댓글까지 달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겁니다.
어쨌든 새누리당은 도쿄방송 보도를 주요 근거로 삼아 ‘민주당이 선거사무소로 등록하지도 않은 당사 건물에서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며 선관위 조사를 요구했고, 민주당은 ‘당사 건물에서 당직자들이 일하는 모습일 뿐’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결국 선관위는 판단을 내리지 않은 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며칠 전 터져나왔던 새누리당의 이른바 ‘십알단’ 사건은, 선관위가 현장을 확인한 뒤 검찰에 고발했었죠.
선거가 끝난 마당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사건을 다시 들고나온 건, 선거 과정에서 일부 보수 매체에 등장한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사상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전이었다’는 평가 때문입니다. 아마도 국정원의 조직적 온라인 여론 조작 의혹, 박근혜 당선인의 아이패드, 십알단 및 신천지 의혹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대선 국면에서 모든 이슈를 잡아먹다시피 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2002년 김대업씨의 병역 비리 폭로나 2007년 비비케이(BBK) 실소유주 논란을 떠올리면, 장황하게 설명드린 ‘도쿄방송 화면 사건’ 따위에 ‘사상 최악’이란 표현은 좀 면구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왜 갑자기 존댓말이냐고요? 그동안 제가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한 어르신들도 좀 읽으시라고, 오늘만 존댓말로 씁니다. 저, 알고 보면 공손하거든요.
김외현 정치부 정당팀 기자 oscar@hani.co.kr
[한겨레 캐스트 #18] <대선 특집> 박근혜 시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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